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라틴아메리카로 배낭여행을 3번 다녀왔다. 첫 여행은 1997년이었다. 지도를 들고 마추픽추나 쿠스코 같은 잉카 유적들을 찾아다녔던 기억은 강렬했고 그 뒤로 시간이 나면 마야, 아즈텍의 유적들을 찾아 또 떠났다. 고대 유적들이 흔히 ‘세계 7대 불가사의’ 같이 미스터리로 불리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현대의 고고학 상식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과학기술과 건축기술이 사용되었다는 것, 그리고 기록이나 자료들이 파괴되어 건축 시기와 방법, 목적 등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찬란했던 고대문명들은 어떻게 탄생했고 그런 유적을 만든 강력한 제국들은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나 같은 미스터리 덕후들에게 1995년에 큰 사건이 하나 발생한다. 그레이엄 행콕이라는 영국 르포 기자가 자신이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신의 지문’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단번에 베스트셀러가 되는 동시에 수많은 논쟁을 일으킨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고대사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5천년 전 문명이 발생하고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고대 국가가 생겨났다. ‘신의 지문’은 이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 건설된 거대 건축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원시인에 불과한 사람들은 어떻게 거대한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을까. 더 신기한 것은 문명의 교류가 없던 시대의 고대 유적들 사이에서 놀라운 유사성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이집트와 멕시코는 신대륙 발견 이전 어떤 문화적 교류도 없던 곳이지만 모두 거대 피라미드가 있고 심지어 똑같이 방위에 맞춰 지어졌다. 경사면의 각도나 피라미드 내의 내실 위치 등이 일치하는 예도 있다.
그레이엄 행콕은 고대 문명이 존재했던 나라들의 신화와 전설에도 주목한다. 여러 나라에는 이름은 다르지만 거인족 신화가 존재하고 그들이 대홍수나 대재앙 이후 혼돈의 시기에 천문학과 건축술 같은 선진 문명을 전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그레이엄 행콕은 최소 1만년 전 이전에 이미 고대 문명이 존재했고, 그 흔적들이 우리가 지금 불가사의라고 부르는 고대 유적들, 즉 신이 지상에 남긴 ‘신의 지문’이라고 주장한다. 여기까지 가면 대부분 “어? 이건 뭐지. 소설인가. 선 넘은 것 같은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주류 고고학자들이나 과학자들에게 그레이엄 행콕은 사기꾼이나 몽상가 취급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연구 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지금까지 주류 고고학계와 맞서고 있다. 그런 그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가 소환했고 흥미진진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제목은 ‘고대의 아포칼립스’.
다큐멘터리에서 그레이엄 행콕은 70살을 넘었지만 세계 여러 나라의 미스터리 유적을 찾아 초고대 문명설의 증거를 보여주며 현지의 다양한 연구자를 만난다. 그의 주장에서 과격한 부분들, 예를 들면 ‘남극대륙이 잃어버린 아틀란티스 대륙’이라거나, ‘인류의 기원은 외계인’과 같은 황당한 주장들은 빼고 현재까지 검증된 연구 성과와 그런데도 풀리지 않는 의문들만 제기한다. ‘신의 지문’ 이후 시간이 꽤 지난 만큼 새로 발견된 유적도 많고 구체적인 연구도 많아졌기에 설득력은 높아졌다. 유명인사가 참여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인 만큼 일반인들은 접근하기 힘든 피라미드의 내부, 유적들의 지하 밀실 등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다.
씨제이이엔엠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