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코다>의 제작진이 작품상을 수상한 뒤 기뻐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최근 몇년 동안 보여준 오스카의 혁신이 집대성된 축제였다. 주요 부문 수상자에 여성과 흑인, 아시안 등을 안배하며 성별·인종을 아우른 영화제로 변화를 이어감과 동시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영화에 주요 부문 트로피를 안기는 등 달라진 시대에 발맞추는 행보를 선보인 것이다.
27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인 작품상은 샨 헤이더 감독의 영화 <코다>에 돌아갔다. 경쟁작인 케네스 브래나 감독의 <벨파스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나이트메어 앨리> 같은 거장들의 작품을 제치고 이뤄낸 성과다. 청각장애인 가족과 세상을 연결하는 역할의 소녀 루비(에밀리아 존스)가 음악과 사랑에 빠지며 꿈을 향해 달려나가는 여정을 담은 <코다>는, 작품상과 함께 각색상도 받았다.
27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배우 윌 스미스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뒤 기뻐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특히 지난해 선댄스영화제 개막작으로 선보였다가 애플티브이플러스(tv+)가 구매·배급에 나선 <코다>가 오스카에서 최초로 작품상을 수상한 점도 달라진 아카데미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실제 올해 아카데미는 오티티 영화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넷플릭스 영화 27개 부문을 비롯해 총 40개 부문에 오티티 영화가 후보로 오르며 그 어느 때보다 수상 가능성이 높았던 차였다.
한편, 12개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리며 작품상 수상이 유력해 보였던 제인 캠피언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파워 오브 도그>는 감독상 수상에 그쳤다. 캠피언 감독은 <피아노>로 각본상을 받은 이후 28년 만에 두번째 오스카 트로피를 안았다. <파워 오브 도그>는 1920년대 미국 몬태나를 배경으로 대형 목장을 운영하는 카우보이 필(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기존 남성중심적인 서부극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드니 빌뇌브 감독의 에스에프(SF) 대작 <듄>은 이번 시상식의 최다부문 수상작이 됐다. 기술상과 미술상, 편집상, 음악상 등 6개 부문을 석권했다.
27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배우 제시카 채스테인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뒤 기뻐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피아노>로 각본상을 받은 이후 28년 만에 두번째 오스카 트로피를 안은 제인 캠피언. 그는 이번 아카데미에서 넷플릭스 영화 <파워 오브 도그>로 감독상 수상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남우주연상은 테니스 황제 윌리엄스 자매의 실화 영화 <킹 리차드>의 윌 스미스가 차지했다. 빈민가에서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를 키워낸 아버지 리처드 윌리엄스의 치열한 열정을 감동적으로 연기한 윌 스미스는, <알리>, <행복을 찾아서>에 이어 세번째 도전 끝에 생애 첫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남우주연상을 받은 역대 다섯번째 흑인 배우인 그는, 이날 한 시상자를 폭행하는 돌발 행동으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날 장편 다큐멘터리상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 미국 배우 겸 코미디언 크리스 록이 자신의 아내 제이다 핑킷 스미스의 민머리 헤어스타일을 빗대 “<지 아이 제인>의 후속편을 기대한다”는 농담을 하자 무대에 올라 그의 뺨을 때린 것. 이후 자리로 돌아간 윌 스미스는 “내 아내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마”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잠시 뒤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윌 스미스는 소감 도중 방금 전 벌어진 해프닝에 대해 아카데미 쪽에 사과하며 “내년 시상식에도 꼭 불러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27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배우 윌 스미스(오른쪽)가 코미디언 크리스 록의 뺨을 때리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그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했던 여우주연상은 영화 <타미 페이의 눈>의 제시카 채스테인에게 돌아갔다. <로스트 도터>의 올리비아 콜먼, <패러렐 마더스>의 페넬로페 크루스, <리카르도 가족으로 산다는 것>의 니콜 키드먼, <스펜서>의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제치고 오스카를 품에 안은 제시카 채스테인은, 지난해 <노매드랜드>의 프랜시스 맥도먼드에 이어 자신이 제작자로 참여한 영화로 주연상을 받은 두번째 여성 배우가 됐다. 채스테인과 함께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2파전 양상을 보였던 여우주연상은 니콜 키드먼, 올리비아 콜먼 역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줘 누가 받아도 이상하지 않다는 전망이 나왔다.
국제장편영화상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가 차지했다. 경쟁작 <나의 집은 어디인가>(덴마크), <신의 손>(이탈리아), <교실 안의 야크>(부탄),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노르웨이)를 제친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장편 애니메이션상은 콜롬비아를 배경으로 한 <엔칸토>가, 장편 다큐멘터리상은 흑인 커뮤니티를 다룬 음악 다큐 <축제의 여름(…혹은 중계될 수 없는 혁명)>이 차지했다.
27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대부> 50주년을 맞아 배우 알 파치노(왼쪽부터)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로버트 드니로가 무대 위에 올라 인사를 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007> 시리즈 60주년을 맞아 별도의 기념식을 행사 중간에 마련하기도 했던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영화 <대부>의 50주년을 기념하는 작은 행사도 열려 눈길을 끌었다. <대부>의 유명한 오리지널사운드트랙(‘사랑의 테마’)가 연주되고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와 함께 무대에 오르자 모든 관객이 기립박수를 쳤다. 코폴라 감독은 “50년 전 프로젝트를 이렇게 기념할 수 있어 기쁘다”며 “한번도 감사를 남긴 적 없는 원작자 마리오 푸조와 제작자인 로버트 에번스에게 감사하다. 우크라이나와 함께한다”고 말했다.
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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