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드라마는 이제 식상한 느낌이 먼저 든다. 다른 사람과 몸이 바뀌는 보디 스위치도 익숙한 느낌이다. 신비한 현상이 일어나 과거의 미스터리를 현재에서 해결하는 것도 마찬가지. 그러나 이 모든 게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진다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7일 동안 각기 다른 7명의 인생을 살면서 30년 전 사건을 해결한다면? 익숙하지만 신박하다. 잘 짜인 구성이다. 넷플릭스에서 만든 프랑스 드라마 <레아의 7개의 인생>이다.
레아는 딱히 살아갈 이유도 모르겠고 자존감도 낮은 프랑스 시골 마을에 사는 고등학생이다. 어느날 야외 파티에서 엄청난 양의 마약을 먹는다. 근처 계곡에서 겨우 정신을 차렸더니 옆에 백골 사체가 있다. 경찰에 신고하고 목격자 진술을 한 뒤 “너는 이렇게 살아서 어쩔 거냐”는 부모의 잔소리와 함께 집에 돌아온다. 다음날 아침 레아는 낯선 집에서 남자의 몸으로 깨어난다. 심지어 1991년이다. 꿈인지 약물 부작용인지 헷갈리던 레아는 팔찌를 보고 자신이 어제 사체로 발견된 남자의 몸에 빙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남자의 이름은 이스마엘. 지금은 그가 죽기 일주일 전이다. 이스마엘이 왜 죽었을까 궁금했던 하루가 지나고 잠이 들자, 레아는 다시 2021년 아침으로 돌아와 있다. 현재의 경찰은 아직 사체의 신원도 파악하지 못한 상황. 레아는 이스마엘을 죽인 범인을 찾을 결심을 하고 잠이 드는데 또다시 1991년, 이스마엘로 살았던 어제의 다음날이다. 이번에 레아는 젊은 시절 엄마의 몸에 들어왔다. 이렇게 레아는 매일 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각기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면서 이스마엘의 죽음을 파헤친다.
남자일 때도 있고 여자일 때도 있고 나이 많은 사람으로 살기도 한다. 그리고는 아침이면 현재로 돌아와 사건을 추적한다. 레아는 일주일 뒤 이스마엘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레아의 7개의 인생>은 타임슬립 스토리의 ‘끝판왕’ 느낌이다. 시간여행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현재,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주변인들의 비밀. 드라마 <시그널> 같으면서 영화 <백 투 더 퓨처> 같은 느낌도 들고, <너의 이름은> 같은 감성도 있다. 이 모든 게 완벽하게 맞물려 있다. 많은 예능 작가들이 함께 모여서 집단 창작한 느낌인데 나타엘 트라프의 소설 <레오 벨라미의 7개의 인생>이 원작이다. 그래서 추리드라마이면서 성장드라마다. 레아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하루씩 살면서 삶의 이유도 조금씩 찾게 된다. 성적 호기심이 많은 나이인 만큼 레아가 경험하는 다양한 관계도 흥미롭다.
우리는 그동안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캐릭터를 연기하는 모습은 많이 봤다. 이 드라마에서는 7명의 배우가 자신에게 빙의된 각자 다른 ‘여자 고등학생 레아’를 연기해야 한다. 7개의 다른 몸으로 표현되는 레아의 감정 변화가 놀랍도록 정교하다.
최근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도 20년 전 세상으로 돌아가는 타임슬립을 경험했다. 싸이월드의 헬게이트가 열렸기 때문이다. 풋풋했던 과거 사진을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그때는 당연했는데 지금은 틀린 글이나 사진도 보게 된다. 드라마에서도 30년 전에는 참고 견뎌야 했던 차별적 상황과 외모 비하, 폭력적인 상황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레아의 모습이 종종 등장한다. 사람들은 미화되어 있는 과거를 그리워하지만, 막상 과거로 돌아간다면 견디기 힘든 일이 많을 것 같다.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레아는 일주일 뒤 어떤 선택을 할까? 드라마 속 대사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도 우리 인생에는 언제나 선택의 여지가 있다. 그래서 보는 동안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커진다. 무조건 보기를 추천한다. 꼭 스포일러는 피하면서 완주할 수 있기를!
씨제이이엔엠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