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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전 부여 백제왕릉 어떻게 쌓았을까…실체가 드러났다

등록 2023-10-23 13:44수정 2023-11-08 10:04

부여읍 능산리에 있는 부여 왕릉원 서쪽 영역의 3호분 조사현장. 정교하게 만든 돌방과 그 앞으로 틔운 배수로가 보인다.
부여읍 능산리에 있는 부여 왕릉원 서쪽 영역의 3호분 조사현장. 정교하게 만든 돌방과 그 앞으로 틔운 배수로가 보인다.

1500년 전 백제 왕들이 죽은 뒤 주검과 부장품들을 묻은 무덤은 어떻게 쌓았을까.

백제왕조가 사비성(충남 부여)에 도읍을 둔 6~7세기 사비시대(538∼660)의 왕릉·왕족 무덤떼인 부여읍 능산리 ‘부여 왕릉원'(옛 능산리고분군·국가사적)의 3호분과 4호분에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2021년부터 최근까지 집중적인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두 고분의 얼개와 쌓기 방식 등이 확인됐다. 연구소 쪽은 조사성과를 23일 발표했다.

3·4호분은 왕릉원 무덤들 가운데 서쪽 능선에 있다. 과거 도굴된 무덤들로 일제강점 초기인 1910년대 조선총독부 소속 학자들이 먼저 공식조사를 벌였는데, 당시에는 옛적 도굴꾼들이 파놓은 무덤구멍을 타고 돌방 안에 들어가 바닥에 남은 유물들을 거두고 사진과 실측도면을 작성한 정도의 수준이었다. 무덤 전면을 파서 얼개를 확인한 것은 이번 조사에서 처음 이뤄졌다.

4호분 돌방과 봉분의 층위를 보여주는 현장 사진.
4호분 돌방과 봉분의 층위를 보여주는 현장 사진.

3호분 무덤 봉분의 경계를 표시하는 가장자리의 호석과 그 둘레를 돌아가는 깬돌들의 열.
3호분 무덤 봉분의 경계를 표시하는 가장자리의 호석과 그 둘레를 돌아가는 깬돌들의 열.

부여 왕릉원 전경. 과거에는 능산리고분군이란 명칭으로 불렀다.
부여 왕릉원 전경. 과거에는 능산리고분군이란 명칭으로 불렀다.

일제강점기 부여 왕릉원 4호분의 호석 부분을 조사하는 광경.
일제강점기 부여 왕릉원 4호분의 호석 부분을 조사하는 광경.

조사 결과를 보면, 두 무덤은 돌로 된 방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출입구를 기준점으로 직경 20m 안팎의 봉분을 구획했고, 경계 지점에 높이 40㎝, 너비 25㎝ 정도의 다듬은 돌로 호석들을 세웠다. 호석을 따라 바깥 부분에는 약 1.4m 간격을 두고 돌들을 깨어 열을 지어 놓게 한 흔적들도 나왔다. 돌방에는 ‘凸(철)’ 자 모양의 구덩이를 팠는데, 능선 정상부 쪽이 돌방 뒷벽, 경사면 아래쪽에 출입구를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소 쪽은 “시신을 안치한 뒤 출입구를 판석(널판 돌)으로 막았고, 무덤 입구에서 시신을 두는 방까지 이르는 길은 흙으로 채워 바깥의 호석과 연결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4호분 도굴갱에서 나온 목관 장식 금구(너비 7.2cm).
4호분 도굴갱에서 나온 목관 장식 금구(너비 7.2cm).

4호분 널길에 묻혀있다가 출토된 대형항아리(높이 48.8cm).
4호분 널길에 묻혀있다가 출토된 대형항아리(높이 48.8cm).

3호분 널길을 채운 흙속에서 나온 연꽃무늬 수막새 기와조각. 왕릉원 인근 능산리 옛 절터에서 나오는 수막새와 같은 종류다.
3호분 널길을 채운 흙속에서 나온 연꽃무늬 수막새 기와조각. 왕릉원 인근 능산리 옛 절터에서 나오는 수막새와 같은 종류다.

봉문을 쌓는 방식은 차이가 나타났다. 3호분은 돌방 중심을 기준으로 봉분의 동쪽 부분과 서쪽 부분을 번갈아 가며 쌓았지만, 4호분은 수평으로 봉분을 쌓은 것으로 드러났다. 3호분의 경우 돌방 출입구에 대형 석재를 덧대고 바닥에 널찍한 석재 2매를 겹쳐 만든 단과 최대 깊이 1m에 이르는 널길 배수로 등이 따로 확인됐다.

유물들로는 관을 꾸민 장신구와 기와 등이 나왔다. 4호분에서는 구리재질에 금을 입힌 불꽃 모양새의 목관 장식금구가 출토됐는데, 전북 익산 쌍릉에서 출토된 유물과 거의 같은 모양새여서 주목된다. 3호분에서는 부여 능산리 백제절터에서 썼던 기와류로 무덤 축조 과정에서 흘러들어갔다고 추정되는 연꽃 문양 수막새 조각들이 나왔다.

연구소 쪽은 조사에서 확인한 내용들을 능산리 왕릉 영역의 1500여년전 원래 경관을 복원하기 위한 중요 자료로 활용할 방침이다. 조사 현장은 25일 오후 2시에 공개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도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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