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약한영웅>(왼쪽, ⓒcopyright 재담/ 서패스/ 김진석)이 드라마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고 있다. (드라마 포스터 이미지는 웨이브 제공)
학교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약한영웅 클래스1>(웨이브)가 화제다. 드라마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뒀다. 2018년 5월 네이버 웹툰에서 첫 선을 보인 웹툰 <약한영웅>은 수많은 학원액션물 가운데서도 독특한 캐릭터와 호쾌한 액션신으로 차별화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연재 시작부터 4년이 지난 현재까지 요일별 인기 상위 5위권 안에 머무르고 있으며, 일본·중국·북미·태국·대만·인도네시아·프랑스·독일·스페인 등 해외에도 수출됐다.
웹툰은 세상 약해 보이는 왜소한 몸집의 주인공 ‘연시은’이 자신과 친구를 지키기 위해 ‘파이터’로 성장하는 이야기가 골자다. 드라마는 시은이 체급 차이를 무시하고 ‘처절하게’ 싸움에 나서게 된 과거, 시은과 친구 안수호의 이야기를 8부작에 담았다. 웹툰에서는 ‘안수호편’(26~37화)으로 10화가량 연재한 내용에 살을 붙여 각색한 것이다.
웹툰 <약한영웅>은 ‘약함’과 ‘폭력’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또래집단에 강한 영향을 받는 십대 청소년들의 시기·질투 등의 심리와 우정을 섬세하게 그린 ‘관계성 맛집’이기도 하다. 웹툰을 각색한 드라마 <약한 영웅>(웨이브)이 사랑받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원작 웹툰을 만든 서패스·김진석 작가는 드라마를 어떻게 봤을까? 여전히 주간 연재 마감으로 바쁜 두 작가를 <한겨레>가 웹툰기획사 재담미디어를 통해 서면으로 만났다. 웹툰과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아울러 들었다. 두 작가의 일문일답을 각각 나눠서 전한다. 아래는 그림을 맡은 김진석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김진석 작가의 캐리커처. ⓒcopyright 재담/ 서패스/ 김진석
―웹툰 원작 드라마가 탄생했습니다. 원작자로서 소감이 어떠신가요?
“매우 기쁩니다. 그리고 신기해요. 제가 그린 캐릭터들이 실제 살아있는 인물들로 표현된다는 점이 너무나 멋진 일인 것 같습니다.”
―재담미디어에서 서패스 작가님의 <약한영웅> 기획안을 토대로 작가님을 그림 작가로 추천했다고 들었는데요. <약한영웅> 이야기를 처음 보셨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함께 작품을 만들기로 결정하신 이유도요.
“저는 작품을 볼 때 아이러니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 매력적이면 매력적일수록 이야기의 몰입도가 높아진다고 생각해요. <약한영웅> 스토리를 처음 받아보았을 때, ‘연시은’이라는 주인공이 가지는 아이러니가 아주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도입부에서의 임팩트도 좋았고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 또한 기대됐어요.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연시은 이미지가 떠올랐고, ‘그리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 ‘연시은’의 일상 모습과 싸울 때 모습이 백팔십도 다른 게 작품의 여러 매력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거의 웃지 않는 캐릭터라서 한 번 웃어줄 때 독자도 ‘심쿵’하기도 하고요. 연시은 캐릭터를 표현할 때 신경 쓰는 점이 있다면요?
“말씀하신 것처럼 연시은의 얼굴을 표현하는 것이 제게는 매번 숙제와 같은 일입니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까지 냉소적인 표정을 보여주다가 점차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면서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표정을 그려야 했고, 때로는 액션 신조차도 아름다워 보이는 얼굴로 보이길 원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보통의 액션만화 주인공의 일반적인 표정과는 다른, 연시은만의 독특한 표정이 나왔던 것 같아요. 지금도 연시은의 액션신을 그릴 때는 상당히 부담이 됩니다. 독자들 입장에서는 순식간에 지나가는 씬임에도 연시은의 표정 하나하나를 신경 쓸 수밖에 없으니까요.”
―지난 2020년 부천국제만화축제 팬미팅에서 연시은 캐릭터는 작가님이 키우는 고양이 영웅이에게 영감을 받아서 고양이상으로 그렸다고 하셨죠. 영웅이는 잘 지내나요?
”나이가 많아 전보다 움직임이 적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애교도 많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동생 니아(고양이)와 항상 푸근하게 껴안고 있어서 참 따뜻하고 좋아 보여 제가 부러워합니다.”
―당시 팬미팅에서 연시은 캐릭터에 어울리는 현실 연예인으로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을 맡았던 임시완 배우를 꼽기도 하셨는데요. 이번 웨이브에서 공개한 드라마 <약한영웅 클래스 1>에 출연한 배우들의 캐릭터 싱크로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드라마를 처음 봤을 때, 박지훈 배우님이 연시은 캐릭터와 싱크가 너무 잘 맞아서 놀랬습니다. 박지훈 배우님을 몰랐을 때는 임시완 배우님을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박지훈 배우님이 연기하는 연시은 외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네요. 특히 시은의 수호에 대한 애잔하면서 한편으로는 냉담하고 무섭기까지 한, 그 눈빛을 잘 표현하신 것 같아 원작자로서 기분이 좋습니다.”
―시은의 친구 ‘안수호’ 캐릭터는 웹툰과 달리 싸움을 잘하는 캐릭터로 나옵니다. 드라마의 각색을 어떻게 보셨나요?
“드라마에서 수호는 만화와는 다른 재미를 주는 것 같아요. “우리 선은 넘지 마시고”라며 항상 ‘적당히’를 강조하는 인물로 나오는데, 주어진 삶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매 순간을 즐기는 인물이기에, 시은과는 정반대의 인물로 잘 표현된 것 같습니다.
