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는 어딜 가든 분위기를 주도한다. 그와 영화 ‘백두산’(2019)에 출연했던 하정우는 “술도 밥도 잘 사서 별명이 배회장님”이라고 불렀다. 서로 친해지고 싶어한 가수 조현아와 나나를 연결해준 것도 수지다. 지난 20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이두나’도 수지 ‘덕분에’ 첫사랑의 설렘이 가득 묻어났다. 상대역으로 출연한 양세종이 수지와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떨림을 느꼈기 때문이다. 의도하든 하지 않든 공기의 흐름을 바꾸고 주변에 사람이 몰리는 수지는 ‘이두나’ 속 두나가 바라던 모습이 아니었을까. “두나는 상처가 많아 날카롭고 경계심을 드러내지만, 알고 보면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이 고픈 인물이에요. 사람을 대하는 법을 몰랐을 뿐. 그런 두나를 안아주고 싶었어요.” 26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수지가 두나를 떠올렸다.
‘이두나’에서 두나는 아이돌 그룹 드림스윗으로 활동하다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무대를 망친 뒤 활동을 중단한다. 세상과 고립되어 셰어하우스에서 살다가 새로 입주한 이원준(양세종)을 만나 위로받으며 다시 세상에 나갈 용기를 얻는다. 수지는 “사람들이 두나에 대해 오해했다가 두나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내용이 흘러갔으면 해서 감독님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고 했다. 두나의 외로움을 드러내는 데 중요한 장치라는 생각에 흡연 연기도 마다치 않았다. “(시청자들이) 두나를 봤을 때 숨이 턱 막혔으면 하는 마음으로 표현했어요.”
2012년 ‘건축학개론’부터 연기 경력만 11년. 수많은 인물이 되어온 그가 유독 두나에 마음을 쓰는 이유는 뭘까. 수지는 결은 다르지만 두나를 연기하면서 아이돌 시절이 떠올랐다고 한다. 수지도 두나처럼 걸그룹 미쓰에이(2010년)로 데뷔하자마자 스타가 됐다. ‘터치’ ‘남자 없이 잘 살아’ 등 내놓는 곡마다 화제가 됐지만, 2014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공백기가 시작됐다. 한창 미쓰에이로 활동할 때는 다른 멤버들에 견줘 유독 인기가 많아 여러 소문에도 시달렸다. “드라마에서 원준이 악플을 읽고는 ‘사람들이 너무 말을 막 한다’고 하잖아요. 두나는 그걸 아무렇지 않게 원래 있던 것처럼 반응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마음이 좀 안 좋았어요. 실제 겪었다기보다는 다들 알고 있는 상황 같아서.” 두나가 다른 사람이 자신을 몰래 찍는 줄 알고 오해하는 장면은 현실에서도 갖게 되는 불안이라고 한다. “그래도 7년을 함께했고, 청춘이 거기에 다 있는 거 같아요. 연예의 생활 시작과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죠.”
“내지르는 두나와 달리 20대 초반 감정을 꾹꾹 누르며 활동했다”는 수지는 두나처럼 방황하지 않고 다행히 제 갈 길을 잘 걸어왔다. ‘건축학 개론’에서 국민 첫사랑으로 불린 이후 그는 ‘구가의서’(‘2013) 같은 사극은 물론, 청춘의 열정을 보여준 ‘스타트업’(2020) 등 다양한 장르와 역할을 맡으며 배우로서 입지를 넓혀왔다. 그 노력이 대중에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 영화 ‘백두산’(2019)에서 재난에 맞서는 임산부 역할이다. 이후 ‘안나’(2022)에서는 10대부터 40대까지를 오갔고, ‘이두나’에 이르렀다. 이두나에서 수지는 무심한 표정 속에 내면의 불안함을 잘 드러내는 등 내공이 빛났다. 수지는 “이전에는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이 들 때도 있었는데, 이젠 주변 분위기보다 나 자신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수지는 두나가 된 이유를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지금 예쁘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1994년생, 내년이면 서른이다. 그는 “나는 나이는 상관 안 한다고 생각했는데, 20대 초반 역할(두나)을 하다 보니 신경이 쓰이더라. 서른이 되면 어쩔 수 없이 20대 초반 연기는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이 시기에 ‘이두나’를 하게 된 건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노력이 무르익어 한창 빛나는 시기에 맞은 ‘서른의 수지’는 배우로서 진짜 시작이 아닐까. 그는 “순간의 선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안 해본 역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했다. 당장은 영화 ‘원더랜드’와 김우빈과 호흡을 맞추는 김은숙 작가의 작품 ‘다 이루어질지니’가 기다린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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