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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궁전 채운 안젤름 키퍼…‘가을’ 품은 그의 작품이 한국에 왔다

등록 2022-10-05 07:00수정 2022-10-05 09:21

22일까지 한남동 타데우스로팍 갤러리서 개인전
올해 3월부터 이탈리아 베네치아 두칼레궁에서 선보이고 있는 안젤름 키퍼의 초대형 회화들. 궁전의 주요 회합 시설 중 하나인 스크루티니오의 방 사면을 베네치아의 과거 발자취와 지금 현실세계를 잇는 역사적 여로의 풍경들로 채워 넣었다. 관, 신발짝, 식물 줄기, 옷가지, 카트 등의 낯선 오브제들이 뒤덮은 대작들의 풍경은 관객의 시선을 압도한다.
올해 3월부터 이탈리아 베네치아 두칼레궁에서 선보이고 있는 안젤름 키퍼의 초대형 회화들. 궁전의 주요 회합 시설 중 하나인 스크루티니오의 방 사면을 베네치아의 과거 발자취와 지금 현실세계를 잇는 역사적 여로의 풍경들로 채워 넣었다. 관, 신발짝, 식물 줄기, 옷가지, 카트 등의 낯선 오브제들이 뒤덮은 대작들의 풍경은 관객의 시선을 압도한다.

16세기 르네상스 미술 거장의 걸작과 자신의 그림을 나란히 맞세우며 작품 대결을 펼쳤다. 그것도 세계 미술계 최고 잔치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최고 궁전 한복판에서. 승부는 어떻게 됐을까.

그의 이름은 안젤름 키퍼(77)다. 전후 세계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독일의 신표현주의 사조 대표 작가다. 그는 지난 3월 베네치아 두칼레궁의 큰 홀을 자신의 신작들로 채웠다(10월29일까지). 두칼레궁의 핵심 시설인 10인 평의회의 대회의실을 세계에서 가장 큰 유화인 가로 24m, 세로 7m의 대작 <천국의 영광>으로 채운 500년 전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야코포 틴토레토(1519~1594)와 작심하고 그림 맞짱을 떴다.

키퍼는 두칼레궁 마지막 방의 네 벽과 진입부 공간을 카트, 관, 신발, 옷가지, 식물 줄기, 짚단 등이 거칠고 두툼한 물감층의 화폭에 달라붙은 특유의 스펙터클한 거대 잡탕 회화인 ‘콤바인’ 페인팅 대작들로 덮어버렸다. 중세부터 근세기까지 비극과 격정이 되풀이된 베네치아 공화국의 역사가 새겨졌다. 부식시키고 마구 칠하고 덧칠하고 덧붙이고 긁고 깎아내는 복합적 제작 기법으로 처절하면서도 장엄한 역사 도시 베네치아의 자취를 표현했다.

독일 출신 거장 안젤름 키퍼의 신작 회화 &lt;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gt;(2022). 서울 한남동 타데우스로팍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초대 개인전 대표작 중 하나다.
독일 출신 거장 안젤름 키퍼의 신작 회화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2022). 서울 한남동 타데우스로팍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초대 개인전 대표작 중 하나다.

‘이 문장은 불탄 뒤 결국 작게 빛을 낸다’라는 철학적 제목을 지닌 키퍼의 대작들은 크기와 표면의 이미지, 질감뿐만 아니라 제작 방식 면에서도 경이로움을 안겨주었다. 500년 전 틴토레토나 티치아노 같은 베네치아의 그림 대가들이 제자, 장인들을 거느리며 분업 체제로 대형 공방을 꾸리며 대작을 만들었던 것처럼, 키퍼 또한 대형 공방의 수장이 되어 작업을 꾸렸다. 안료를 덮고 뿌리는 드리핑부터 주검이 들어가는 관이나 사람들의 옷가지, 쇼핑카트 등을 붙이는 작업, 거대한 분량의 안료를 처바르는 작업, 이 모든 이미지를 부릴 대형 화폭을 만드는 작업 등에서 영역별 전담 팀을 꾸려 전체 작업을 총괄하는 지휘관이 되어 대작을 완성했다. 홀을 가득 메운 파천황적인 그림의 규모와 내용은 물론이고 그림을 제작하는 방식도 거장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하면서 정면 대결을 꾀한 셈이다.

