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개그콘서트’(KBS2) ‘형이야’ 꼭지(코너)가 끝난 뒤 출연자 장현욱은 무대에서 큰절을 올렸다. 객석에 앉아 있는 부모를 향해서다. “부모님이 첫 녹화를 보러 오셨다”는 아들의 말에 어머니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내가 다 눈물이 났다”고 했다.
무려 3년4개월여 만에 ‘개그콘서트’가 돌아왔다. 설 자리가 없어 공연장으로, 유튜브로 흩어졌던 코미디언들이 오랜만에 다시 한국방송 공개홀에 섰다. 티브이 공개 무대가 사라져서 잘 풀린 이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무대를 그리워했다. 정현욱은 ‘개그콘서트’ 녹화 전 개인 소셜미디어(SNS)에 “매 주말 수없이 많은 시간 소극장 무대에 써왔다. ‘개콘’ 여정에 감사하게 참여하게 됐다”고 썼다.
돌아온 ‘개그콘서트’는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전략을 택했다. 예전처럼 공개 코미디 형식을 그대로 취하면서 쇼트폼(짧은 영상), 브로맨스 등 3년 전과 달리 요즘 인기인 장르를 살포시 얹었다. 캐릭터 열전인 ‘봉숭아학당’에서 유튜브 방송을 하는 90살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식이다. ‘조선스케치―내시 똥군기’는 스튜디오를 벗어나 야외에서 영상을 따로 촬영해 티브이로 내보냈다. 틱톡의 짧은 영상처럼 짧은 개그도 눈길을 끌었다. ‘숏폼 플레이’에서는 꼭지 중간중간 영화 뒤를 소개하는 코미디를 선보였는데 같은 내용을 비틀어 짧게 치고 빠지는 식이다.
특정인의 인지도에 기대지 않고 꼭지별로 선후배가 조화를 이뤘다. 김원효, 정범균 등 선배 코미디언들이 후배들을 뒤에서 받쳐주며 눈에 띄는 신인들도 대거 등장했다. ‘데프콘 어때요’에서 조수연과 신윤승은 탄탄한 연기력이 돋보였고, 진상 손님을 동물에 비유한 ‘진상 조련사’에서 김시우는 재주가 많았다. 구독자 14만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폭씨네’ 김지영과 박형민, 유튜브 채널 ‘레이디액션’ 임선양과 임슬도 등장했다. 김상미 피디는 첫 방송 전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익숙한 공개 코미디는 예전과 그대로인데 재미있는 유튜브 콘텐츠도 많이 접목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여전히 웃음이 빵빵 터지기에는 아쉬움도 있다. 남자 코미디언들이 옷을 벗어 상체를 보여주고, 여자 코미디언들이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애교를 부리는 등 ‘개그콘서트’가 계속 버리지 못하는 아슬아슬한 장면도 꽤 있다. 유행어가 자연스러운 나와야 하는데, 같은 말을 반복하며 애써 만들려는 시도도 억지스럽다. 티브이 공개 코미디로서 지켜야 할 게 많아 더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도 보인다.
그러나 특정 연령대가 타깃이었던 ‘코미디빅리그’(tvN)와 달리 ‘개그콘서트’는 온 가족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반기는 이들이 많다. “온 가족이 모처럼 일요일에 모여 앉아 티브이를 봤다”는 시청평이 올라온다. 시청률도 10시40분 늦은 밤 기준에서는 선방한 4.7%(닐슨코리아 집계)로 2020년 6월20일 마지막 방송인 1050회(3.1%) 보다 높다. 같은 일요 예능프로그램인 ‘런닝맨’(4.2%·SBS), ‘복면가왕’(5%·MBC)보다 높거나 비슷하다.
500명이 볼 수 있는 첫 녹화에 2614여명이 신청하는 등 ‘개그콘서트’에 대한 관심도 여전히 뜨겁다. 정범균은 제작발표회에서 “공개 코미디라는 강점을 살려 사람들이 녹화 현장에 오고 싶다고 느낄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김원효는 “개그 시장에도 순한 맛, 매운맛 등 다양한 맛이 있어야 골라서 즐길 수 있다”고 했다.
한편 ‘개그콘서트’는 3년 만에 돌아오면서도 한국방송이 힘주는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 방송 시간 연장에 따라 밤 10시40분에 방영됐다. 시작부터 제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 19일 2회도 밤 10시40분에 방영된다. 이후에는 매주 일요일 밤 10시 25분에 찾아온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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