시은과 수호, 범석의 관계를 다이나믹하게 표현하면서 드라마라는 매체의 특성을 살리는 데 있어 필요한 설정이었던 것 같구요. 덕분에 시은과 수호의 서로를 지키려는 마음이 잘 구현됐다고 생각합니다.”
웹툰 원작 드라마 <약한영웅 클래스1>의 장면들. 웨이브 제공
―드라마에서 인상 깊게 보신 장면은 무엇인가요?
““내가 부탁했잖아. 그만하라고”라는 연시은의 대사가 참 인상적이었어요. 연시은의 캐릭터성을 드러내는데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연시은이라는 캐릭터는 여느 주인공과는 다르게 영웅적인 행동, 즉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나서서 행동하는 캐릭터는 아니거든요. 오히려 자신과 상관없는 외적인 일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세상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가진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이 수호를 만나 변화를 겪게 됩니다. 알을 깨고 나오는 거죠.”
―웹툰에서는 ‘빌런’에 가까운 오범석 캐릭터도 드라마에서는 더 입체화됐죠.
“드라마에서는 범석이 만화보다 더 복합적이고 자세하게 표현돼 있어서 재미있게 보았는데요. 범석의 심리적인 변화와 과거의 상처가 잘 부각되어 인상적이었습니다. 세 인물(연시은, 안수호, 오범석)의 희비가 긴장감 있게 표현되어서 전체적으로 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되네요.
덧붙여 액션도 머뭇거림 없이 과감하게 표현된 것 같아 보는 동안 꽤 몰입했습니다. 덕분에 ‘19금’이 달렸지만, 인물들의 내적인 감정을 표출하는데 있어 이 정도는 표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제작진의 노고에 감사와 박수를 보냅니다.”
―웹툰의 액션신도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액션신을 그릴 때 염두에 두시는 부분이 있을까요?
“저는 만화의 액션신에서 세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는 액션의 목적, 동기입니다. 목적이 없는 액션은 낭비이자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목적과 동기가 그만큼 절실하고 공감이 간다면 액션 또한 재미있고 몰입도가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는 임팩트 전과 후를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만화는 분절된 컷과 컷을 조합함으로써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어내는데요. 음악으로 치면 타악기를 두드리는 것처럼, 강세의 변화를 어떤 식으로 엮는지에 따라 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보다 그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의 과정, 혹은 일이 벌어진 후의 상황을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따라 액션의 재미가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주먹이 상대의 얼굴에 맞는 순간보다, 맞기 전 모습과 맞은 후 벌어지는 상황을 더 신경 써서 표현하려고 합니다.
세 번째로는 잘 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액션이 펼쳐지는 것보다 어떻게 매듭지어서 다음 신으로 연결시킬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액션신 역시 그 신만으로도 하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기승전결의 흐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 이야기의 흐름 안에 잘 녹아들어 있어야 하고 결국 이야기와 이야기의 연결고리를 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항상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웹툰 <약한영웅> 속 액션 이미지들. ⓒcopyright 재담/ 서패스/ 김진석
―액션신을 연출할 때 영화 <매트릭스>를 참조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죠.
”최고의 액션신으로 꼽는 작품 중에는 <매트릭스>도 있지만,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극장판도 꼽고 싶어요. 제가 액션신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위의 세 가지가 잘 드러난 작품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진주·황미나 작가님을 좋아한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요. 또 어떤 만화가와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으시는지 궁금해요.
“영감을 준 만화가와 작품이 너무 많아서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인데요. 인간적인 면에서는 이두호, 이현세 선생님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제게 만화가로서의 태도와 삶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주셨고 그분들의 발자취를 보며 흉내라도 내보려고 지금도 노력 중입니다.
만화 자체로만 놓고 이야기한다면, 국내에서는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의 이명진 작가님과 국외에서는 <에이치투>(H2)의 아다치 미츠루 작가님을 언급할 수 있겠네요. 이명진 작가님은 학창 시절 때 어떻게 만화가가 될지 구체적으로 꿈꾸게 해 주신 분이고요. 아다치 미츠루 작가님의 연출은 제게 만화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깨우게 했는데, 글의 행간처럼 컷과 컷 사이의 공간을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던져준 작가입니다.”
―웹툰 연재가 4년을 넘겼습니다. 작가님께 <약한영웅>은 어떤 의미인가요?
“제 만화 인생에 전환점이 된 작품입니다. 저는 만화를 그리는 일이, 남들이 일기 쓰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떤 화수를 보면 그 화수를 그렸을 때 일어났던 일과 감정, 생각 등이 고스란히 떠오르게 되는데요. <약한영웅>을 시작하기 전에도 만화 연재는 계속해왔기 때문에 생활 자체에서 특별히 변화할 건 없었지만, <약한영웅>을 기점으로 많은 독자들과 소통하게 되고 이야기가 재생산되고 이렇게 드라마화까지 되니, 제게는 인생에서 새로운 경험들을 일기처럼 차곡차곡 채우고 있는 과정이고, 또 만화가로서 책임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을 시작하게 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김진석 작가는 “독자분들 중에 <약한영웅>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생일에 맞춰 꼬박꼬박 팬아트를 보내주는 팬이 있다”며 “마음을 담아 그려주신 정성에 감동하고 책임감 또한 느낀다”고 전했다. “<약한영웅>을 보는 동안 잠시라도 삶의 한켠에 즐거움이라는 감정이 선물처럼 전달되기를 희망하는 마음입니다.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만화가 김진석이라는 이름으로 독자분들께 계속해서 성장해가는 작가로서 보여지기를 바랍니다.”
김효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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