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2개월’에서 박열에 기대어 함께 책을 읽는 가네코 후미코의 모습. 이 작품은 영화 ‘박열’ 개봉 전에 기획했다. 아떼오드 제공
“독립의지를 불태웠던 독립운동가분들에게 모든 스태프와 배우가 찬사를 보냅니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 링크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22년 2개월’(11월5일까지)은 스피커에서 흐르는 이 한마디로 시작해 배우들의 묵념으로 끝난다. ‘22년 2개월’은 일본 황태자의 암살을 계획하다 붙잡힌 박열의 수감 기간이다. 그가 출소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작품은 박열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를 그린다. 극본과 넘버(곡)를 쓴 다미로 작가는 “역사를 소홀히 하고 미래만 바라보는 시대에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찬사를 보내고 묵념을 했다”고 말했다.
공연계 곳곳에서 독립운동가를 조명하고 있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날 과거로 온 중년의 아들 준생을 만나는 타임슬립 연극 ‘준생’(9월27일~10월15일)처럼 형식도 다양해졌다. ‘제시의 일기’(10월29일까지)는 독립운동가 양우조-최선화 부부가 주인공이다. 공습과 피난의 연속인 일상에서 부부가 딸 제시한테 반드시 새로운 세상을 선물하겠다는 마음을 담아 8년간 쓴 육아 일기가 바탕이다.
독립운동가 양우조-최선화 부부의 일기가 원작인 ‘제시의 일기’. 네버엔딩플레이 제공
연극 ‘밀정리스트’(9월20일~10월1일)는 1929년 경성에서 일본 총독 암살 거사를 준비하는 의열단에 초점을 맞추고, 연극 ‘카페 쥬에네스’(9월25일~11월26일)는 1920년대 말 독립을 염원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곤 투모로우’(10월22일까지)는 김옥균 암살 사건을 모티브로 가상의 독립운동가 한정훈을 등장시켰다. 독립운동가 진연, 한국 최초의 오페라 가수를 꿈꾸는 이선 등 비극적인 시대에 꿈을 향해 달려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일 테노레’도 12월 시작한다.
안중근 뮤지컬 ‘영웅’(2009년 시작) 등 그동안 독립운동가를 조명한 작품은 있었지만, 올해는 작품 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었던 2019년 전후로 독립운동 관련 기획이 많았는데, 준비하던 작품들이 올해 속속 막을 올리면서 붐을 이루는 것 같다”고 했다. ‘22년 2개월’은 2016년, ‘제시의 일기’는 2019년 기획됐다. 다미로 작가는 “우연히 박열을 알게 된 뒤 그의 활동을 알리고 싶었지만 제작하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었다”고 했다. ‘제시의 일기’ 오세혁 총괄프로듀서도 “제작하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어서 직접 제작사를 차려 무대에 올렸다”고 말했다.
김옥균 암살 사건을 모티브로 가상의 독립운동가 한정훈 이야기를 더한 ‘곤 투모로우’. 페이지원 제공
관객들에게 더 쉽고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변화를 이끌었다. 올해 선보인 작품들은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을 조명하지만, 영웅적인 면모보다는 그들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미로 작가는 “젊은 관객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역시 21살, 22살 치기 어린 청춘들이었다는 점을 부각했다”고 말했다. 오세혁 프로듀서는 “관객들의 역사극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등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했다. 12일 ‘제시의 일기’ 공연장은 꽉 찼고, 20~30대 관객이 많았다.
최근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세혁 프로듀서는 “최근 이슈로 홍범도 장군을 몰랐던 세대들이 찾아보고 알아가는 기회가 되는 것 같다”며 “독립운동가들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아이들이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그들의 염원이 공연을 통해 더 많이 알려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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