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웨일>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세편이 개봉되면서 세계적인 흥행 성공을 거둔 영화 <미이라> 시리즈는 브렌던 프레이저라는 액션 스타를 탄생시켰다. 훤칠한 덩치와 ‘순둥순둥’한 얼굴, 강인하면서도 가끔 튀어나오는 ‘띨띨미’가 인간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릭 오코넬 역의 프레이저는 하지만, 관객들의 기대보다 빨리 스크린에서 사라졌다. 시리즈 촬영에서 얻은 잦은 부상으로 수술과 재활을 반복해야 했고 성추행 피해를 당하면서 대인기피증 등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2018년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다음달 1일 국내 개봉하는 <더 웨일>은 프레이저의 ‘화려한 귀환’이라고 일컬을 만하다. 액션 히어로의 영화로운 풍모는 사라졌지만 272㎏의 초고도비만 육체에 갇혀 고통받는 대학 강사 역할로 크리틱스 초이스를 비롯해 30개가 넘는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쓸어담고 있다. 이런 이유로 다음달 12일(현지시각)에 열리는 제95회 아카데미영화제에서도 재기의 정점을 찍을지 관심사다.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하는 <더 웨일>은 <블랙 스완>(2010), <노아>(2014), <마더!>(2017) 등을 만든 대런 애러노프스키가 연출했다. 대학에서 에세이 강의를 하는 찰리(브렌던 프레이저)의 온라인 동영상 수업은 늘 카메라가 꺼져 있다. 학생들에게는 노트북 컴퓨터에 문제가 있다고 핑계를 대지만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집 밖으로 나가거나 자신을 공개하기 어려운 육체의 감옥에 갇혀 있는 탓이다. 찰리는 8년 전 자신이 가르치던 남자 제자와 사랑에 빠져 가족을 버렸다. 하지만 보수적인 종교집단에서 자란 상대방은 동성애에 대한 손가락질을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그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과 어린 딸을 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신을 방치하다가 혼자서는 걷기조차 힘든 초고도비만 환자가 되어 목숨까지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
영화는 아빠를 찾아와 원망을 쏟아붓는 십대 딸(세이디 싱크)과 찰리를 돌보면서 찰리와 심리적 의존관계에 놓인 리즈(홍 차우), 포교한다는 핑계로 찰리에게 접근하는 청년(타이 심프킨스)과 찰리, 네 사람이 찰리의 집 거실을 무대로 펼치는 한편의 연극과도 같다. 무엇보다 영화는 몸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찰리가 그 자체로 형벌처럼 느껴지는 거대한 몸과 씨름하며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줄타기하는 걸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흔히 비만 캐릭터를 연기할 때 배우가 입는 ‘팻 슈트’가 인물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데 활용되는 걸 경계한 감독은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리고 정중하게 고통받는 몸을 보여주기 위해 슈트 제작부터 컴퓨터그래픽까지 공들여 연출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치심을 담은 눈빛과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전해지는 숨소리까지 섬세하게 표현한 프레이저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크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88회 남우주연상)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매슈 매코너헤이(86회 남우주연상)처럼 육체의 한계에 도전하는 캐릭터에 각별한 애정을 보여줬던 아카데미의 선택이 프레이저의 복권을 선언할지가 이번 아카데미영화제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강력한 경쟁자로 골든글로브와 영국 아카데미의 선택을 먼저 받은 <엘비스>의 오스틴 버틀러가 있다.
김은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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