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촬영한 프로필 사진. 샛별당 엔터테인먼트 제공
등장하자마자 시선을 빼앗는 화면 속 남자.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송혜교)이 근무하는 초등학교 동료 교사로 나오는 추 선생이다. 무표정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듯 잘 어울리는’ 단발머리가 기묘한 기운을 풍긴다. 외국 스릴러 드라마에 나오는 학교 사감 선생 같다고 할까. 파트1(1~8회)에서 몇 장면 나오지 않는데도 존재감이 상당하다. “단발머리는 감독님이 먼저 제안하셨어요. 오래전 출연한 연극에서 이 머리를 한 적이 있는데, 감독님이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 보여주시면서 어떠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왜 단발머리여야 했을까? 추 선생한텐 어떤 ‘비밀’이 있느 것일까? 궁금한 것투성이인데, 지난 14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허동원은 이렇게 말했다. “<더 글로리>에 대해서는 지금 얘기할 수가 없어요. 파트2가 끝나면 그때….” 연신 미안해하는 모습이 순한 양 같다. 대체 추 선생 연기는 어떻게 한 건지. 혹시 대역인가요? ‘넝~담.’(추 선생 극중 대사)
‘더 글로리’ 속 추 선생 모습. 넷플릭스 제공
<더 글로리>에는 수많은 빌런(악당)이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추 선생은 신박하다. 미니어처를 만들어도 될 정도로 외형적인 특징이 뚜렷하다. 허동원의 이전 걸음들이 추 선생까지 오게 했다. 그는 영화 <범죄도시>에서 착한 형사로 유명해졌다. 이후에는 “악역 좀 그만하면 어떠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수없이 ‘나쁜 놈’이 됐다. 그러나 ‘그놈이 그놈’인 적은 없었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향미(손담비)를 괴롭히던 김낙호 같은 뻔한 악역도 내면의 감춰진 감정을 끄집어내 생동감 있게 풀어냈다. “연기할 때 쥐어짜내려고 하지는 않아요. 되도록 연기하는 그 순간에 느껴지는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려고 노력해요. 제 연기를 좋게 봐주셨다면 감정이 자연스럽게 잘 표현되어서 그런 것 같아요.”
허동원 ‘스타일’ 보는 재미가 있는 ‘대박부동산’. 한국방송 제공
이미 그 안에 수많은 인물들이 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는 2007년 연극 <유쾌한 거래>로 연기를 시작했고, <범죄도시> 이후에도 1년에 한두번은 연극 무대에 섰다. 무대에서 다양한 역할을 경험한 것이 연극이나 드라마에서 어떤 배역을 맡아도 낯설지 않게 받아들이게 된 것일 수 있다. “연극에서는 오래 시간을 두고 캐릭터를 연구할 수가 있어요. 연극에서 만들어지는 게 꽤 커요. 연극에서 만든 캐릭터를 드라마에서 변주해 볼 수도 있고요. 추 선생도 연극에서 보여준 것을 기본 토대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어요.” 그는 “연극이 내 연기의 원천”이라며 “연극은 어떤 사명감이 아닌 배우로서 나를 위해 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허동원은 지금도 연극을 하고 있다. 그가 속한 극단 웃어가 10주년을 맞아 창작극 <독>을 대학로 드림시어터에서 2월5일까지 선보인다. <독>은 부부 사이 사소한 거짓말이 가져오는 상황을 보여주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쉼 없이 몰아친다. 배우들이 연기를 잘한다. 2022년 ‘들꽃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정애화가 극 중 아내의 어머니인 장정애로 출연한다. 허동원은 주인공 부부 중에서 남편 윤정호를 맡았다. 그는 “일상적인 평범한 남편 역할은 처음 해본다”고 말했다. <독>에서 스며든 윤정호는 허동원 안에서 익어 또 어딘가에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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