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7일 영화인 1052인은 가칭 ‘블랙리스트 대응 영화인 행동’을 꾸리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부역자들의 사퇴를 촉구하는 활동에 돌입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에서 벌어진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진상조사 및 피해 회복을 위해 꾸려졌던 특별위원회 민간위원 전원이 사퇴했다.
26일 ‘영화진흥위원회 블랙리스트 피해회복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위원회’(블랙리스트 특위) 위원 11명 중 민간위원 9명은 영진위가 피해 인정과 피해 회복을 위한 논의를 계속 거부해 26일 사퇴한다고 밝혔다.
영진위는 2018년 4월 영화계 블랙리스트 실행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과거사 진상규명 및 쇄신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3년 동안 운영했지만 피해 신청자 면담을 배제, 의도적 사건 축소 등의 문제를 드러내면서 성과 없이 활동을 접었다. 이후 2021년 말 블랙리스트 특위를 새롭게 구성했지만 영진위 사무국의 무성의한 태도로 진상조사 연구 결과를 제때 공개하지 않는 등 잡음을 일으켜왔다.
민간위원들은 영진위가 블랙리스트 특위 구성 이후에도 피해 사실을 인정하라는 요구를 1년 넘게 묵살했다고 지적했다.
영진위는 지난 6월 특위의 진상 조사 결과에 바탕을 둔 블랙리스트 피해 인정에 대해 9인 위원회의 안건 상정을 부결시켰다. 연구조사는 했지만 이를 영진위의 공식 입장으로 채택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사퇴한 민간위원들은 지난 8월 열린 블랙리스트 특위 8차 회의에서 박기용 영진위 위원장이 앞으로도 피해 인정 관련 논의를 진행할 뜻이 없음을 직접 밝혔다고 주장했다. 블랙리스트 특위는 영진위 지원 사업 배제 및 검열을 받은 94건을 포함해 총 2891건의 영화계 블랙리스트 피해를 확인해 영진위가 피해 인정 방안을 논의하고 의결하기를 촉구해 왔다.
사퇴한 블랙리스트 특위 민간위원들은 “영진위는 피해 인정 논의를 1년여 동안 회피했으며 실효적 조치에 발목을 잡아 왔다”며 “국가의 공식 사과와 피해 회복 조치에서 소외된 피해자가 존재함에도, 피해 인정 논의조차 거부한 영진위 산하 위원으로서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밝혔다. 위원들은 또 “과거 이명박 정부의 ‘문화 권력 균형화 전략’으로 대표되는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우려한다”며 “블랙리스트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과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싸움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사퇴한 민간위원 중 한 명인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영진위의 피해 인정 안건 불상정은 피해자 불인정을 회피하기 위한 우회로”라면서 “가해를 불인정한 블랙리스트 국가 범죄의 은폐이자 회복적 정의의 책무를 저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간위원 9명이 사퇴하면서 영진위 블랙리스트 특위는 당연직인 박기용 영진위원장과 최낙용 위원만 남게 돼 사실상 해체의 수순을 밟게 됐다.
김은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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