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개봉 일주일째에 300만 관객을 돌파한 지난해 12월, 서울의 한 영화관 전광판마다 이 영화상영을 알리는 포스터가 노출돼 있다. 연합뉴스
한국 영화산업 시장규모가 2년 연속 감소한 가운데 상업영화 수익률은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는 등 국내 영화계가 3년 동안 이어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관객 점유율에서 외국영화에 비해 10년 동안 줄곧 우위를 점해온 한국영화 점유율이 30%까지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에 500여명의 영화인들이 현 정부와 각 당 대통령 후보들에게 한국영화 위기극복을 위한 비상정책을 제안하고 나섰다.
22일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1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내 영화산업 시장규모는 1조239억원으로 2년째 감소세를 보였다. 2조5093억원 규모였던 2019년과 비교하면 40.8% 수준으로 축소된 결과다. 코로나 2년 차인 지난해 전체 극장 매출액은 3845억원으로 전년보다 14.5% 증가하는 데 그쳤고, 관객 수는 6053만명으로 겨우 1.7% 는 수치다. 매출이 2020년보다는 늘었지만 팬데믹 이전인 2019년의 30.5%에 불과한 것이다.
그동안 한국영화는 관객 점유율에서 2011년 이후 10년 연속 외국영화를 앞섰지만 지난해에는 30.1%로, 11년 만에 점유율이 50% 아래로 급감했다. 반면 미국영화의 관객 점유율은 61.0%에 달했다. 전체 극장 매출에서도 한국영화 비중은 29.7%에 그친 데 비해, 외국영화 비중은 70.3%까지 증가했다. 한국영화 기대작들은 개봉을 연기한 데 반해, 팬데믹 첫해 개봉을 연기했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잇달아 선보였기 때문이다.
좌석 띄어 앉기가 도입된 영화관 모습. 씨지브이 제공
실제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관객 556만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고, <이터널스>(305만명), <블랙 위도우>(296만명),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229만명) 등도 흥행에 성공했다. 한국영화 중에는 <모가디슈>(361만명)만이 박스오피스 상위 5위에 포함됐다.
지난해 인구 1인당 연평균 영화 관람 횟수도 1.17회로, 전년(1.15회)보다는 약간 늘었지만 2019년 4.37회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영화 제작비 간이조사 결과, 지난해 개봉한 순제작비 30억원 이상의 상업영화는 17편으로, 전년(29편)보다 58.6% 줄었다. 또 이들 영화의 수익률은 -47.3%로 추정돼 2001년 수익성 조사를 시작한 이래 역대 최저치였던 2008년(-43.5%)보다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도 단 3편뿐이었다.
코로나19에 따른 한국영화 수출 감소도 본격화한 것으로 분석됐다. 영화 완성작 수출과 서비스 수출 금액을 합친 수출 총액은 전년보다 41.8% 줄어든 4863만 달러로 집계됐다. 완성작 수출액(4303만 달러)은 전년보다 20.5% 줄었고, 기술서비스 수출액(560만 달러)은 81% 급감했다.
매출이 늘어난 분야가 없진 않았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영화 부문과 웹하드 매출을 합한 인터넷 브이오디 시장 매출액은 167억원으로 35.4% 증가하며 유일한 상승세를 보였다. 전체 극장 외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전년도 17.5%에서 27.8%로 증가했다.
코로나19 사태 초창기인 2020년 6월, 서울시내 극장 안의 한산한 모습. 씨지브이 제공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과 수익률 급락에 영화인들은 정부와 대선 후보들을 상대로 비상정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날 503명의 영화인비상정책제안자들은 성명을 내 “지난 2020년 이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극장 매출 감소로 국내 영화산업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으며,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했던 중소 제작, 배급사 및 상영관은 아사 상태에 이르렀다”며 “철저하게 극장수익에 의존해 왔던 국내영화산업이 붕괴되면서 투자와 제작환경은 고사 직전에 이르렀으며 영화 창작자들은 사지로 내몰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영화인들은 현재의 위기극복을 위한 근본적 방안으로 창작, 제작, 배급, 상영의 선순환 구조를 새롭게 만들고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절실하고 시급하다는 판단 하에 비상정책 마련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영화인들이 내놓은 5가지 비상정책은 △붕괴된 영화산업 복원을 위한 긴급예산 편성 △프랑스식 자동 선별 지원체계를 도입하여 창작, 제작, 배급, 상영에 신속하고 적극적인 지원 △불공정거래행위 근절, 상영 및 배급 겸업에 대한 규제 △스크린독과점 규제 및 홀드백제도 정착 △중소기업지원자금의 대기업사용금지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은 “한국영화의 생태계 복원을 위해 정부와 영화계가 함께 노력함으로써 청년일자리 창출, 스타트업 육성, 나아가 케이-콘텐츠를 통한 국위선양 및 세계인들과의 문화교류와 국가이익은 물론 시민의 문화향유권 증진에도 기여할 수 있다”며 “본 제안서를 현 정부의 문화체육관광부, 영화진흥위원회,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전달했으며, 동시에 이재명·윤석열·안철수·심상정 대선 후보에게도 전달해 이달 28일까지 답변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