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8일 오전 서울 성동구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열린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 기자회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에는 지진이 자주 발생해서 지진 재해를 소재로 그렸지만, 지진이 아니라도 전쟁이나 대형 사고 같은 재해는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그런 재해가 우리의 일상을 단절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해로 일상이 끊어진 사람이 어떻게 회복하고 다시 살아가게 되는가’라는 주제에 한국 관객들도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주인공 스즈메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 하라 나노카와 함께 한국 개봉일인 8일 한국 관객을 찾았다. 이날 오전 서울 성동구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카이 감독은 “코로나 한가운데서 작품을 만들며 ‘완성하면 한국에 갈 수 있을까?’ 불안했는데 무사히 오게 되어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왼쪽)과 주인공 스즈메 목소리 연기를 한 배우 하라 나노카. 연합뉴스
신카이 감독은 포스터 한가운데 등장하는 영화의 핵심 모티브인 문에 대해 “한국 드라마 <도깨비>(tvN·2016)에서 문을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 힌트를 얻었다”면서 “매일 아침 문을 열고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하고 나가고 돌아와 문을 닫으며 ‘다녀왔습니다’ 하는 동작을 반복하는 게 일상인데 재해는 ‘다녀오겠습니다’ 말하고 돌아오지 않는 것, 일상을 단절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문을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너의 이름은.>(2016)의 흥행 이후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전면에 가져온 이유에 대해 “<너의 이름은.>이 잘되고 사회적 책임까지는 아니라도 관객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다. 흥행 작품의 차기작이라면 (관객이) 신중히 고르지 않고 ‘한번 가서 보자’라고 오는 분들도 많을 텐데, 그래서 단순한 재미보다는 의미 있는 내용을 담아보자는 생각을 했다. 일본 전 국민의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는 재해의 기억을 이를 잘 모르는 젊은 관객들에게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8일 오전 서울 성동구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열린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 기자회견에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신카이 감독은 영화에서 사람들이 앞다퉈 에스엔에스(SNS)에 올리고 싶어할 정도로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재해를 일으키는, 문을 열고 다니는 고양이 다이진에 대해 “자연은 변덕스러워서 아름답게 보이다가도 바다의 쓰나미처럼 어느 순간 무시무시하게 인간을 공격한다”면서 “고양이의 사랑스러움과 변덕스러운 성격이 그런 자연을 닮아서 자연을 관장하는 신적 존재로 다이진이란 캐릭터를 형상화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다이진의 말썽을 막기 위해 애쓰는 소타가 다이진의 저주로 바뀌는 모습이 왜 하필 의자인가라는 질문에는 “동일본 대지진 비극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에 너무 무겁고 괴로운 이야기로만 그려지는 걸 피하기 위해, 보기만 해도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귀여움을 느낄 수 있는 존재로 의자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또 영화에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소타가 변한 의자가 다리가 셋인 이유도 알려줬다. “쓰나미가 왔을 때 떠내려갔다가 다시 찾게 된 의자가 재해 피해로 다리 하나가 사라졌다는 설정인데 재해로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비록 다리가 하나 없어 불안정하지만 소타 의자처럼 달릴 수 있고 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왼쪽)과 주인공 스즈메 목소리 연기를 한 배우 하라 나노카가 극 중 출연 캐릭터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즈메의 문단속>뿐 아니라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2019) 등 신카이 감독의 작품에는 유독 물이 많이 나오고 일렁이는 물결과 보석을 뿌려놓은 것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바다 등 아름다운 물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신카이 감독은 작품을 제작할 때마다 현장 애니메이터들로부터 “또 물이에요?”라고 안 좋아하는 반응을 듣는다며 손작업으로 물을 표현하는 게 힘든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관객들이 아름답게 느끼고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잘 그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개봉 일본 애니메이션의 흥행기록을 깼던 <너의 이름은.>을 비롯해 최근에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 <귀멸의 칼날>등 일본 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는 이유에 대해 “내가 묻고 싶은 것”이라고 반문하면서도 “서울의 다양한 모습을 보면 도쿄의 그리운 풍경이 떠오르기도 하고 이게 도쿄의 미래가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닮은 점이 많다. 도시의 모습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반영되기 때문에 ‘한국인과 일본인의 마음의 형태가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한국인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일본인은 한국 드라마를 그렇게 많이 보는 게 아닐까”라며 “양국 간 정치적 상황은 좋을 때와 나쁠 때가 파도처럼 반복되지만 문화에 있어서는 단단하게 이어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미디어캐슬 제공
신카이 마코토 감독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미디어캐슬 제공
최근 2D 수작업 그림의 대명사였던 일본 애니메이션에도 3D의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이 예술 영역까지 확장하는 것에 대해 신카이 감독은 “애니메이터의 숫자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데 인공지능 기술이 이 공백을 메꾸는 게 가능할 것”이라면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도입해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도 밝혔다.
이날 함께 참석한 스즈메 목소리 연기 배우 하라 나노카는 “스즈메는 잘 달리는 사람이다. 진짜 뛰는 액션뿐 아니라 앞뒤 가리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필요한 곳에 바로 달려가는 모습이 매력적이고 내게는 없는 면이라 연기하면서 부럽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옆자리의 신카이 감독이 “젊으면 그 정도 뛸 수 있는 거 아닙니까?”라고 묻자 하라가 “그렇게 달릴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유원지에서 달려 곤돌라 위로 순식간에 올라가 공중에서 문을 닫을 수 있는 여학생은 없습니다!”라고 답하는 등 화기애애한 대화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