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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우영우가 떠났다, 우리 사회의 고민거리를 남기고

등록 2022-08-19 10:08수정 2022-08-21 10:11

자폐인 주인공 눈길…0.9% 시작 17.5% 종영
장애인 관계성 재현…사회적 화두 보여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마지막회의 한 장면. 이엔에이 제공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마지막회의 한 장면. 이엔에이 제공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가 막을 내렸다. 18일 방영된 최종회에서 우영우(박은빈)가 한 말처럼, <우영우>는 끝까지 시청자들에게 ‘힐링’을 선물했다. 중반 이후 만듦새를 둘러싼 논란은 있었지만, 여러 가지 의미에서 한국 드라마에 큰 획을 그었다.

시청자들이 자발적으로 낯선 채널 번호를 외우고 ‘본방 사수’하며 끌어올린 시청률, 각종 ‘최고’ 기록을 경신한 화제성, 온·오프라인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드라마에 대한 평가와 숙의가 그 증거다. 18일 마지막회 시청률은 17.5%를 기록했다(닐슨코리아 집계, 전국 기준). 지난 6월29일 첫 회 시청률 0.9%보다 19배 이상 상승한 수치다. 지난달 18일부터 지난 16일까지 한 달 누적 검색량만 1485만7000건에 달한다(빅데이터 전문기업 티디아이 집계). <우영우> 제작진 쪽은 시즌2에 대해 “긍정적으로 논의 중”이라는 입장이다.

<우영우>의 핵심 도전은 무엇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여성 주인공이라는 설정이었다. 2013년 방송한 <굿 닥터>(KBS)를 비롯해 이전에도 자폐성 장애를 지닌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존재했다. 주로 특정 분야에서 천재성을 드러내는 서번트증후군을 다뤘다. 그래서 <우영우> 드라마 방영 전에 ‘천재 변호사’라는 설정이 진부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우영우>는 진부한 설정 가운데서도 진일보한 측면을 보여줬다. 관계성 재현이 남달랐다. 장애인을 ‘사회적 관계 속의 개인’으로 입체화했다. 1회에서 정명석(강기영) 변호사는 우영우와 첫 대면 뒤 ‘아무리 천재라도 자기소개조차 제대로 못 하면 의뢰인을 어떻게 만날까’ 의심하지만, 이내 우영우의 능력과 노력, 진심을 간파하고 자신의 편견을 거둔다.

정명석 변호사를 연기한 강기영(왼쪽)과 장승준 변호사를 연기한 최대훈. ENA채널 제공
정명석 변호사를 연기한 강기영(왼쪽)과 장승준 변호사를 연기한 최대훈. ENA채널 제공

반면 15회에서 장승준 변호사(최대훈)는 우영우를 팀원에서 배제한다. 장애인의 직장생활이 어려운 이유가 장애 자체에 있기보다 장애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경험에 좌우된다는 점을 드러낸다. 한 장애인권단체 활동가는 “우영우의 가장 큰 판타지는 정명석 같은 직장 상사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김준혁 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도 <한겨레> 칼럼에서 시대별 ‘장애’ 개념의 변천사를 소개하며 “우영우에게는 자기 역할을 수행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주변 환경이 주어져 있다. 개인의 ‘손상’이 어떻게 ‘장애’가 되지 않을 수 있는지 <우영우>는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우영우는 중증 자폐인 김정훈(문상훈), 지적장애인 신혜영(오혜수)과도 의미 있는 소통을 한다. 드라마는 우영우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대표’하는 인물이 아님을, 여러 대사로 못 박는다. “‘스펙트럼’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자폐인은 천차만별입니다.” “자폐가 있다고 이 세상 장애인들 마음은 다 알 것 같아요?” 자폐 당사자이자 성인자폐(성)자조모임 에스타스(estas)의 공동 조정자인 장지용 칼럼니스트는 “드라마가 자폐 당사자들의 우려를 인식하고, 의식적으로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한바다가 우영우를 채용한 것이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는 권민우 변호사(주종혁) 캐릭터는, ‘공정’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권모술수’의 숨은 목적과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 또 다른 직장 동료이자 학교 동창인 최수연은 우영우에게 시험 범위 변경을 알려주고 병뚜껑을 따주는 등 일상적 지원을 통해, ‘봄날의 햇살’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시청자는 ‘장애란 무엇인가’ ‘장애와 관련한 어떤 시민성이 필요한가’라는 드라마의 화두를 다양한 인물과 상황에 투영해볼 수 있다.

