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다큐 <부틀렉> ‘햇님의 나라’편 장면. 전주방송 제공
“하얀 물결 우에/ 빨갛게 비추는/ 햇님의 나라로/ 우리 가고 있네/ 둥굴게 솟는 해/ 웃으며 솟는 해/ 높은 산 위에서/ 나를 손짓하네”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이 만들고 가수 김정미가 부른 노래 ‘햇님’. 한국 사이키델릭 록의 걸작으로 꼽히는 1973년작 앨범 <김정미 나우(NOW)> 수록곡이다. 하지만 유신독재 시절 “창법이 저속하다”는 이유로 김정미의 노래가 대거 금지곡 처분을 받으면서 앨범 대부분이 압수·폐기됐고, 그 결과 좀처럼 구하기 힘든 희귀반이 됐다.
한국 사이키델릭 록의 걸작으로 꼽히는 1973년작 앨범 <김정미 나우(NOW)>.
이 앨범이 뒤늦게 조명받은 건 국외에서였다. 수십년이 지난 뒤 미국에서 앨범이 복각됐고, 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서 숨은 명반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여러 음악인들이 커버하기도 했다. 버클리음대 출신들로 구성된 음악집단 아파트먼트 세션스, 포크 가수 스콧 힐데브란드, 스매싱 펌킨스의 기타리스트 제프 슈뢰더 등은 ‘햇님’의 예술성에 주목하며 재해석했다.
이 노래를 재조명하며 2022년 버전으로 부활시키는 과정을 담은 음악 다큐멘터리가 우리를 찾아온다. 전주방송(JTV)이 성탄 전야인 24일 밤 12시25분 자사 채널과 유튜브로 동시 공개하는 음악 다큐 <부틀렉>(Bootleg) ‘햇님의 나라’편이다.
음악 다큐 <부틀렉> ‘햇님의 나라’편 장면. 전주방송 제공
과거 검열의 시대에 몰래 만든 비공식 음반 또는 해적판을 뜻하는 ‘부틀렉’은 이제 권력과 자본의 틀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문화현상으로 통용된다. 제작진은 이런 의미의 제목을 내걸고 유신시대 금지곡 ‘햇님’을 부활시킴으로써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역설한다.
프로그램은 ‘햇님’에 얽힌 이야기를 재조명하는 한편, 한국을 대표하는 기타리스트 함춘호와 방탄소년단(BTS) ‘봄날’의 작곡가로 유명한 가수 아도라가 의기투합해 2022년 감성으로 ‘햇님’을 커버하는 모습을 담았다. 함춘호는 ‘메시지를 담아내는 그릇’으로서의 음악을 강조하며 “어떤 음식을 담을지 먼저 생각한 후에 그릇을 만드는 것과, 그릇을 먼저 만든 후에 음식을 고민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음악 다큐 <부틀렉> ‘햇님의 나라’편 장면. 전주방송 제공
기획·제작을 총괄한 송의성 전주방송 피디는 “어둠이 짙어질수록 소리는 선명해진다. 시대의 공기를 담은 소리의 씨앗, 이제 새로운 꽃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라고 프로그램의 의도를 설명했다. 송 피디는 이번 ‘햇님의 나라’편 이후 내년에도 <부틀렉> 시리즈를 이어갈 예정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