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책거리
마감을 앞두면 살짝 들뜹니다. 아직 마무리를 못해 초조하지만, 이번 주말엔 어떤 책을 볼까, 하고 생각하면 아주 잠시 마음이 놓입니다. 일하는 책보다 쉬는 책을 떠올리는 것은 일종의 자기위안이겠죠.
지난 주말엔 오랜만에 오쿠다 히데오를 읽었습니다. <남쪽으로 튀어> 이후 근 15년 만이었죠. 그 사이 오쿠다 히데오는 많이 묵직해져 있더군요. 7년 만에 내놓았다는 장편 <죄의 궤적>(은행나무)은 빈집털이범에서 잔혹한 유괴살해범으로 바뀌어가는 스무살 청년과 그를 추적하는 형사의 이야기입니다. 1960년대 일본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이 모티브라는데, 주인공 청년의 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사형이 무서운 것은 아니에요. (…) 나는 앞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마음이 무거워요.” “태어나지 않은 것이 좋았던 사람도 있어요. 내가 그래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그를 범죄로 몰아가는 장면은, 이번주 ‘책&생각’ 4면에 실린 조소정 위고 대표가 <폭력에 반대합니다>를 소개한 글을 읽으며 다시 떠올랐습니다. ‘삐삐’를 만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40여년 전 한 시상식에서 열변을 토합니다. 독재자 같은 ‘망쳐진 아이들’에게 폭력적 양육자가 없었는지 조사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더군요. 누구나 다 아이였던 것입니다.
우리에겐 무엇이 필요할까요. ‘책&생각’ 6면 독서교육 전문가인 김소영 작가의 칼럼에서 저는 ‘다가가기’라는 열쇳말을 찾았습니다. “자신이 가진 좋은 도구와 재료, 화려한 기술을 자랑하는 대신, 다가갈 가장 좋은 방법을 찾”는 것이 좋은 그림책 작가의 노하우라는 것입니다. 다가가는 데서 시작하는 것, 그것이 필요하겠습니다. 다가가는 것, 곁을 지키는 것, 늘 실패하고 말겠지만, 그래도 다시 힘을 내는 것. 세상의 모든 약한 존재들에게, 내 안에 있는 작은 아이에게도.
김진철 책지성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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