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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코미디는 죽지 않아, 더 웃기게 변할 뿐…부코페 ‘개콘’ 기대 만발

등록 2023-09-04 07:00수정 2023-09-05 17:27

열한번째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가보니
다양한 유튜브 콘텐츠로 스타덤에 오른 이창호와 곽범이 출연한 ‘만담어셈블’. 다나카와 함께 팬덤을 거느린 대표적 코미디언이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조직위 제공
다양한 유튜브 콘텐츠로 스타덤에 오른 이창호와 곽범이 출연한 ‘만담어셈블’. 다나카와 함께 팬덤을 거느린 대표적 코미디언이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조직위 제공
부산 시민들이 드라마 ‘무빙’처럼 흥분하면 몸이 뜨는 능력이 있다면, 요즘 계속 날아다닐지도 모르겠다. 지난 1주일 동안 스마트폰에서 보던 코미디 스타들을 직접 영접하는 기쁨을 만끽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영화의전당에서 다나카가 팬들에 둘러싸여 노래했고, 26일에는 부산은행 본점에서 곽범과 이창호를 보려는 팬들이 줄지어 있었다. 눈앞을 지나던 차에서 엄지윤과 나선욱이 손을 흔들어 주는, 아이돌 퇴근길에서 보던 일도 종종 일어났다. 26일 부산에서 만난 20대 남자 관객은 “어제는 다나카, 오늘은 엄지윤의 공연을 봤고, 내일은 곽범과 이창호를 본다”며 “요즘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했다.

8월25일 개막해 9월3일 폐막한 ‘제11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부코페)’은 달라진 코미디 환경과 코미디언들의 인기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웃음을 사랑하고 코미디언을 응원하는 마음을 넘어 팬심으로 ‘덕질’하는 젊은 세대가 넘쳐났다. 다나카 얼굴이 그려진 부채를 들고 응원하는가 하면 객석에는 대포카메라도 등장했다. 곽범과 이창호를 보려고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 1박2일 일정으로 온 관객도 있었다. 부코페 관계자들조차 “코미디언을 향한 이런 열정적인 반응은 처음”이라고 했다.

코미디의 중심이 티브이(TV) 프로그램에서 유튜브 채널로 옮아간 뒤 이런 열광적인 현상은 뚜렷해졌다. 공개 코미디 시대를 이끌어온 ‘개그콘서트’(KBS2) 종영 이후 설 자리를 잃은 코미디언들은 무대, 예능 등 여러 곳으로 흩어져 방황하다가 유튜브에서 안착했다. 유튜브 초창기 시절에는 몰래카메라, 어린이 대상 콘텐츠가 주를 이루다가 서서히 각자 개성을 잘 살린 소재로 여러 장르가 골고루 사랑받고 있다.

오래 사귄 남녀의 일상을 다룬 ‘장기연애’처럼 사실적인 내용과 연기로 공감을 주는 숏박스(엄지윤, 김원훈, 조진세), 세계관을 만들어 그룹(매드몬스터)을 결성하는 등 늘 한발 앞선 콘텐츠를 선보이는 빵송국(곽범, 이창호), 글로벌 토크쇼가 되겠다면서 한국어를 섞어 영어로 대화하는 피식대학(김민수, 이용주, 정재형), 부캐를 적절하게 활용한 다나카(김경욱) 등이 특히 인기다.

