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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이사람] “이제 그의 ‘정치적 복권’ 토론해야”

등록 2009-10-12 18:55

홍형숙(47) 감독
홍형숙(47) 감독
‘송두율 다큐-경계도시 2’ 홍형숙 감독
존경받던 민주 인사에서 ‘해방 이후 최대의 거물 간첩’으로 전락했던 재독 철학자 송두율(왼쪽 사진) 교수. 부푼 기대를 안고 37년 만의 귀국을 감행했던 그의 몸을 냉전의 사슬이 옭아매는 데는 채 한달이 걸리지 않았다. “강산이 변해도 4번이나 변하는 세월이 지나간 만큼 조국도 많이 변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송 교수의 오산이었다. 이성을 상실한 광기가 휩쓸고 지나간 뒤 그는 잊혀진 존재가 됐다.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서 상영 중인 홍형숙(47·오른쪽 사진) 감독의 <경계도시 2>는 이 견고한 침묵의 바다에 던진 최초의 파문이다.

‘귀국~대법 판결’ 5년간 한국사회 기록
‘거물 간첩’ 광풍 뒤 상처만 남긴채 망각

영화는 우리가 잊고 있던 혹은 잊고 싶어했던 불행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며, 우리가 외면하려 했던 우리 사회의 치부와 대면하게 한다. 영화에는 해방 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서슬 퍼렇게 살아있는 레드 컴플렉스, 실정법(피의사실 공표죄)을 공공연히 어겨가며 여론몰이를 하는 공안기관,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게임 플레이어’로서 사건에 적극 개입하는 언론, 송 교수가 구속된 뒤 완전히 관심을 끊어버린 ‘냄비 여론’ 등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병폐의 단면이 총체적으로 담겨 있다. 이 영화는 등장 인물들의 긴박하고 내밀한 대화와 토론을 가감없이 잡아낸, 다큐멘터리 기본 정신에 충실한 작품이다. 딱딱한 주제를 감싸는 유려한 카메라 움직임과 아름다운 음악은 이 영화를 예술작품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영화는 2003년 9월, 송 교수가 베를린에서 귀국 기자회견을 여는 장면으로 시작해, 2008년 4월 대법원에서 일부 무죄 판결을 받을 때까지 5년 동안 벌어진 일을 담고 있다.


철학자 송두율 교수(왼쪽 사진)
철학자 송두율 교수(왼쪽 사진)
홍 감독은 “애초 3주 예정이었던 송 교수의 체류 일정에 맞춰 가벼운 마음으로 촬영을 시작했다”. 송 교수의 독일 생활을 다룬 전작 <경계도시>에 이어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은 송 교수가 ‘김철수’라는 가명을 가진 북한의 정치국 후보위원과 동일인물이라며 출국금지 명령을 내렸고, 호의적이었던 여론은 순식간에 악의적으로 변했다. 언론은 그의 방북 사실과 노동당 가입 사실 등을 폭로하며 그를 간첩이라고 단정했다.

속속 밝혀지는 송 교수의 과거 행적에 충격을 받은 것은 그의 귀국을 추진했던 측근들도 마찬가지였다. 홍 감독 역시 “당혹과 충격에 빠졌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난상토론 끝에 송 교수는 그동안 북한에 치우친 점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결국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이 모든 소란이 발생한 것은, 양심의 자유를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그 위에 철옹성처럼 자리 잡은 대한민국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탓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11일 부산에서 만난 홍 감독은 “송 선생님이 모국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클 것”이라며 “대법원에서 (일부)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국민들의 머릿속에서도 그런가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송 선생님의 정치적 복권을 위해 한국의 시민사회가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산/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손홍주 <씨네 21> 기자 lightson@cine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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