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를 찾았던 배우 이종원.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케이(K)-드라마’의 인기를 이어갈 다음 주자는 누구일까요? <한겨레>가 그들을 만납니다.
이종원은 지난해 <금수저>(문화방송)로 단숨에 한국 드라마를 이끌 주역으로 떠올랐다. 2018년 데뷔 이후 첫 주연을 맡았고, 그해 연말 연기대상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차갑고 쓸쓸한 ‘황태용’과 한없이 밝은 ‘이승천’을 오가는 1인2역을 뚜렷하게 표현했다. 연기도 잘했지만 배우 자체가 주는 묘한 분위기가 시청자 시선을 끌었다. 정적인데 어딘가 여운이 느껴지는. 연기는 노력하면 늘어도 분위기는 타고나야 한다면, 그는 ‘금수저’다.
눈 밝은 시청자들은 전작에서 이미 그의 분위기를 느꼈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티브이엔, 2020)는 이종원의 매력이 제대로 빛난 작품이다. 그는 어떤 비밀을 간직한 카페 아르바이트생 ‘안효석’으로 나온다. 장발의 그가 원목 인테리어로 된 카페와 하얀 건물 앞 잔디밭에서 누군가를 지그시 바라보는 장면에선 화면이 한컷의 사진처럼 느껴진다. 배우가 배경에 제대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감성적인 분위기는 제가 추구하는 이미지예요. 저를 봤을 때 어떤 사람일까보다, (제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뭘까, 궁금해하는 게 좋아요.”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이어진 ‘케이-드라마’ 기대주 인터뷰 기간 중에 <한겨레>를 찾은 이종원이 말했다.
이종원의 매력이 보이는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티브이엔 제공
이종원은 작품마다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끄집어내려 노력한다. 지난 5년간 출연작 중에서 비슷한 성격이 거의 없다. <귀신데렐라>(라이프타임, 2019)에서는 눈을 떠보니 귀신이 되어 있었던 애처롭고 지켜주고 싶던 ‘진수’, <엑스엑스>(문화방송·플레이리스트, 2020)에서는 섬세하고 ‘잡학다식’한 면모의 ‘왕정든’이었다. <아만자>(카카오티브이, 2020)에서는 능글맞은 성격으로 가족의 반대에도 꿈을 지키는 ‘박동연’,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티브이엔, 2021)에서는 선배를 짝사랑해 성장통을 겪는 외과 전공의 2년차 ‘김건’으로 등장했다. 웃을 때, 무표정일 때 전혀 다른 감성을 표출하는 것도 능력이다. “제 안에 어떤 캐릭터가 있는지 저도 몹시 궁금해요. 어떤 역할을 맡든 새롭게 ‘갈아엎어 버리고’ 싶어요.” 실제 성격은 예의 바르고 밝은 ‘황태용표 이승천’에 가까웠다.
자신을 “경험주의자”라고 밝힌 그는 모든 걸 직접 부딪쳐보며 흡수하려고 한다. 틈만 나면 다양한 곳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 경험을 공유한다. 배낭 하나 메고 훌쩍 떠나는 건 다반사. 쉬고 싶을 땐 차를 몰고 훌쩍 떠나 정처 없이 떠돌기도 한다. 감성의 원천은 여행일까? “<금수저>가 끝나고도 다른 일정 사이 짧은 틈에 배낭 하나 메고 스웨덴, 핀란드 등에 다녀왔어요. 관광지가 아니라 미술관, 도서관처럼 그곳의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으려고 해요. 여러 나라에서 만난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하며 경험을 나누는 것도 좋아요. 이 수많은 경험이 결국 제게 흡수될 거라 생각해요.”
<금수저> 때는 중고 사이트를 검색해 이승천한테 적절한 신발과 티셔츠를 구매하는 등 스스로 상황에 맞는 분위기를 극대화할 줄도 안다. 인터뷰 때도 보통 촬영용 의상을 협찬받아 오는 것과 다르게 개인 소장 옷을 입고 왔다.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아요. 드라마 촬영 때는 늘 의상팀에서 준비해준 옷을 입으니까 인터뷰 때만이라도 제가 표현한 나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종원은 패션쇼에 등장하는 모델을 동경해 제대 뒤 그 길을 걸었다. 한 가수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해 처음 연기하면서 배우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때 처음 연기를 하면서 느꼈죠. ‘나한테 이런 모습이 있었네?’” 당시 그를 눈여겨본 스태프의 소개로 지금의 소속사와 연이 닿았다. 수많은 오디션에서 ‘쓴맛’도 봤지만 지금껏 출연작만 27편, 데뷔 이후 쉬지 않고 일했다. <금수저>로 유명해진 뒤 그의 오랜 팬 중에는 “배우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대중성에 젖어들어 개성이 사라질까 걱정”하는 이도 있다.
아직은 안심해도 될 것 같다. 하고 싶은 역할을 물으니 “잔잔한 매력이 나오는 영화”를 말하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 작품이라면 단역1로 나가도 좋다”고 답했다. “고레에다 감독님을 좋아해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되어 ‘어서 오세요’ 한마디만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꿈만 꿨는데 감독님이 한국 영화 <브로커>를 찍으신 걸 보고는, 또 기회는 있겠구나, 도전은 해볼 수 있겠구나, 희망이 생기더라고요. 하하하.” ‘분위기 금수저’ 이종원이 고레에다 감독의 깊은 감성과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은 장태유 감독의 새 드라마 <밤에 피는 꽃>(문화방송)에서 사대부 안에서 모두가 탐내는 멋진 종사관 ‘박수호’로 하반기에 찾아온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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