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해 스타가 되었던 한 인플루언서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짝퉁 논란’ 때문일 수도 있고, 과거에 했던 거짓말 때문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그 시작은 어느 유명인이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그를 ‘브랜딩’한 지인들을 칭찬하는 글을 남기면서다. 그가 ‘누군가에 의해’ 브랜딩되었다는 말에 사람들은 그의 모든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브랜딩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인벤팅(Inventing)은 어떨까. 지난 한 달 동안 우리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과 넷플릭스 세계 순위 1위를 다투었던 미국 드라마 <애나 만들기>의 원제는 <인벤팅 애나>다.
25살 애나는 사기와 절도 혐의로 기소되어 뉴욕 구치소에 있다. 애나는 곧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을 독일 출신의 사업가 행세를 하며 뉴욕 최고의 패션, 미술, 금융계 거물들한테 돈을 빌렸고, 무료 서비스도 받았다. 이제 애나는 대충 죄를 인정하고 양형에 합의하면, 재판 없이 5년 정도 감옥에 있다가 나오면 된다. 그렇게 한다면 그에게 당했던 사람들뿐 아니라, 큰 사건을 계속 끌고 갈 자신이 없는 변호사, 거물들을 조사하고 싶지 않은 검사까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범상치 않다는 걸 눈치챈 신문기자 비비안이 애나한테 인터뷰를 제안한다. 시큰둥한 애나한테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제안한다. 결국 애나는 재판을 결심하고 비비안은 애나의 사건을 추적한다.
비비안이 취재를 위해 만난 뉴욕 상류층 사람들, 즉 애나에게 속았던 사람들은 모두 애나를 다른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다. 사실 그의 이름, 집안, 학력, 경력 모두 거짓이다. 그는 누구이며 도대체 그들은 왜 그에게 당한 것일까.
‘이 모든 것은 다 실화다 . 완전히 꾸며낸 부분만 제외하고.’ 이 말은 드라마의 매회 어딘가에 등장한다. 이 드라마는 애나 델비라는 실존 인물 이야기다. 실제로 애나는 인터뷰와 재판정에 입고 나간 패션으로 진짜 인플루언서가 되는 데 성공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넷플릭스에 팔아 또 돈을 벌었고, 이 드라마로 또 한번 더 유명해졌다.
애나의 수법은 매우 단순하다. 일단 상류층 사람들과 어떻게든 인맥을 쌓는다. 이를 통해 최고의 사람들을 소개받아 그럴듯한 사업계획서를 만든다. 조금만 주의 깊게 보면 말도 안 되는 계획이지만 지인 찬스는 엄청난 것이며 결국 투자를 받는다.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것은 그때그때 만나는 부자들과 권력자의 돈으로 해결한다.
애나의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미국 상류층의 삶을 엿보는 재미도 있지만, 허무한 실체도 파악하게 된다. 그들은 파티만 즐기고 일은 거의 하지 않으며, 지인 찬스를 통해 전화 몇번을 돌려 수백억을 투자받고 다시 몇배를 벌어간다. 끼리끼리 돌아가는 세상에서 크게 한탕 친 근본 없는 애나. 그렇다면 과연 어디까지가 죄일까?
성공한 사람 중에는 오직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자신만이 사람을 정확히 파악하며 미래를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 운, 연줄 그리고 많은 사람이 함께 노력했기에 경제적 부를 이뤘다. 그래서 똑똑하고 부유하지만 자만하는 사람들일수록 속이기 더 쉬운 법이다.
그렇다면 애나를 만든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애나 자신일까? 애나에게 당하고도 고소하지 않은 사람들일까? 그를 재판까지 끌고 온 기자와 변호사일까 ? 아니면 범죄보다는 재판정에서 입은 그의 옷이 예쁘다고 열광하는 사람들일까? 애나를 만들기 너무나 쉬운 세상이다.
씨제이이엔엠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