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너드커넥션 멤버들. 왼쪽부터 박재현(베이스), 최승원(기타), 서영주(보컬·기타), 신연태(드럼). 유어썸머 제공
옛날 옛적에 한 극장이 문을 열었다. 이름하여 ‘명화극장’. 깐깐한 극장 주인은 누구나 인정할 만한 명작들만 고르고 골라 틀었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며 극장 주인의 안목에 고개를 끄덕였다. 세월은 흘러 21세기가 됐다. 사람들은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 비슷비슷한 영화를 보며 시간을 때웠다. 찾는 이들이 뜸해진 ‘명화극장’은 조용히 사라졌다.
문을 닫았던 극장이 새롭게 돌아왔다. 이름하여 <뉴 센추리 마스터피스 시네마>. 풀이하면 ‘신세기 명화극장’이다. 21세기에 20세기 끝자락 감성의 록 음악을 추구하는 밴드 너드커넥션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정규 1집 제목이다.
“우디 앨런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은 1920년대 프랑스를 문화의 황금기라 여기며 동경해요. 그런데 정작 그 시대 예술가들은 1890년대 벨에포크 시대를 동경하고, 또 벨에포크 시대 예술가들은 르네상스 시대를 동경하거든요. 우리가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이번 앨범을 구상했어요.”
최근 서울 연남동 소속사 유어썸머 사무실에서 만난 너드커넥션의 리더 최승원(기타)이 말했다. 그러자 서영주(보컬·기타)가 말을 이었다.
“우린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밴드 음악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그런 음악이 사라지고, 대신 자극 위주의 노래들이 각광받고 있어요. 우리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명작을 우리 손으로 재탄생시켜 ‘신세기 명화극장’에서 상영하고 싶었어요. 그게 바로 이번 앨범입니다.”
너드커넥션의 첫 정규앨범 <뉴 센추리 마스터피스 시네마> 표지. 유어썸머 제공
대학 밴드 동아리에서 만난 공대생 서영주·최승원·박재현(베이스)이 2017년 초 의기투합한 것이 밴드의 발단이다. 영국 밴드 라디오헤드, 오아시스, 콜드플레이 등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통했다. 여기에 체대를 나와 태권도 사범을 하며 드럼을 치던 신연태가 합류했다.
대학가요제에 지원하려는데 밴드 이름이 없었다. 최승원이 밴드 이름을 만들어주는 인터넷 사이트 ‘밴드 네임 제너레이터’에서 몇몇 조건을 넣어 무작위로 뽑아본 이름 중 하나가 너드커넥션이었다. “일단 이걸로 하고 나중에 바꾸자.” 대학가요제에선 떨어졌지만, 이름은 그대로 가져가기로 했다.
“우리가 다 ‘너드’(공부는 잘해도 사회성이 부족한 ‘범생이’를 일컫는 말)거든요. 그런 우리들이 음악 하나로 뭉쳤어요. 우리 음악으로 세상에 흩어져 있는 여러분들을 연결해보자는 의미도 담겨 있으니 밴드 이름을 바꿀 이유가 없었죠.”(서영주)
기대 없이 참가한 에머겐자 세계밴드대회 한국 예선에서 우승했다. 그 덕에 2018년 독일 음악 페스티벌에서 열린 본선까지 진출해 공동 9위를 했다. 그때 세계 여러 나라 밴드 음악인들과 어울리며 쌓은 경험은 상금보다 귀한 보상이었다. 2018년부터 영국 브릿팝 스타일의 싱글과 미니앨범을 발표하며 서서히 이름을 알려온 이들이 갑자기 유명해진 건 방송을 통해서였다. 서영주가 지난해 말 시작한 경연 프로그램 <싱어게인>(JTBC)에 ‘26호 가수’로 참가해 매력적인 목소리로 화제를 모은 것이다.
“방송에서 창작곡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우리 음악을 알리려고 나갔는데, 결국은 못 했어요. 유명곡만 부르다 도중에 탈락했죠. 그래도 밴드를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방송 보고 우리 음악을 찾아 들어주신 분들이 많았거든요.”
이후 팬들이 폭발적으로 늘어 공연만 하면 3초 만에 매진됐다. 소속사도 생겼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원하는 ‘2021 뮤즈온 아티스트’에도 선정됐다. 그리고 마침내 첫 정규앨범을 내기에 이르렀다.
밴드 너드커넥션 멤버들. 왼쪽부터 박재현(베이스), 최승원(기타), 서영주(보컬·기타), 신연태(드럼). 유어썸머 제공
앨범에는 모두 12곡을 담았다. 전반적으로 라디오헤드, 콜드플레이, 오아시스, 뮤즈, 킨, 버브 등 영국 밴드의 향취가 묻어나는 가운데, 우리 가요의 감성도 엿보인다. 공동 타이틀곡 중 하나인 ‘우린 노래가 될까’ 등 서영주가 작곡한 노래들이 대체로 그렇다. 그는 “버스커버스커, 넬, 못, 델리스파이스, 국카스텐 등 한국 밴드들도 좋아해 그 영향도 받았다”고 귀띔했다.
앨범의 막을 올리는 ‘트웬티퍼스트 센추리 킹덤’과 이어지는 공동 타이틀곡 ‘할리우드 무비 스타’가 강력한 사운드의 원투펀치라면, 청춘의 불안을 노래한 ‘29’와 사랑하는 존재를 향한 그리움을 담은 ‘항성통신’은 묵직한 여운을 실은 어퍼컷이다. 사운드가든, 콜드플레이, 너바나, 오아시스 등에 대한 존경을 가사에 담은 ‘슈퍼노바!’는 음악적 야심이 응축된 카운터펀치다. 이 밖에도 박재현이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그린 필즈’, 소품 같은 짧은 노래 ‘스노맨 인 더 배스텁’, 엔딩곡으로 더할 나위 없는 ‘조용히 완전히 영원히’ 등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수록곡들에 빠져들다 보면 극장을 떠나기 싫어진다.
지난 14일 정규 1집 쇼케이스 공연을 하루 두 차례 성황리에 마친 너드커넥션은 12월31일, 1월1~2일 서울 한강대교 중간의 노들섬 라이브하우스에서 단독공연을 할 예정이다. “어서 코로나가 사라져서 스탠딩석 관객들이 함성을 맘껏 지르는 곳에서 공연하”는 게 이들의 바람이다. 자신들 음악의 슬로건이라는 ‘어지러운 세상, 따뜻한 노래’가 더 크게 더 멀리 퍼져 나가는 날이 머지 않은 듯하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