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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돕식>…마약성 진통제가 일상에 스며들던 때의 공포

등록 2022-05-14 08:59수정 2022-05-14 09:53

[박상혁의 OTT 충전소] 미드 ‘돕식: 약물의 늪’

디즈니플러스 제공
디즈니플러스 제공

팔다리가 잘리고 관절이 꺾인 주검들이 수없이 나오는 좀비 영화를 보면, 처음에는 좀비들의 등장에 비명을 지르지만, 어느 순간 진짜 무서운 것은 좀비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극단적인 공포 앞에서 인간이길 포기한, 좀비보다 못한 사람들.

생각해보면, 현실에서 우리의 삶은 좀비나 괴생명체 때문에 파괴되지 않는다. 유대인을 학살한 아돌프 아이히만처럼 그저 자기 일을 열심히 해온 사람들 때문에 망가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 드라마는 피 튀는 무서운 장면 하나 없지만 보는 내내 숨 막히는 공포가 엄습한다. 좀비보다 무섭고 어떤 희생자들보다 더 안타깝다. 이 모든 이야기가 사실이기 때문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훌루에서 2021년 제작했고 국내에서는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는 미국 드라마 <돕식: 약물의 늪>이다.

1996년. 거대 제약회사 퍼듀 파마는 옥시콘틴이라는 진통제 출시를 앞두고 있다. 아편 성분이 들어 있는 강력한 진통제다. 중독성이 강한 2급 마약이기 때문에 의사들은 쉽게 처방하지 않을 것이다. 회사는 신약 개발에 대규모 자금을 쏟아부었다.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최대한 많이 팔아야 한다. 제약회사 대표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시장을 쫓는 게 아니라 창조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창조한 시장이 레깅스나 숙취해소제라면 어울리는 말이지만 가습기 세정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제약회사는 판매사원을 대규모로 뽑고 그들에게 판매량에 따른 인센티브를 약속한다. 판촉의 핵심은 옥시콘틴을 중독성이 약한 것으로 분류해준 미국 식품의약국(FDA) 라벨이다. 이 라벨을 허가해준 사람은 곧바로 퍼듀 파마의 이사로 이직했다. 더 많은 처방을 위해 의사들에 대한 극진한 접대는 기본이고 많은 학회와 세미나를 후원해서 새로운 의학 용어를 만들어낸다. 내성이 생겨 약효가 떨어지면 이를 ‘돌발적 통증’이라는 단계로 정의한 뒤, 처방을 2~4배로 증가시키는 식이다. 그들은 그냥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할 뿐이다. 의문을 품는 판매사원에게 동료는 말한다. “모든 환자에게 완벽한 약은 없어. 우리의 일은 그냥 약을 파는 것”이라고.

제약회사가 노리는 첫 타깃은 광업, 농업, 벌목 등을 주로 하는 시골 마을이다. 가장 잘 다치는 사람이 많은 곳이며 가장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마약성 진통제에 빨리 중독된다. 옥시콘틴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 범죄율이 폭증하고 감옥에는 자리가 없다. 공동체는 붕괴되고 현실의 좀비들이 넘쳐난다.

중독 현상이 광범위하게 퍼지자 옥시콘틴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마약수사국, 연방검사, 의사들 그리고 내부고발자들이다. 회사는 이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이 드라마가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프게 하는 이유는 제약회사와 맞서 싸우는 사람들조차 결국 옥시콘틴에 중독되어 삶이 망가진다는 것이다. 선한 사람들, 정의로운 사람들조차 각자 아픔이 있고, 가까이 있는 진통제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보는 내내 ‘제발 지금 멈춰줘’라고 수없이 외치게 된다.

베스 메이시의 베스트셀러 <돕식: 미국을 중독시킨 딜러, 의사, 제약회사>가 원작이다. 돕식은 마약중독을 뜻하고 판매사원, 의사, 제약회사가 각각 미국 최대의 약물중독 스캔들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추적했다. 배트맨으로 유명한 마이클 키턴이 주연을 맡았고 제작과 연출에도 참여했다. 그는 이 드라마로 ‘79회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실화라고 하니 현재 상황이 궁금해져 뉴스를 찾아봤다. 엄청난 소송전이 계속되었던 이 사건은 드디어 지난해 미국 법원이 5조원대 배상을 판결했지만, 피해자들은 항소했고 퍼듀 파마는 그냥 파산해버린다. 퍼듀 파마를 운영했던 새클러 가문의 재산 대부분은 해외로 빼돌려졌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씨제이이엔엠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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