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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SM-엑소 백현·시우민·첸…또 불거진 ‘계약 분쟁’

등록 2023-06-06 06:00수정 2023-06-06 08:54

불공정 전속계약 등 연예계 고질병
엑소 멤버 첸·백현·시우민(왼쪽부터). 에스엠 제공
엑소 멤버 첸·백현·시우민(왼쪽부터). 에스엠 제공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와 그룹 엑소(EXO) 멤버 백현·시우민·첸 사이의 분쟁이 악화하면서, 또다시 한국 연예계의 고질병인 ‘불공정 전속계약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애초 양쪽은 ‘수익 정산 내역 사본 제공’ 등을 놓고 갈등을 벌여왔는데, 백현·시우민·첸이 ‘계약기간 자동 연장’ 등 불공정 조항으로 의심되는 내용이 담긴 전속계약서를 전격 공개하면서 한국 연예기획사 시스템의 묵은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음악·드라마 등 대중문화 콘텐츠 제작 시스템 체계화에 발맞춰 개선되지 못한 기획사 시스템의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백현·시우민·첸 쪽을 법률 대리하는 ‘법무법인 린’이 5일 공개한 백현의 계약서를 보면, 백현과 에스엠 사이의 전속계약 종료일은 체결일이 아닌 앨범을 내고 활동하는 ‘연예활동 데뷔일’ 기준이었다. 해외활동 준비로 전속계약 기간에 3년을 더 연장하는 조항도 있다. 후속 전속계약 기간 동안 약속한 앨범 발표 수량을 못 채우면 계약은 자동 연장된다. 법무법인 린의 이재학 변호사는 “데뷔일부터 계약기간을 기산하도록 정하면 연습생 기간은 제외되어, 소속사 자의에 따라 장기 계약이 될 수 있다. 앨범 발표 수량을 다 채울 때까지 계약 기간이 자동 연장된다는 조항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날 에스엠은 “엑소 멤버들은 재계약이 강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형 로펌 변호사 조력을 받아가며 당사와 협의 뒤 신규 전속계약을 체결했다. 앨범 판매량에 따른 계약기간 자동 연장 조건도 상호 간 협의해 반영한 사항으로, 서로 적극적인 연예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정한 조항”이라며 불공정 조약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실제 한 가요 기획사 업계 관계자는 <한겨레> “전속계약 분쟁이 대개 여러 감정이 쌓여 폭발한다는 점에서 회사와 아티스트 중 누가 잘못했느냐 따지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사옥
서울 성동구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사옥

그러나 이런 ‘장기 계약 예외 조항’이 연예계 끊이지 않는 계약 분쟁을 야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중문화예술인 표준전속계약서’에 따르면, 전속계약 기간이 7년을 넘는 때부터 언제든 연예인은 기획사에 계약 해지를 통보할 수 있고 이때부터 6개월이 지나면 계약은 자동 종료된다. 그러나 계약 종료 전 재계약을 시도하며 장기간 묶어두려는 기획사가 대부분이다. 기획사 연습생을 거쳐 데뷔한 경험이 있는 한 가수는 “보통 표준계약서에 제시된 기간 중 최대인 7년으로 계약한다. 그런데 해외 활동, 군 복무 등 예외 사항이 많았다. 이런저런 예외를 적용해 전체 기간을 계산해 보면 7년의 두배는 됐다. 팀이 해체된 뒤에도 계약기간 때문에 다른 회사에 가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기획사와 연예인 사이에 이익을 나누는 정산이 불투명한 것도 심각한 문제다. 지난해 박수홍에 이어 이승기가 2004년 데뷔 이후 18년간 앨범 27장, 137곡에 대한 음원 수익을 소속사인 후크엔터테인먼트로부터 정산받지 못한 사실이 공개됐다. 이승기 같은 ‘톱스타’마저 제대로 정산받지 못한 것은 매우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최근에도 배우 송지효, 코미디언 이경규 등도 소속사로부터 출연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기획사와 정산 문제로 분쟁을 겪은 가수 이승기. 후크엔터테인먼트 제공
기획사와 정산 문제로 분쟁을 겪은 가수 이승기. 후크엔터테인먼트 제공

음악·드라마 등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은 체계화됐지만, 기획사 시스템은 여전히 전근대적이어서 최근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는 지적이 많다. 한 방송사 피디는 “과거에는 회사가 아닌 대표 개인이 스타를 키운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내 개인 회사라는 인식이 강했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BTS) 성공 이후 중소 기획사와 아이돌 지망생이 급증한 것도 불공정 시스템이 잔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타 개인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전근대적 시스템에 대한 연예인들의 전면 대응이 늘어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과거와 달리 같은 그룹의 연예인들이 다른 소속사에 자리 잡는 일이 가능해진 것도 그래서다. 현재 활동 중인 한 배우는 “신인 때는 소속사의 부당함을 느껴도 얘기를 잘 못한다. 그건 연예계 환경이 아무리 좋아져도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내 인기가 많아지고 힘이 커지면, 부당하면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불공정 전속계약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지속돼왔지만 현실은 아직 여전하다. 2009년 이른바 ‘장자연 사태’로 표준계약서가 만들어졌지만 권고 사항일 뿐이다. 2015년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이 시행됐지만 ‘이승기 사태’를 막지는 못했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한 다리 건너 다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름만 빌려서 등록제를 비롯해 각종 규제를 빠져나갈 구멍은 많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스타가 돈이 되는 시대에 계약서 조항을 더욱 구체화할 필요가 있고, 연예인이나 기획사나 이를 악용해 문제를 일으킨 경우 제재하는 등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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