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나이든 미장이와 병든 새의 따뜻한 우정

등록 2021-06-04 04:59수정 2021-06-04 09:49

[책&생각] 김소영의 그림책 속 어린이

안젤로

데이비드 맥컬레이 글·그림, 김서정 옮김/북뱅크(2009)

그림책을 좋아하는 어른들이 부쩍 많아졌다. 짧은 시간에 강렬한 예술적 경험을 할 수 있어서일 것이다. 그림과 글 자체는 물론이고 장면의 연결, 이미지와 서사가 결합하는 방식, 판형이나 제본 등 감상할 요소도 많다. 사실 그림책을 깊고 넓게 이해하는 데는 경험과 지식이 많은 어른이 어린이보다 유리하다. 어른은 그림책을 직접 고르고 살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처음부터 어른 독자를 염두에 두고 창작된 듯한 그림책도 자주 보인다. 분명히 어린이가 그려져 있고 어린이에게 말하듯이 쓰여 있지만 과연 어린이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싶다. 그림책의 독자가 많아지는 것이 반가운 한편으로, 이러다 ‘그림책’에서조차 어린이 독자가 설 자리가 좁아지면 어쩌나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안젤로>에는 행인 외에는 어린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 안젤로는 나이 많은 미장이로, 오래된 성당의 우툴두툴해진 벽을 매끈하게 만들고 비바람에 닳은 조각상을 다시 살려내는 일을 한다. 미장이라는 직업도, 누군가의 할아버지가 아닌 ‘노인’ 주인공도 어린이에게는 조금 낯설다. 그런데도 안젤로가 자신의 일을 얼마나 좋아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충분히 전달된다.

안젤로는 외벽을 청소하다가 죽어가는 새를 발견하고 정성껏 치료해주며 ‘실비아’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실비아는 기력이 쇠해 점점 작업하기 힘들어하는 안젤로 곁에서 그를 응원하고 돕는다. 드디어 제일 높은 벽에 있는 천사상의 손질을 마친 밤, 안젤로는 기뻐하기는커녕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 실비아가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에 빠진다. 그리고 미장이로서 중요한 결단을 내린다.

장면마다 배어 있는 유머와 과장, 다정함을 발견할 때면 작가 이름을 다시 보게 된다. 데이비드 맥컬레이는 <고딕 성당> <성>으로 잘 알려졌다. 중세의 건축과 사람들의 삶을 재현하기 위해 가상의 건물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세부사항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들이다. 펜으로만 그려진 그림은 기록 외에 다른 의도는 없는 것처럼 건조하다. 그것이 이 작가의 강력한 개성이고 힘이다. 그런데 <안젤로>에서 작가는 웅장한 성당이나 복잡한 구조물보다는 안젤로와 실비아의 정다운 순간들을 그리는 데 더 공을 들였다. 작가의 메시지는 안젤로가 실비아에게 남긴 선물과 “미장이들은 아무것도 손대지 않았습니다”라는 마지막 문장에 담겨 있다. 바로 예술에 대한 장인의 헌신과 그것을 뛰어넘는 사랑이다.

좋은 그림책은 어린이에게 보는 즐거움, 읽고 듣는 즐거움을 준다. 소박한 장면에서 크고 훌륭한 가치를 발견하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작가는 자신이 가진 좋은 도구와 재료, 화려한 기술을 자랑하는 대신 ‘어린이 독자’에게 다가갈 가장 좋은 방법을 찾는다. 독서교실 어린이들이 <안젤로>를 두 번 세 번 다시 읽겠다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김소영 독서교육 전문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1.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구준엽 아내 서희원 숨져…향년 48 2.

구준엽 아내 서희원 숨져…향년 48

인상파 대가 오지호 명작 ‘사과밭’과 ‘남향집’의 엇갈린 뒤안길 3.

인상파 대가 오지호 명작 ‘사과밭’과 ‘남향집’의 엇갈린 뒤안길

“알고 보면 반할 걸”…민화와 K팝아트의 만남 4.

“알고 보면 반할 걸”…민화와 K팝아트의 만남

신학철 화백 “백기완 선생, 내면은 부드럽고 아름다운 분” 5.

신학철 화백 “백기완 선생, 내면은 부드럽고 아름다운 분”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