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사람’이 있다. 서울 중림동에는 콩나물밥을 3천원에 파는 어머니가 있고, 전남 신안군에는 등대 관리원이었던 아버지를 위해 밥을 짓는 딸이 있다. 목공소를 함께 운영하는 아빠와 아들, 국숫발만 50년간 뽑아온 어르신도 있다.
모두 <동네 한 바퀴> <한국인의 밥상>(이상 KBS1)의 출연자들이다. 두 프로그램은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사람 사는 이야기를 전하는 공통점이 있다. 투박하지만 진정성 있는 내용으로 각각 2018년과 2011년 첫 방송 때부터 시청자 마음에 가닿았다. 올해 들어 시청률은 5~7%(닐슨코리아 집계) 수준. 10%에 육박하던 과거에 못 미치지만, 평일 드라마 미니시리즈 시청률이 대부분 2~4%인 데 견주면 여전히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플랫폼 다변화로 살림이 기운 방송사들이 가성비 좋은 포맷에 집중하면서, 최근 여행과 요리 관련 프로그램이 늘었다. 지상파와 케이블채널, 종합편성채널에서 방영 중인 여행·요리 프로그램만 15개 남짓. 대부분 유명인이 국내외로 떠나거나 그곳에서 요리와 게임을 한다. 화려한 그림에 ‘셀럽’들의 수다까지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런 ‘세련된 친구’들의 등장에도 투박한 두 프로그램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한국인의 밥상>을 1회부터 진행해온 최불암은 지난 3월 한 방송에서 “어머니들이 재료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음식을 만들어 내고, 그걸 먹여주시는 그 뜻이 삶이고 인생이고 삶의 전부 같다”며 우리 이웃의 소소한 일상이 주는 소중함을 강조했다.
그 삶의 힘을 바탕으로 <동네 한 바퀴>는 올해 방송 5년을 맞았다. 우리가 매일 오가던 ‘동네’를 거닐며 그곳에서 만나는 이웃을 그대로 보여줘 ‘사람 냄새’가 특히 짙다. 2018년 11월 서울 망원동·성산동에서 첫걸음을 내디뎌 지금껏 200곳 넘는 곳을 걸었다. 처음에는 너무 평이해 방송사 내부에서도 ‘그 동네가 그 동네 아닐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맛보기’로 두 편을 내보냈는데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2014년, tvN) 이후 속박 없이 조용한 삶을 그리워하는 분위기와 맞물려 사랑받았다.
1회부터 179회(2022년 7월16일)까지 진행한 김영철은 지난 2019년 프로그램 100회를 맞아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시청자들이 어려운 시기에 큰 위로와 격려가 된다고 하더라. 힘들수록 따뜻한 사랑을 나누고 어깨를 보듬는 데 기여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네 한 바퀴> 진행자 이만기가 활짝 웃고 있다. 한국방송 제공
180회부터는 이만기가 동네를 찾고 있다. 그는 최근 서울 여의도에서 <한겨레>와 만나 약 8개월 간 직접 경험한 매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동네 구석구석 걷다 보면 몰랐던 곳이 많더라고요. 바쁘게 살다 보니 너무 큰 것만 보고 지내온 게 아닌가 뒤를 돌아보게 합니다. (시청자가) 이미 알던 곳은 그 나름의 그리움이 있고, 새롭게 알게 된 곳은 우리 동네를 한 번 더 돌아보게 해 주는 것 같아요. 간판이 없는 짬뽕집도 가보고, 사업에 실패했다가 다시 일어선 분도 만나고. 우연히 만난 이웃들이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보며 인생을 배우게 됩니다.”
투박한 프로그램의 사람 냄새는 이런 ‘약속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다. 두 프로그램은 모두 제작진이 지역 등을 안배해 동네를 정하고 사전 방문 약속을 하기도 한다. 장소와 대화를 구체적으로 정해놓은 대본은 없다. 이만기는 “동네를 걷다가 눈에 띄는 곳에 들어가고, 오가다 만나는 주민과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이런 포맷은 즉흥 상황에서 만난 사람들의 속내를 끄집어내는 게 관건이다. 김영철과 최불암은 부드러운 말투와 세련된 매너로 사람들을 대하는 점이 남달랐다.
<동네 한 바퀴>는 진행자가 바뀌었어도 그 색깔을 이어가고 있다. 이만기는 자신의 장점인 ‘투박한 다정함’보다는 김영철의 ‘도시적인 다정함’을 따르는 중이다. “저는 ‘어무이~’ 하면서 막 다가가야 하는데 ‘안녕하세요?’ 이러면서 점잖게 다가가려니 처음에는 어색하더라고요.(웃음) 그래도 지금은 제가 많이 편안해져서 제 색깔도 조금씩 녹여내고 있습니다.” 그는 “사투리 대신 표준어를 쓰려고 노력하고, 매회 새 옷도 입어야 해 인터넷 쇼핑도 엄청 한다”며 웃었다. 이런 노력 때문일까. 지난 3월 브라질과 미국 ‘동네’를 거닐며 교민들을 만났을 때 이만기의 진행력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동네 한 바퀴>는 진행자가 촬영 전날 ‘동네’에 간다. 다음날 아침 8시부터 저녁 6~7시까지 종일 걷는다. 매회 평균 2만보. “체력 하나는 자신 있다”는 이만기도 진행을 맡은 이후 3㎏이 빠졌을 정도다. 그래도 이 투박한 프로그램은 계속 사람 속으로 들어간다. 이런 프로그램이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고 곳곳을 비추며 결국 현재 우리 사회의 현실을 말해주기도 한다. 이만기는 “시골에서 청년들이 자신만의 꿈을 펼치며 사는 모습, 브라질에서 교민들을 만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딜 가든 잘 살아갈 힘이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밥상> 진행자인 최불암. 한국방송 제공
최근까지 <동네 한 바퀴> 내레이터로 참여한 나문희는 프로그램 간담회에서 “아무리 좋은 동네라도 그 안의 사람이 발굴되지 않으면 소용없다. <동네 한 바퀴>는 빵, 한지 등을 잘 만드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누구라도 열심히 살면 이룰 수 있다는 걸 공감하게 만든다. 나 역시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결국, 투박한 걸음으로 소소한 인생들을 만나는 이들 프로그램이 말하려는 것 또한 사람이 주는 힘이다. 이만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중요한 것은 배려”라며 “나를 낮추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