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드래곤의 노래 ‘삐딱하게’는 대담한 선언으로 시작한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 찬란한 인기가 영원할 것 같았던 그룹 빅뱅의 갑작스러운 몰락을 예견한 것이었을까? 사실 무척 흔히 쓰이는 아포리즘(경구)이긴 하다. 다른 노래에서도 숱하게 나온 적 있는 노랫말이지만 이 노래만큼 도발적으로 귀에 박힌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 영원한 건 절대 없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말처럼 옳을 수밖에 없는 명제이며 이 명제는 방탄소년단(BTS)에게도 해당된다. 방탄소년단도 언젠가는 끝난다. 꽤나 많은 사람들은 지금이 그때인가 의심하고 있다.
멤버들은 물론 소속사에서도 분명히 밝혔다. 완전히 활동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충전을 위해 잠시 쉬어 가는 것이라고. 그럼에도 불신과 불안은 사라지지 않고 소속사 하이브의 주가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방탄소년단이 단체 활동을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한 원인 중 하나가 군 복무라는 의견도 나오는데, 특히 외국 언론에서 이런 기사가 여럿 나왔다. <로이터> 통신은 병역의무가 한국에서 무척 논쟁적인 주제이며,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대체 복무 관련 법안 논의 결과가 방탄소년단에게 큰 의미를 가질 것이라는 분석 기사를 냈다. 오늘 칼럼은 이에 대한 반박이기도 하다.
<로이터> 통신은 맞으면서도 틀렸다. 국회에서 그렇게 열심히 논의하는 것 같지 않다. 필자가 몇달 전 다른 칼럼에서 살짝 이 문제를 언급한 적 있는데 그때와 변한 게 전혀 없다. 대선 직전까지만 해도 양당 모두 이 이슈를 종종 입에 올리곤 했는데 선거가 끝나자 다들 나 몰라라 분위기다. 가장 최근에 나온 관련 고위 인사의 발언을 찾아봤더니 두 가지 정도가 눈에 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무엇보다 국민 여론이 중요하다면서 “저희가 주도적으로 하는 게 아니지만 이런 기조로 접근해 병무청과 국회에 의견을 전달했다”고 슬쩍 발을 뺐다. 이기식 병무청장은 국회 국방위원회에 참석했을 때 “앞으로 병역 자원이 부족한 것을 가장 큰 관점으로 해서, 국민적 의견을 수렴해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필자가 가장 아쉬운 지점이 바로 여기다. 문체부, 병무청, 여당 야당 모두 이 이슈에 대해서 국민 여론이 중요하다고 미루고만 있다. 그렇다면 국민 여론을 충분히 들으려는 시도라도 해야 할 텐데, 그 흔한 공청회 한번 열리는 걸 못 봤다. 민간 차원의 여론조사는 오히려 여러 차례 이루어졌는데도 말이다. 예전부터 우리나라의 입법-정책 결정 과정에 부족했던 부분이다.
공청회, 청문회 모두 한자말이라 어렵지만 영어는 도리어 간단하다. 히어링(Hearing). 일단 들어본다는 뜻이다. 들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여론을 수렴하나? 우리나라처럼 온라인 시스템이 잘 구축된 상황에서는 굳이 사람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을 필요도 없이 얼마든지 온라인 공청회가 가능하다. 특히 병역제도 개선의 당사자들인 젊은 세대에겐 오히려 온라인 공청회가 참여하기 쉬울 수도 있다. 곧 20살이 되는 아들의 아빠인 필자도 참여하고 싶다.
멤버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진은 1992년생으로 이미 군대를 갔어야 하지만, 2020년 개정된 병역법에 따라 문체부 장관의 입영 연기 추천을 받아 올해 말까지 입영이 미뤄진 상태다. 법 개정이 없다면 몇달 안에 입영해야 한다. 방탄소년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 전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로 우승을 차지해 화제를 모은 임윤찬군도 이 문제와 관련이 있다.
여기서 문제. 이 정도 콩쿠르에서 우승하면 병역이 면제될까, 안 될까? 국민들 100명 중 한명도 모를 것이다. 필자가 알아본 결과, 현재 18살인 임윤찬군은 놀랍게도 이미 3년 전에 군 면제를 받았다. 임군은 2019년 ‘윤이상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해 대체복무가 확정된 상태다. 그렇다면 다음 문제. 이렇게 대체복무가 가능한 콩쿠르는 몇개나 있을까? 정답은 28개다.
36개월이었던 군 복무 기간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출생률과 병역 자원 수 또한 매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1973년에 처음 병역특례 조항이 만들어질 당시의 근거는 ‘국가 인지도 향상’이었다. 지금도 이 근거가 유효한지, 그렇다면 그 대상도 예전과 같아야 하는지, 이미 벌써 여론을 수렴하고 개정을 거쳤어야 한다. 그것이 대상 확장이든 조정이든 아예 폐지든 어느 쪽이든 간에. 그러니 지금이라도 국민들 목소리부터 제대로 들어보자.
지드래곤은 “영원한 건 절대 없어”라며 끝을 노래한 데 반해 방탄소년단은 ‘낫 투데이’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언젠가 꽃은 지겠지만 그날이 오늘은 아니”라고. 환갑이 넘은 나이의 톰 크루즈가 열연한 영화 <탑건: 매버릭>에서도 같은 대사가 나온다. “언젠가 내가 전투기를 더 이상 몰지 못하는 날이 오겠지만 그날이 오늘은 아니”라고. 병역법 개정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모르겠다. 정부와 여당 야당 모두 차일피일 미루다가 해를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의 끝이 여기는 아닐 것이다. 따로 또 같이 그들은 더 나아갈 것이다. 아직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