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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사라졌던 18세기 조선 실세 장군 묘지석…미국서 돌아온 사연은?

등록 2022-02-10 15:02수정 2022-02-10 15:27

묘지석 주인은 숙종대 이기하 장군
유출된 뒤 미국에 20년 넘게 떠돌아
클리블랜드미술관, 후손에게 돌려줘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에 소장됐다가 귀환한 ‘백자청화 이기하 묘지석’.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에 소장됐다가 귀환한 ‘백자청화 이기하 묘지석’.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18세기 초 숙종의 총애를 받으며 조선왕조의 국방 통수권을 20년 넘게 쥐락펴락했던 강골의 무장이 있었다. 수도 한양 경비의 총책과 훈련대장을 맡으며 싸움 잘하고 관복 많은 장수인 ‘복장’(福將)의 반열에 올랐던 이기하(1646~1718)란 인물이다. 조선시대 국방사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이 무신의 묘지석이 뜻밖에도 20년 넘게 미국을 떠돌다 돌아온 사실이 드러났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최응천)은 1994년 국내에서 사라진 뒤 미국에 유출돼 클리블랜드미술관이 소장해온 이기하 묘지석 18점이 미술관의 기증 결정으로 지난 8일 환수됐다고 10일 밝혔다.

이기하는 숙종 대에 임금의 신임을 받으며 국방 분야에서 활약했던 당대 으뜸가는 무신이었다. 오늘날 수도경비사령부의 최고위 지휘관 격인 총융사와 삼도수군통제사, 형조참판, 훈련대장 등을 지냈다.

묘지석들은 그의 무덤에 묻혔던 것들로 백토를 빚어 만든 직사각형 판 위에 청화 안료로 글씨를 써서 가족사와 신하로서의 활동 같은 생전 행적을 적었다. 보존 상태가 좋고 안정된 색조로 쓰여진 글자들의 윤곽도 뚜렷해서 18세기 조선 조정의 관용 가마였던 분원에서 만든 고급 청화백자 묘지의 전형으로 평가된다.

‘숭정 갑신 후 91년 갑인 8월 일 구워서 묻었다’(崇禎甲申後九十一年甲寅八月 日 燔埋)는 문구가 보여 영조 10년인 1734년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재단 쪽은 “각 묘지석 오른쪽 면에 무덤 주인의 관직과 이름, 몇번째 장에 해당하는지 알려주는 숫자들이 쓰여져 전체적으로 묘지석들이 온전한 한 질을 이룬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묘지글을 지은 이는 이조좌랑을 지낸 이덕수(1673∼1774)로, 그의 문집 <서당사재>(西堂私載)에도 내용이 실려 전한다.

이기하 묘지석은 고인의 무덤을 1994년 경기도 시흥에서 이천으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확인돼 한산 이씨 문중 원로가 보관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경위로 분실돼 미국에 유출된 뒤 1998년 클리블랜드미술관이 한 컬렉터한테서 기증받아 소장해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 2015∼16년 이 미술관에서 한국 문화재 실태 조사를 벌이다 이기하 묘지석이 유출돼 미술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20년 보고서 발간을 준비하면서 원래 소장자가 한산 이씨 문중임을 확인하고 유출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그 뒤 윌리엄 그리스워드 클리블랜드미술관 관장은 친분이 있던 최응천 재단 이사장과 협의한 끝에 미술관 이사회와 기증한 컬렉터를 설득해 묘지석을 문중에 돌려주기로 결정했다. 문중 대표 이한석씨도 환수된 묘지석을 충남 예산 이기하의 묘와 가까운 공주 충청남도역사박물관에 기증하기로 했다. 박물관은 4월 초 기증 행사와 함께 특별전을 열어 묘지석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최응천 이사장은 “국외 소장 기관에서 묘지를 돌려보내준 것은 역대 첫 사례로 상당수가 국외에 흩어진 묘지석 환수에 중요한 전범이 된다는 의미가 크다”며 “문중 후손들의 심정을 헤아려 신중하게 환수 절차를 진행해준 그리스워드 관장과 미술관의 성의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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