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영화대전보다 더 치열한 추석영화 흥행 경쟁이 시작됐다. 송강호의 ‘거미집’, 하정우의 ‘1947 보스톤’, 강동원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 27일 나란히 개봉했다.
추석 극장가는 여름 성수기보다 작은 시장이지만 올해는 10월2일이 임시 공휴일이 되면서 예년보다 큰 판이 벌어지게 됐다. 특히 올 추석 개봉 영화들은 몸값 높은 톱배우들이 전면에 나선다. 송강호, 하정우, 강동원 중 누가 ‘멱살 잡고 하드캐리’ 할지 주목된다.
편당 출연료가 10억원이 넘는 만큼 세 배우의 흥행력 역시 극강이다. 송강호는 1000만 흥행 영화만 ‘괴물’(2006) ‘변호인’(2013) ‘택시운전사’(2017) ‘기생충(2019)’ 4편을 보유한 한국 최고의 흥행배우다. 2013년 개봉한 ‘설국열차’와 ‘관상’도 900만 관객을 달성했다. 하정우는 ‘암살’(2015) ‘신과 함께-죄와 벌’(2017) ‘신과 함께-인과 연’(2018) 등 출연작 3편이 1000만 흥행을 했고 ‘백두산’(2019)이 800만명대, ‘베를린’(2013) ‘터널’(2016) ‘1987’(2017) 등이 700만 관객을 동원했다. 하정우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강동원은 두 배우보다는 관객 동원력이 약하지만 970만명을 동원한 ‘검사외전’(2016)을 비롯해 ‘전우치’(2009) ‘검은 사제들’(2015) 등 대작 영화의 흥행 기준이 되는 500만명 이상을 달성한 작품이 여럿이다.
하지만 이력만으로 지금의 흥행력을 전망하는 건 쉽지 않다. 세 배우의 흥행작들은 한국 영화산업의 황금기였던 2010년대 몰려 있고 코로나 이후에는 작아진 시장 안에서 초라한 성적을 거둔 탓이다. 송강호의 ‘비상선언’(2022)이나 하정우의 ‘비공식작전’(2023), 송강호와 강동원이 공동 주연한 ‘브로커’(2022) 모두 손익분기점을 못 넘겼다.
이번 개봉작이 이 배우들에게 다시 날개를 달아줄까? 먼저 ‘거미집’은 송강호와 가장 많은 작품을 만든 김지운 감독의 신작인 만큼 송강호의 재능을 입체적으로 활용한 영화다. 송강호는 ‘조용한 가족’(1997)부터 시작된 김지운 감독의 엇박자 블랙코미디를 이 영화에서도 능수능란하게 펼쳐낸다. ‘택시운전사’ ‘기생충’에서 송강호가 보여준 때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짙은 페이소스를 끌어내는 연기도 ‘거미집’에 촘촘히 박혀 있다. 다만 영화 속 영화라는 낯선 형식과 1970년대 영화의 분위기가 얼마나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지가 물음표다.
영화 ‘1947 보스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하정우가 주연한 ‘1947 보스톤’(강제규 감독)의 가장 큰 힘은 실화가 가진 매력이다. 독립한 줄 알았는데 미군정의 지배를 받던 한반도의 가난한 스무살 대학생 ‘서윤복’이 비둘기호 열차 갈아타듯 돌아 돌아 돌아 미국에 도착해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극적인 우승을 하는 이야기다. 하정우는 서윤복을 조련하는 손기정 선수로 등장한다. 영화를 보면 뜻밖에 손기정 선수와 하정우의 외모 싱크로율이 높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다. 서윤복을 연기하는 임시완과 남승룡을 연기하는 배성우의 삼각편대가 드라마를 안정적으로 받쳐준다. 다만 ‘비공식작전’의 실패 이후 너무 일찍 도착한 하정우의 신작이라 관객들이 식상하게 느끼지 않을지가 관건이다.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씨제이이엔엠 제공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김성식 감독)은 귀신을 믿지 않는 가짜 무속인이 귀신을 보는 손님을 만나면서 목숨 걸고 퇴마에 나서는 이야기. 강동원 출연작 중 좋은 성적을 낸 ‘검은 사제들’이나 ‘전우치’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로 캐릭터는 ‘검사외전’의 깨발랄한 사기꾼을 닮았다. 한마디로 강동원이 잘 소화하는 것들이 합쳐진 작품인데다 액션도 강렬해 추석 대작 중 볼거리로서의 강점이 가장 뚜렷한 영화다. 다만 만듦새의 촘촘함이나 후반 컴퓨터그래픽의 완성도는 아쉬운 부분이 보여 입맛 까다로운 관객들을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을지 미지수다.
김은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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