권민우 변호사를 연기한 주종혁(왼쪽)과 최수연 변호사를 연기한 하윤경. ENA채널 제공
권민우 변호사를 연기한 주종혁(왼쪽)과 최수연 변호사를 연기한 하윤경. ENA채널 제공

이처럼 우영우는 장애인의 대표가 아닌, 매개이자 촉매제로 역할 한다. <우영우> 드라마가 그랬다. ‘우영우 신드롬’으로 불리는 현상은, 드라마의 거센 인기몰이는 물론 드라마가 촉발한 사회적 쟁점의 첨예함을 포괄한다. <우영우>는 ‘밝은 힐링 드라마’라는 외피를 쓰고 장애인 차별, 동물권, 어린이 인권, 장애여성 성폭력과 성적 자기결정권, 여성노동 차별 등 사회적으로 예민한 소재를 ‘쿨’하게 풀어냈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시청자들이 <우영우>에 반응한 요인에 대해 “지금 이 시대에 가장 미묘한 정치적 쟁점인 장애, 젠더 등을 피하지 않고 예리하게 공략했다. 예민하거나 무거울 수 있는 소재에 당의정을 잘 입혔다”고 평가했다.

<우영우>는 또한 법정물이라는 장르를 영리하게 활용해, 복잡한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입장을 합리적으로 보여줬다. 사찰 문화재 관람료 문제를 다루면서 법정에서는 원고와 피고로 대립하는 시민 개인과 불교계의 입장을 두루 전하고, 법정 밖에서는 더 넓은 맥락에서 정부의 일방적 정책 변경 문제를 짚는 식이다. 재판의 승패를 넘어, 사회 정의와 진실, 휴머니즘에 대한 고민으로 연결시켰다. <우영우>의 에피소드 원작자인 신민영·신주영·조우성 변호사는, “<우영우>는 전문 법조인이 보기에도 흥미로운 법정 드라마”라고 입을 모았다. 어설픈 정의감 대신, 법리의 문제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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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우>의 한 장면. 나무엑터스 제공

드라마 방영 전에는 이러한 대흥행을 예측하기 쉽지 않았다. 연출을 맡은 유인식 피디는 지난달 2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소재가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우영우>를 편성한 <이엔에이>(ENA)채널 관계자는 “장애인 변호사라는 설정 탓에 간접광고(PPL·피피엘)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제작 초기 제작사에서 <굿 닥터>가 미국에 리메이크 판권으로 수익을 낸 선례 등을 언급한 걸 보면, <우영우>도 국외 시장을 더 염두에 두고 제작됐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한국 시청자들은 이미 <우영우>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만 19살 이상 성인 1천 명 조사)를 보면, ‘누군가를 혐오하는 시선·행위가 결국은 (나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생각을 해봤다는 응답이 91.1%에 달했다. 응답자의 72.4%는 한국 사회가 지금 같은 수준으로 차별에 대응하면 사회적 갈등이 심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차별금지를 법제화하는 데 찬성하는 응답은 88.5%였다. 사회적 인권 감수성이 높아짐에 따라, 방송 콘텐츠에 대한 기대 수준도 높아진 상황이었다는 의미다.

이처럼 <우영우>의 또 다른 성과는 ‘케이(K)-시청자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우영우>를 통해, 사회적 약자를 재현할 때의 성실함과 윤리적 태도의 소중함을 알아봐 주는 시청자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드라마도 성공할 수 있다’고 보여줬다.

ENA채널 제공
ENA채널 제공

“<우영우>는 판타지”라는 일각의 평가는 맞는 말이다. 시청자들은 드라마가 펼치는 판타지 속에서 대리만족과 위안을 얻거나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와 미래를 꿈꿨다. 중요한 건 드라마가 ‘어떤’ 판타지를 지향하는가, 얼마나 많은 시청자 시민을 그 판타지에 개입시켜 함께 숙의할 기회를 제공했는가의 문제다. <우영우>는 그런 의미에서 한국 드라마 역사 어딘가 나름의 이정표를 남긴 작품이 될 것이다. 이 시대 시청자들과 교감했기 때문이다.

드라마 첫 회에서 법무법인 한바다 건물의 1층 회전문을 통과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영우는, 마지막회에 이르러 홀로 회전문을 통과하는 데 성공했다. 직장 동료이자 연인인 이준호(강태오)가 알려준 왈츠 박자를 활용해, 꾸준히 훈련한 덕분이다. 16회에 이르는 동안, 우영우와 우영우를 둘러싼 사람들의 성장을 함께 지켜본 시청자들도 우영우와 같은 ‘뿌듯함’을 느꼈다.

물론 아쉬움과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이 드라마 역시 자폐 장애인의 천재성에 주목하고, 자폐 당사자의 입장이 부족하다는 의견 등이다. 2022년의 <우영우>가 이전 드라마들보다 딱 한 뼘만큼 성장해 큰 사랑을 받은 것처럼, 여기에서 또 한 뼘 나아간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목소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10대 자폐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국드라마 <별나도 괜찮아>는 2017년 나온 시즌1에서 ‘자폐 당사자 입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은 뒤, 자폐 당사자 자문과 출연진을 보강해 이듬해 시즌2를 선보인 바 있다. 성인자폐(성)자조모임 에스타스의 공동 조정자인 장지용 칼럼니스트는 “자폐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드라마에 대한 평가가 매우 다양하게 나온다. 다양한 목소리들을 기록하고 널리 공유할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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