재료와 오브제를 구성하는 방식은 현대적 감수성과 현대적 도구, 기계를 활용했지만, 키퍼는 틴토레토와의 대작 대결에서 막상막하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내공을 과시했다. 24m 화폭에 예수와 성모, 둘을 둘러싼 천사와 성인, 군중 500여명의 장대한 형상이 환상적으로 직조되어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정화에 비견되기까지 하는 틴토레토의 <천국의 영광>에 견줘 전혀 아우라가 위축되지 않았다. 드넓은 공간을 단박에 장악하면서 역사와 시공을 가로지르는 인간의 역사를 지금 현재 인간문명의 기물들을 여기저기 붙이는 날 선 콤바인 회화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우리 삶은 결국 지나고 나서 바스러지거나 몰락한 뒤 비로소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새롭게 빛난다는 진실을 전했다.

독일 출신 거장 안젤름 키퍼의 근작 &lt;지금 집이 없는 사람…&gt;(2016~2022). 서울 한남동 타데우스로팍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초대 개인전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독일 출신 거장 안젤름 키퍼의 근작 <지금 집이 없는 사람…>(2016~2022). 서울 한남동 타데우스로팍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초대 개인전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올해 베네치아에서 세계 미술계 최고의 걸작 회화를 빚어낸 키퍼의 근작들이 한국을 찾아왔다. 14년 만에 열리는 초대 개인전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이다. 서울 한남동 타데우스로팍 갤러리에 지난달 1일부터 차려진 이 전시는 제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키퍼가 60여년간 기억하며 흠모해왔다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의 시구에서 영감을 느껴 만든 근작과 신작 13점이 나왔다. 전시장 현장에는 낙엽과 쓸쓸한 대지, 익으면서 물러 터진 나무 열매 등 가을의 자연을 상징하는 이미지들로 채워진 작품들이 내걸렸다. 바닥에 키퍼가 흙벽돌을 조합해 미완성 상태로 만든 신작 설치작품도 보인다. 출품작들 제목은 역시 릴케의 시구인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로 대부분 통일돼 있는데, 베네치아 전시의 전체 제목인 ‘이 글은 불타고 난 뒤 마침내 작은 빛을 발한다’와 기묘하게 조응하는 듯하다.

타데우스로팍 갤러리의 안젤름 키퍼 초대 개인전 현장. 가을을 상징하는 회화 작품들이 내걸린 가운데, 전시장 바닥에 키퍼가 흙벽돌을 조합해 미완성 상태로 만든 설치작품 &lt;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gt;(2022)가 보인다.
타데우스로팍 갤러리의 안젤름 키퍼 초대 개인전 현장. 가을을 상징하는 회화 작품들이 내걸린 가운데, 전시장 바닥에 키퍼가 흙벽돌을 조합해 미완성 상태로 만든 설치작품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2022)가 보인다.

키퍼의 조형세계를 관통하는 열쇠는 바로 ‘이미지의 연금술’이다. 작가가 애호하는 납 덩어리, 식물 줄기, 볏단 등은 일개 강퍅하거나 하찮은 물질일 뿐이다. 하지만 그의 화폭에서 안료의 붓질과 오브제의 붙임을 통해 감성과 역사적 성찰의 세례를 받으면서 특별한 기록과 예술적 산물로 변신한다. 들머리 첫 작품부터가 강렬한 연금술의 소산이다. 화폭에는 납으로 된 낙엽 모양의 조각들이 온갖 인간 감정을 뒤발한 듯한 어두운 색층의 길바닥 위에 붙어 있는데, 눈여겨 살펴보면 나풀거리며 요정처럼 변신하는 이미지의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22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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