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디 입장에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은 ‘파일럿 프로그램의 정규 편성’과 ‘시즌2 확정’이다. 프로그램을 사랑해준 시청자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고, 무엇보다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인정받은 느낌이다. 이런 흥분과 감동의 순간이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초판이 다 팔려서 중쇄를 찍기로 결정되었을 때인가 보다. 만화잡지 편집부 이야기를 담은 일본 드라마 <중쇄를 찍자>는 2016년 일본 <티비에스>(TBS)에서 방영했는데 국내에서도 인기가 좋았는지, 티빙, 웨이브, 시즌, 왓챠 등 국내 거의 모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볼 수 있다.
외로워도 슬퍼도 안 우는 캔디와 죽을 만큼 노력하면 모든 게 가능하다고 믿는 <미생>의 장그래를 반반 섞은 듯한 구로사와는 유도 국가대표 선수 출신이다. 부상으로 평생 해온 운동을 포기하고 만화잡지 <바이브스> 편집부에 입사해 편집자라는 제2의 인생을 걷는다.
한 사람의 천재적인 감각보다 많은 사람의 노력이 모였을 때 중쇄를 찍는 대박이 탄생한다. 편집자들뿐 아니라 개성 넘치는 만화가와 지망생, 영업사원과 디자이너, 서점 직원까지 중쇄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유쾌하게 펼쳐진다. 그들이 파는 것은 책이지만 상대하는 것은 사람이다. 드라마를 보며 흔한 자기계발서나 마케팅 책보다 훨씬 더 유용한 성공의 꿀팁을 발견하게 된다.
<중쇄를 찍자>는 현실의 ‘일’을 담는 동시에 미래의 ‘꿈’을 찾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원하던 꿈을 직업으로 삼으면서 성공까지 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루어지지 않는 꿈을 좇는 것은 얼마나 괴로울까. 그래서 누군가는 현실과 타협해 꿈을 접고, 누군가는 꿈을 위해 현실적인 편안함을 포기한다. 선택의 문제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에서 요즘 ‘핫’한 배우인 사카구치 겐타로가 남자 주인공으로 나오고, 말이 필요 없는 오다기리 조, <고독한 미식가> 마쓰시게 유타카 등 작은 배역까지 일본을 대표했던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조금 과장된 연기에 호불호가 나뉠 수도 있지만, 특정 분야의 디테일을 끝까지 파고드는 일본 드라마의 장점은 그대로 살아 있다.
요즘은 일에서 행복을 찾지 않는 걸 멋진 인생이라 여기지만,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회사에서의 시간이 고통스럽다면 우린 절대 행복할 수 없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전파하며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요즘 한없이 늘어져 있는 나를 반성하며 다독이게 된다.
공감력이 높아 우리나라 제작사에서 <오늘의 웹툰>이란 제목으로 리메이크를 준비 중이다. 그나저나 방영 중인 내 프로그램들은 시즌2 확정 소식이 언제쯤 들려오려나. 여러분, 우리 모두 중쇄를 찍읍시다!
씨제이이엔엠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