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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직원처럼 일한 방송작가, 헤어질 땐 프리랜서?

등록 2022-01-09 09:58수정 2022-01-09 10:11

[한겨레S]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방송작가의 노동자성 인정
방송작가의 불안정한 고용 문제를 풀지 않고는 방송의 미래를 논하기 어렵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30일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하면서 지상파 방송 3사에 고용계약을 체결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한겨레> 자료사진
방송작가의 불안정한 고용 문제를 풀지 않고는 방송의 미래를 논하기 어렵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30일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하면서 지상파 방송 3사에 고용계약을 체결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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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문화방송 창사 60주년 기념사에서 박성제 사장은 대대적인 콘텐츠 투자 계획을 밝혔다. 작년 10월 말 기준 영업이익이 1000억원을 돌파해 연말 각종 비용 처리를 감안하더라도 유례없는 흑자가 예상된다면서, 2022년에는 드라마 제작에 1300억원을 투입해 압도적인 케이(K)콘텐츠 글로벌 미디어 그룹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오랜 세월 부침을 겪었던 문화방송이 빨리 정상화되기를 바랐던 이들에게, 적자를 벗어던졌으며 콘텐츠 자신감을 되찾았다는 박성제 사장의 말은 퍽 반가웠으리라.

영업이익 1000억원 돌파를 보고하는 야심만만한 창사기념식이 열리기 하루 전인 작년 11월30일, 문화방송의 낮 뉴스 프로그램 <뉴스외전> 작가들 세명은 한명씩 문화방송 보도국 주간뉴스팀장에게 불려가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1년짜리 프리랜서 계약을 갱신해가며 일해왔던 작가들은 “내년에는 올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결방 요인이 많다. 결방이 많으면 힘들 텐데 다른 기회를 찾는 게 낫지 않겠나”라는 말과 함께 12월31일까지인 계약을 더는 갱신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아야 했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이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의 청원으로 문화방송을 비롯한 지상파 3사 방송작가들의 노동자성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던 중에 일어난 일이다.

케이-콘텐츠 비전 내세운 MBC
콘텐츠 경쟁력 기여해온 작가엔

콘텐츠 투자와 재계약 불가 사이

어떤 이의 눈에는 내가 엄연히 별건인 두 사안을 묶어 문화방송을 필요 이상으로 악랄하게 그리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흑자는 흑자고, 계약 종료는 계약 종료이니까. 그러나 문화방송이 그리는 ‘케이콘텐츠 글로벌 미디어 그룹’의 미래는 방송작가들 없이는 달성하는 게 불가능하다. 문화방송이 영업이익 1000억원을 돌파한 비결에는 경영상 필요한 판단을 적재적소에 내린 경영진의 결단이나, 콘텐츠 영업에 앞장선 마케팅팀의 활약,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의 글로벌 플랫폼에 납품하기 위해 콘텐츠를 재가공한 디지털팀의 노력 등이 있을 테다. 그러나 아이템 발제, 게스트 섭외, 취재, 편집 구성, 자막, 대본 작성, 컴퓨터 그래픽 의뢰 등의 업무를 도맡아 하는 방송작가들이 없었다면, 이 모든 일들이 가능했을까?

그러니 문화방송이 콘텐츠 경쟁력을 대폭 키우겠다며 ‘글로벌 미디어 그룹’으로서의 비전을 선포한 2021년 12월1일과, 콘텐츠 경쟁력을 키우는 데 기여해온 작가들이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은 2021년 11월30일 사이의 간극을 묶어서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회사에 현재 고용을 도저히 유지할 수 없는 경영상의 불가피한 이유가 있어 불가피하게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또 모르겠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대표이사의 입에서 영업이익이 1000억원을 돌파해 유례없는 흑자가 예상되고 내년엔 1300억원을 신규 투자하겠다는 선언이 나왔으니, 그런 것도 아닌 셈이다.

문화방송은 ‘계약 종료’일 뿐 ‘해고’나 ‘계약 해지’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뉴스외전>은 불과 몇개월 전 작가를 해고했다가 ‘당일 계약 해지’ 논란이 일자 다시 복직시키며 ‘재발 방지’를 약속한 프로그램이고, 고용노동부로부터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은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을 미리 통보받은 프로그램이다. 실제로 작년 12월30일 고용노동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조사가 완료된 지상파 방송작가 363명 중 152명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이 인정된다며 특별근로감독 실시 결과를 밝혔다. 문화방송은 조사 대상자 69명 중 33명의 노동자성이 인정되었는데, 인정률은 47.8%로 지상파 3사 중 가장 높은 수치다. <뉴스외전> 작가 중 2명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미디어 비평 매체 <미디어오늘>의 보도를 통해,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은 <뉴스외전> 작가들이 전태일의 삶을 다룬 극장용 애니메이션 <태일이>(2021) 인터뷰 코너를 준비해야 했다는 사연은 널리 알려진 바 있다.(“방송작가 해고하고 ‘태일이’ 인터뷰 시킨 MBC”, <미디어오늘> 2021년 12월22일치) 물론 비단 문화방송만의 일은 아니다. 지금도 수많은 방송사에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는 방송작가들이 전태일을 말하고 김용균을 말하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대본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앞으로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작가들이, 영화 <미안해요, 리키>(2019)와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2021)의 절절한 감동을 소개하는 영화 프로그램의 대본을 쓰고 있겠지.

‘노동자성 인정’에도 재계약 불가
근기법 사각지대 활용 구습 깨야

구습 벗어나야 미래로 나아간다

난 방송사 사람들이 일부러 악랄하게 행동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러나 노동자를 괴롭히는 게 너무 즐거워서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 같은 건 없다. 그저 효율을 최대치로 추구하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과 ‘냉정한 계산’ 끝에 내린 결론이 착취인 것일 뿐. 물론 방송사에도 나름대로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인 프리랜서 계약을 적극 활용해야만 하는 복잡한 내부 사정이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세상에 복잡하지 않은 속사정은 또 어디 있는가. 옳은 일을 실천해야 할 명분은 ‘옳은 일이기에’라서 단순하지만, 그에 대한 저항은 ‘나도 모르는 건 아닌데’로 시작되는 탓에 늘 복잡한 법이다.

대선이 있는 해가 되면, 사람들은 앞으로의 대한민국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논한다. 그런 미래를 만들기 위해 어떤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대선 토론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선거 특집 방송을 준비하는 방송사들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는 3월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는가와 무관하게, 우리 자신부터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방송사도 마찬가지다. 케이콘텐츠의 약진과 공영방송의 미래 비전에 대해 아무리 열심히 이야기해도, 자신들부터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를 적극 활용하는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한국의 방송사들은 단 한 발자국도 미래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작년 12월30일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하면서 지상파 방송 3사에 노동조건을 명시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17조를 위반한 것으로 간주하며 고용계약을 체결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방송사들부터 변화해야 할 순간이다.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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