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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 “한국 페미니스트들, 5년 아니라 50년 보고 가길”

등록 2022-03-15 14:37수정 2022-03-16 02:33

회고록 한국어판 출간 기념 화상 기자간담회
“힘들겠지만 장기적 그림 볼 것 권하고 싶어”
“요즘 가장 많이 고민하는 문제는 기후변화”
15일 미국의 작가이자 페미니스트인 리베카 솔닛이 화상을 통해 한국 언론과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창비 제공
15일 미국의 작가이자 페미니스트인 리베카 솔닛이 화상을 통해 한국 언론과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창비 제공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앞으로 50년을 보고 갔으면 한다.”
미국 페미니스트 작가인 리베카 솔닛(61)은 15일 한국 언론과의 화상 기자간담회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등의 공약을 내건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당선과 관련해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에게 지금 상황이 힘들겠지만 보다 장기적 그림을 볼 것을 권하고 싶다”며 “지난 5년이 아니라 지난 50년을 보면 굉장히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앞으로도 50년을 보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포기하지 말고, 거둘 수 있는 승리가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며 “여전히 여성들을 상대로 공격하고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여성주의적 생각과 사상들을 소멸시킬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솔닛은 ‘맨스플레인’(mansplain·남성이 자신이 더 잘 안다며 여성을 가르치려 드는 경향)이라는 단어를 세계적으로 유행시켰으며, 환경·반핵·인권 등 다양한 사회운동에 참여해온 활동가이기도 하다. 대학 진학으로 집을 떠난 19살부터 40여년에 걸친 삶의 여정을 되돌아본 회고록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창비)이 최근 국내에서 출간됐다. 다음은 기자간담회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이번 책이 첫 회고록인데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나는 지난 30여년 동안 페미니즘에 관해 집필해왔고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에 대해 많이 써왔지만, 오로지 젠더만을 이유로 누군가가 자신을 비하하고 해치려고 하는 상황에 노출돼 있는 것이 여성의 정신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충분히 쓰지 못했다. 나 자신도 이런 위험과 폭력을 겪어 왔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삶을 살았고, 그래서 내 개인사를 쓰고 싶었다.”

―이번 한국 대선에서 안티페미니즘 정책을 내건 보수 성향의 후보가 당선됐는데, 지난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됐던 미국 대선과 유사하게 보인다는 분석이 있다. 당시 미국 페미니스트들은 어떻게 대처했는가?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다양한 시위들이 일어났다. 특히 이런 반트럼프 시위는 여성들에 의해 주도된 측면이 있었다. 환경운동부터 성소수자 권리 옹호 운동에 이르기까지 반트럼프 세력이 조직화되고 결집했다. 저항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고, 꺼져가는 희망을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미국에서는 조직화된 남성들에 의한, 여성혐오 메시지, 인종주의 메시지를 온라인 공간에서 확산시키려는 노력이 있었다. 혹시 한국 남성들도 소셜미디어에 의해 유통되는 메시지에 의해 영향 받는 경험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영향력을 가진 작가로서 요즘 무슨 고민을 하고 있나?

“사람들이 자유와 존엄성을 존중받으면서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문제에 대해 고민한다. 특히 최근에는 기후변화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다. 기후변화 문제는 앞으로 지구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할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한다.”

―작가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갖기까지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은 무엇인가?

“계속해서 노력하던 과정 중에 기회도 생기고 문도 열리면서 내 목소리를 찾아갔다. 저널리스트와 평론가로 일할 때 많은 예술가들이 ‘리베카, 너는 단순히 저널리스트나 평론가가 아니라 너 자신이 예술가야’라고 말해줘서 큰 격려가 됐다. 또한 정치적인 문제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시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런 과정에서 내 목소리가 찾아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한국 일부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혐오하는 경향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남성을 배제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목표인가?

“페미니즘의 목표는 남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더 많이 포함시키는 것이다. 남성은 항상 배제되지 않았다. 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자본주의적 희소성 개념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희망, 자신감, 정의 등 비물질적인 가치는 양이 무한하다. 누군가 더 누림에 의해 내 것을 빼앗길 것 같다는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 여성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줘도 남성이 누리는 것이 감소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 더 자유를 누리고 존중을 받는 것을 남성들도 희망했으면 한다. 지금 한국의 젊은 남성들이 여성 탓에 자신들이 손해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미국에서도 경제가 어려워지면 유색인종 탓으로 돌리는 논리가 팽배해진다. 여성과 무관한 경제 불평등, 환경의 문제를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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