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의 온기
윤고은 지음/흐름출판·1만5000원
소설가 윤고은.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04년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윤고은은 2008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무중력증후군>을 비롯해 장편 셋과 소설집 네 권을 내놓았다. 그의 첫 산문집 <빈틈의 온기>에는 라디오 방송 진행자로 분당에서 일산까지 매일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는 그의 일상이 담겼다.
“서울이 어떤 도시냐고 물으면 나는 지하철을 타고 산 입구까지 갈 수 있는 곳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운전에 소질이 없기도 하지만, 그는 서울의 편리한 지하철 시스템을 한껏 활용한다. 몇 분 단위로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지하철이 그에게는 “노련한 연극 무대처럼 느껴”진다. “출발지인 미금역에서 도착지인 주엽역까지 이야기를 몇 개씩 얻지 못하는 역은 하나도 없다.” 심지어는 신분당선과 3호선 사이 환승 통로조차도 그에게는 흥미롭고 역동적인 자극의 원천이 된다.
지하철 3호선 옥수와 압구정 사이 구간은 동호대교를 통해 지상으로 한강을 건넌다. 그는 그 길지 않은 동안 지하철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가능한 한 놓치지 않으려 한다. 열차가 다리 위를 지날 때 센스 있는 차장의 감성 어린 ‘디제이 멘트’가 곁들여지면 금상첨화다. 그러나 지하철 3호선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구간은 따로 있다.
“서울 지하철 3호선을 꾸준히 타는 내게 묻는다면 단연코 구파발역에서 지축역 사이 구간이 최고라고 대답하겠다. 햇빛이 열차 안으로 쏟아지고 파노라마처럼 북한산과 그 아래 풍경이 펼쳐지는데, 내가 타고 있는 게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진 열차라 해도 믿을 정도다.”
지하철을 향한 애정과 함께 산문집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수다쟁이” 같은 작가의 면모 그리고 뜻밖에도 ‘빈틈’이 많은 허당 기질이다. 카페에서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실수로 한 칸 옆 남의 자리에 앉아 “모르는 사람의 노트북 위에 손가락을 올려본 적이 있을 정도다.” 치약으로 알고 산 틀니 접착제로 양치를 하는가 하면, “내일 칼럼 맞춰놨어, 알람 쓰려고” 같은 식의 말을 자연스레 내뱉기도 한다. “집집마다, 관계마다 올해의 오타상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너스레를 떨어 보기도 하지만, 사실 실수에는 창의적이며 생산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오류와 실수, 착오와 오작동이 내포한 우연성이 나를 설레게 하고 그 헛발질을 기록하게 한다. (…) 허둥대며 돌아갔던 길, 착각과 오작동이 빚어낸 결과가 오래 잊히지 않는다. 그거야말로 계획과 재현이 불가능한, 고유한 것이기 때문에.”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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