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인 건 확실하다. 주요상만 4관왕을 차지했으니. 지난해에도 영화 <미나리>로 윤여정 배우가 여우조연상을 받아 화제가 되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카데미상’의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였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은? 이견이 없을 테다. 남우주연상을 받은 윌 스미스만큼 화제를 모은 사람이 없으니까.
관련 뉴스들이 워낙 많이 나와서 다들 아실 테니 간단히 정리하자면,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윌 스미스가 진행자의 뺨을 때렸고 그 장면이 생방송으로 전세계에 송출된 사건이다. 윌 스미스가 그런 충격적인 행동을 한 이유는 진행을 맡은 코미디언 크리스 록이 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스미스를 상대로 지나친 농담을 해서였다. 제이다는 탈모로 고생하던 차에 삭발한 상태로 참석했다. 크리스 록이 제이다에게 머리를 민 여자 군인이 주인공인 영화 <지 아이 제인>의 후속편에 출연하라고 한 것이다.
진행자 크리스 록의 농담은 문화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일이든 폭력은 안 된다는 반응 한편으로, 그래도 가족을 건드리는 건 지나쳤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서구권 현지 설문조사에서는 크리스 록의 농담은 문제없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서구권은 우리보다 농담에 대해 훨씬 더 관대한 부분은 있다. 이건 필자도 미군부대에서 군 복무를 하며 경험한 일이다. 부모나 배우자를 농담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를 종종 봤다. 하여튼 여러 이유에서 이번 사건은 100년 가까운 아카데미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윌 스미스한테도 마찬가지다. 윌 스미스의 최근 행보를 보면서 사람 인생 어떻게 풀릴지 알 수 없다는 말이 딱 맞다. 최근 그와 관련한 뉴스들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것들뿐이다. 아내가 오랜 기간 외도를 했지만 자신은 상관없다는 인터뷰도 그랬고, 심각한 자살 충동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다는 고백도 귀를 의심케 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폭행을 휘두른 직후 눈물을 보이며 사과하고는 또 바로 뒤풀이 파티에서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는, 그야말로 요동치는 감정 상태가 전세계에 고스란히 중계되었다. 정신의학 차원에서 굉장히 위험한 징후라는 의사들의 의견도 꽤 기사화되었다.
윌 스미스는 전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배우 중 한명이다. 배우로서의 경력이 워낙 길고 화려해서 그런지 그가 가수로도 정상급이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한때 래퍼였다고 하던데? 이 정도로 평가하면 섭섭하다. 앳된 소년이었을 때부터 그는 힙합 듀오(DJ Jazzy Jeff and the fresh prince)로 활동하며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고, ‘상큼한 왕자’라는 예명을 버리고 자신의 이름으로 활동한 솔로 시절에도 ‘빌보드’ 차트 1위는 물론이고 ‘그래미상’도 여러번 받았다. 이번 아카데미상 수상으로 윌 스미스는 가수로서 그래미상과 배우로서 아카데미상을 모두 받은 희귀한 인물이 되었다. 이런 기록이 또 있는지 잘 모르겠다.
‘상큼한 왕자’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던 소년 윌 스미스가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몇곡의 노래를 추천한다. 모두 유튜브에서 쉽게 뮤직비디오를 찾아볼 수 있다. 1980년대 중후반에 대유행했던 뉴 잭 스윙 계열의 곡에 마치 연기를 하는 듯한 윌 스미스의 랩을 얹은 형식이 대부분이고 뮤직비디오에서도 귀여운 소년 윌의 다양한 연기를 구경할 수 있다. 그 유명한 공포 영화 <나이트메어> 시리즈를 차용해 코미디와 공포를 뒤섞은 ‘나이트메어 온 마이 스트리트’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한때 우리나라 나이트클럽에서도 인기 많았던 노래 ‘붐! 셰이크 더 룸’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성인 남자로 훌쩍 성장한 윌 스미스를 볼 수 있다.
사실 이 글을 윌 스미스가 봤으면 좋겠다. 거대한 성공을 거둔 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자살 충동을 호소하는 당신에게도 이런 순수한 시절이 있었다고.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비법일지도 모른다. 어른의 삶이 너무 고달프고 머리 아플 때면 내가 가장 해맑았던 시절을 떠올려보자. 그런 시절 따위 없었다고? 그러지 마요. 토닥토닥.
이재익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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