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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장애인 극단 ‘휠’ 연습현장

등록 2005-06-15 18:11수정 2005-06-15 18:11

송정아(왼쪽사진), 한석준(위쪽사진), 김경령 조연출, 김득규, 박정화, 박형준(오른쪽 사진 왼쪽부터)
송정아(왼쪽사진), 한석준(위쪽사진), 김경령 조연출, 김득규, 박정화, 박형준(오른쪽 사진 왼쪽부터)


휴∼이마에 땀이 폭포수다…연극때문? 아니 화장실 때문

“도와 주세요, 도와 주세요~. 제 팔 좀 잡아 주세요.”

조명감독 박종화씨가 조명을 설치하다 말고 소리가 새어나오는 분장실로 걸어간다. 기자도 놀랐다. ‘그들’이 낯선 이에게 도움을 청하는 건 악수를 청하는 일처럼 흔하지만 매번 벼랑에서 외치는 것만큼 절박하다. 하지만 막상 갔더니 대사를 연습하는 중. 이쯤 되면 연기가 수준급이다. 서훈(31)씨다. 뇌병변 2급 장애를 갖고 있다.

국내에 둘도 없는 장애인극단 휠의 2005년 신작 <찐따 친구야 같이 놀자>의 연습 현장이다. 3년 전 극단이 만들어진 이래 모든 작품이 ‘난산’이었지만 이번엔 좀더 특별하고 힘에 부친다.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했던 이전 작품과 달리 장애인에 대한 청소년 의식을 개선하기 위해 청소년, 특히 비장애인 청소년을 주 관객으로 설정해 서울, 인천 안 5개 청소년 시설에서 무료로 순회공연하고 있는 중이다.

어딜가나 계단계단
분장실 가는 길이 호환마마보다 무서워
모든게 날 힘들게 해도
덥다 부채질 해주는 동료
열정과 관객이 있어 우리는 좋다
작품을 올릴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난 10일 서울 수서청소년수련관을 찾았다. 이미 지난 4일 동대문 청소년수련관에서 200여명이 꽉 찬 가운데 본 공연을 한 차례 올렸지만, 같은 작품이래도 공연 장소를 옮기면 새 작품을 준비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후 3시, 다음날 이곳에서의 본 공연을 앞두고 무대 설치가 한창이다. 그 사이 7명의 장애인 배우와 1명의 비장애인 배우 겸 도우미는 분장실에서 호흡을 고르고 있다.

계단만 분장을 하지 않는다=분장실로 가려면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극장 안 통로는 모두 계단이다. 그런데 분장실 문을 열자마자 또 계단이다. 계단을 올라야 분장실 바닥이다. 이들에겐 ‘호환 마마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게 바로 계단이다.


객석과 분장실 통로가 계단인지 비탈길인지 분장실이나 화장실이 무대에서 얼마나 가까운지 장애인용 화장실은 있는지에 따라 연습과 공연은 천차만별 제약을 받는다. 뇌병변 3급의 김득규(27)씨가 무대 의상으로 갈아입으며 “동대문 수련관은 분장실이 멀어서 힘들었고 여긴 가까운데 계단 천지”라고 말한다. “그래도 작품을 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좋다” 하는데 ‘계단’은 듣는 둥 마는 둥.

화장실은 없거나 멀다=한석준(24)씨가 안 보인다. 뇌성마비 1급 장애로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는데 화장실을 간 지 20분이 다 되어간다. 도우미가 없으면 그도 불가능하다. 장애인 화장실이 없거나 있어도 온갖 청소도구로 가득 차 있다면 도우미 또한 있으나마나다. 화장실을 다녀온 그의 이마에 산 하나를 오른 듯 땀이 흘러내린다. 시각장애 1급인 박정화(28)씨가 부채질을 해준다. “많이 덥니?” 도우미 겸 배우인 박형준(25)씨는 급히 옷을 갈아입혀 준다.

정화씨 뜬금없이 부채질 장단에 맞춰 노래를 시작하더니 모두가 따라 한다.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오죠. …사랑해도 될까요~.” 그렇게 호흡은 맞아들어 간다.

휠체어만 그들을 기다린다=연출을 맡은 한순희씨가 바빠진다. 3시부터 하기로 한 리허설이 많이 지연됐다. 배우의 동선뿐만 아니라 도우미의 동선까지 무대 바닥에 표시해야 하고 안전까지 고려하며 총 리허설을 마치려면 본래 러닝타임의 2~3배 시간이 필요하다.

배우의 동선은 곧 휠체어의 것이기도 하다. 준이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았고(‘아빠를 기다리는 아이’), 봉구는 일반학교를 다니고 싶지만 선생님은 특수학교로 전학을 시키려고 한다(‘기회를 기다리는 아이’). 볕 따사로운 여름날 야외로 나간 석준은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은데 도움을 구하기 어렵다(‘남자를 기다리는 남자’). 장애로 연인과 헤어진 정은과 동섭도 있다(‘사랑을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 무언가를 기다리는 장애인들. 그들 옆에서 휠체어는 떠나지 않는다. 작품은 슬프거나 해학적인 5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휠체어는 모든 에피소드에서 또 다른 주인공이다.

여느 극단과 다르지 않다=“언니, 안내 멘트 잡으셨어요? 아니, 직접 쓰던가 하지 않고선.” 연출가가 뇌병변 2급에 수동 휠체어를 타는 배우 겸 극단장 송정아(33)씨를 채근한다. 들머리에 작품의 취지를 설명해야 한다. 급히 송씨는 펜을 들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휠체어 타고 목발 집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극단입니다. 그래서 목소리가 조금 작을 수도 있으니 귀 기울여 들어주셔야 할 것 같아요.” 이 극단, 이것만 빼곤 여느 극단과 다를 게 없다. “그리고 하나. 핸드폰 꺼주시는 거 아시죠?” 3시간에 이른 리허설은 그렇게 시작됐다.

“야, 선생님이 얘기하고 있을 때 계속 떠들고 있어야지. 떠들어, 떠들어!” “정화 너는 ‘딱딱딱’ 책상을 치란 말이야.”(‘기회를 기다리는…’) “사선에 서서 얘기해, 훈아. 너무 나오지 말고. 무대가 너무 좁아 떨어지겠다.”(‘남자를…’)

집은 사가정역인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항상 용마산역에서 내려 집에 가는 한씨의 어려움은 곧 극단 휠의 어려움을 대변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모두 4개의 신작을 발표하며 대학로, 세종문화회관 등지에서 쉴 새 없이 관객들과 만났다. <찐따 친구…>는 18일 구로청소년수련관, 21일 목동 청소년수련관을 찾아간다. 그들은 배우다. 장애를 연기할 땐 굳이 분식이 필요치 않은 장애가 좀 있다. (02)2266-0866.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사진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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