요즘에는 페이크다큐를 선보이는 별놈들(나선욱, 황인심, 장영호), 아무말대잔치 등 빠른 전개가 특징인 스낵타운(이재율, 강현석)도 주목받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개그콘서트’가 폐지된 이후 디지털 산업 시대와 맞물려 개그의 중심도 유튜브로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다나카 무대에 열광하는 관객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조직위 제공
다나카 무대에 열광하는 관객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조직위 제공
유튜브 중심의 흐름은 이번 부코페에서도 감지됐다. 애초 부코페는 티브이에서 활동하던 코미디언들이 오프라인 무대에서 관객과 만나는 자리였다. 초창기에는 티브이 프로에서 활약하던 코미디언들 위주였는데 2019년 처음으로 초통령 유튜버 보물섬(강민석, 김동현, 이현석)을 무대에 올렸다. 이 공연은 가장 빨리 매진되는 등 인기를 끌었다. 공연 뒤 관객들이 이들의 얼굴을 보려고 자리를 뜨지 않아 예정에 없던 팬 사인회까지 열 정도였다. 부코페 관계자는 “과연 유튜브 코미디를 오프라인 무대에 선보이는 게 맞느냐는 고민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당연한 것’이 됐다. 올해는 국내 공연 대다수가 유튜브 코미디였다. 무대 공연인 ‘변기수의 목욕쇼’에도 유튜버 서준맘이 나왔다. 부코페는 올해 처음으로 ‘코미디 유튜브 대상’도 마련해 숏박스가 첫 수상자가 됐다. 코미디언 이수근은 “티브이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지다 보니 선후배 대부분이 유튜브에서 활약하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하지만, 코미디라는 장르는 사라질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유튜브에서 사랑받은 이들은 대부분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다. 유튜브에서는 능력만 있으면 스타가 될 수 있다. 티브이 프로그램은 코미디언이 아이디어를 내도 제작진한테 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사에 통화되어 녹화를 해도 통편집이 되기도 한다. 코미디언 입장에서는 ‘나’보다 ‘제작진’이 좋아할 만한 코미디를 짤 수밖에 없다. 유튜브에서는 다르다. 개성을 마음껏 뽐낼 수 있다. 당장 반응이 없어도 꾸준히 발전시키며 오랫동안 캐릭터를 유지할 수 있다. 김경욱도 다나카를 만든 지 4년 만에 인정받았다. 매주 새로운 꼭지를 선보여야 하는 티브이와 달리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는 캐릭터 플레이도 가능하다. 김해준은 최준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고 현재는 태양인으로 이미테이션 가수를 흉내 내고 있다. 태양인(김해준), 찌드래곤(최지용), 브루노 바스(곽범), 자이언턱(조진세), 가터벨트(임우일), 지올밭(양기웅), 마이클 잭스(김성구)가 하나의 레이블로 활동하는 콘셉트도 익히 봐오던 이미테이션 가수를 또 다르게 비틀었다. 정덕현 평론가는 “코미디 환경이 변했다. 처음에 한국 코미디는 티브이 쪽에 쏠려 있었지만, 이제는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면서 코미디도 다양해지고 코미디언의 매력도 더 잘 보이게 됐다”고 했다.

‘숏박스’(가운데) 공연에는 유튜브에서 인기를 끄는 개그팀 ‘웃겨듀오’(왼쪽 둘)와 ‘별놈들’(오른쪽 셋)도 함께 출연했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조직위 제공
‘숏박스’(가운데) 공연에는 유튜브에서 인기를 끄는 개그팀 ‘웃겨듀오’(왼쪽 둘)와 ‘별놈들’(오른쪽 셋)도 함께 출연했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조직위 제공
유튜브는 기성 코미디언들의 변화도 끌어냈다. 김대희는 유튜브에서 ‘개그콘서트―대화가 필요해’에서 선보였던 캐릭터를 더 강하게 살려 ‘꼰대희’로 인기를 얻고 있다. 윤성호는 뉴진스님이라는 설정으로 종교 개그를 선보인다. 티브이에서는 할 수 없는 개그다. 최대웅 부집행위원장은 “유튜브는 젊은 세대만의 특권은 아니다. 선배들도 그 세대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공감형 코미디를 선보일 수 있다”고 했다.

유튜브에서 코미디를 하는 이들이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끌면서, 공연 분위기도 달라졌다. 지난 26일 숏박스 공연을 보러온 관객 대부분은 20~30대였다. 모바일로 직접 채널을 구독해서 보는 세대여서인지 참여에도 적극적이었다. 한 코미디언은 “보통 코미디 공연은 관객과 호흡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 한국 관객은 대부분 부끄러워하며 무대에 잘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공연 전에 미리 좀 활발할 것 같은 사람을 눈여겨 봐둔다”고 했다. 이날은 달랐다. 엄지윤이 무대에 불러낼 사람을 찾자 관객들은 서로 나오겠다며 손을 들었다. 관객의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공연장은 에너지가 넘치고 질이 높아졌다.

유튜브가 중심이 됐지만 코미디의 본질은 여전히 관객과 소통하는 무대에 있다. 숏박스 김원훈도 “개그맨들은 무대가 그리운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런 염원을 담아 11월 ‘개그콘서트’도 돌아온다. 부코페는 폐막식에서 이례적으로 ‘개그콘서트’에서 선보일 무대를 미리 공개했다. 최대웅 부집행위원장은 “유튜브에서 활약한 이들은 공연 코미디에 익숙하지 않지만 아이돌급 인기를 얻고 있다. 공연 코미디에 익숙한 이들은 인기가 약하다. 이 두 가지를 적절히 잘 조율하다 보면 코미디언들도 부코페도 성장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티브이 코미디와 유튜브 코미디가 시너지를 내려면 갈수록 영상이 짧아지는 디지털 문화는 해결해야 할 숙제다. 코미디언들은 3분짜리 유튜브 콘텐츠고 3~4일을 고민해서 만든다. 코미디 작가이자 부코페 심사위원은 이찬 작가는 관련 포럼에서 “코미디도 짧은 영상을 활용해야 하지만, 그럴 경우 비슷한 소재가 반복되면서 생명력이 줄어들 우려는 있다”고 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잘 조화가 돼 새로운 장르가 나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산/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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