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이주혜가 다시 만난 여성
일러스트 장선환
버나딘 에바리스토 지음, 하윤숙 옮김/비채(2020) 소설 속 오늘은 레즈비언 연극 연출가 앰마의 <다호메이의 마지막 여전사> 런던 국립극장 초연 날이다. 평생 비주류 페미니즘 연극 운동을 벌여온 앰마가 처음으로 주류 무대에 서는 역사적인 날, 앰마의 주변 인물들이 하나둘 극장에 도착한다. 연극의 막이 오르는가 싶을 때 작가는 어느새 앰마를 출발점으로 앰마의 딸 야즈, 앰마의 오랜 친구이자 동지 도미니크, 빈민가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도록 공부해 마침내 명문대에 진학하고 은행 부사장 자리까지 올라간 성공 신화의 주인공 캐럴, 자식 세대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학위와 안락을 포기하고 영국으로 이주해 온 나이지리아 출신 청소부 버미, 세 남자와 세 번의 잘못된 만남으로 세 아이의 싱글맘이 된 슈퍼마켓 관리자 라티샤, 앰마의 고교 시절 유일한 흑인 동창이자 캐럴의 옥스퍼드 진학을 적극적으로 거들었던 교사 셜리, 바베이도스 이민자로 영국에서 가족을 꾸리는 과정에서 무수한 인종차별의 설움을 겪어야 했던 셜리의 엄마 윈섬, 페미니즘에 눈을 뜨면서 가부장적인 남편들과 헤어지고 오랫동안 고독한 생활을 해왔던 셜리의 동료 교사 퍼넬러피, ‘여자답게 커야 한다’는 부모와 갈등을 빚으며 자신의 젠더 정체성을 둘러싸고 오랜 고민과 방황을 하다가 결국 ‘젠더 프리’의 길을 선택한 메건/모건, 1920년대에 태어나 고손주까지 수십 명의 대가족을 이루고 홀로 가문의 농장을 지키는 해티, 비혼모의 흑인 혼혈 딸로 태어나 온갖 차별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뿌리에 대한 자긍심을 잃지 않았던 해티의 엄마 그레이스까지 열두 여성의 삶을 한 챕터에 하나씩 펼쳐낸다. 태피스트리를 짜듯 정교하게 직조된 이야기는 시간의 축으로는 19세기 말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백 년이 넘는 세월을 망라하고, 공간의 축으로는 잉글랜드 북부, 런던, 미국, 나이지리아, 가나, 케냐, 에티오피아, 바베이도스, 가이아나 등 여러 대륙을 넘나든다. 각 인물의 개인사를 담아낸 챕터는 마지막 문장에만 마침표가 한 번 찍힐 뿐 긴 산문시처럼 쉼표와 행갈이로만 이어진다. 이 실험적 형식을 작가는 ‘퓨전 픽션’(Fusion Fiction)이라고 부르지만, 독자에게는 끊어질 듯 쉽게 끊이지 않는 물레질처럼 나지막이 이어지는 구술을 듣는 경험을 안겨준다. 고백이기도 증언이기도 한 각각의 이야기는 질감이 전부 다르고 예상 가능한 빤한 캐릭터도 없다. ‘우리 방식대로 한다, 그게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를 모토로 살아온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사회주의자 앰마는 딸 야즈에게 ‘페미나치’ 소리를 듣고, 야즈는 자신을 ‘페미니즘보다 훨씬 더 높은 단계’인 ‘인도주의자’로 칭한다. 도미니크는 운명처럼 만나 사랑에 빠진 연인을 따라 이국의 레즈비언 공동체로 떠나지만, 연인에게 정서적, 신체적 학대를 당한다. 전형성을 벗어나 독특하고 놀라운 개인사를 들려주는 열두 여성의 이야기는 그러나 영국에서 흑인 여성으로 살아가는 게 어떤 고통과 싸움을 요구하는지, 그 싸움 끝에 각자 생존자로서 자기 정체성을 어떻게 획득해 내는지에 관한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이 하나의 이야기는 각자의 고통에서 출발하지만 패배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독자에게 섣부른 연민이 아닌 공감과 경탄을 선사한다. 작가는 야즈의 대학 친구이자 소말리아 출신 무슬림 와리스의 말을 통해 독자에게 경고한다. “난 희생자가 아니야, 절대 나를 희생자로 대하지 마, 우리 엄만 날 희생자로 키우지 않았어.” 덤으로 열두 여성 가운데 퍼넬러피 혼자 백인으로 설정된 이유가 궁금하다면 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깜짝 놀랄 반전과 통렬한 깨달음, 진한 여운까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소설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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