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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여온 세월’ 53년
연주회 끝날때까지 아직도 맘 졸여
“튜너기보다 사람의 귀가 더 정확해” 지난해 1월 세계적인 실내악단 ‘이 무지치’의 내한공연 때의 일이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피날레 연주회 동안 대기실에는 백발의 한국인 노신사가 숨을 죽이며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연주회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쳄발로 연주자 마리아 테레사 가라티가 대기실로 걸어들어와 그에게 악수를 건네자 이보정(78)씨의 입가에는 비로소 안도와 만족의 웃음이 번져나왔다. “연주회에서는 항상 긴장이 됩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조율이 제대로 안됐을까, 연주 중에 줄이 끊어지지나 않을까 마음 조리면서 지켜보죠. 그렇지만 연주가 끝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어요.” 지난 88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개관부터 17년째 쳄발로 조율을 맡고 있는 이보경씨는 이 나라에서 가장 오랜 53년 경력의 피아노와 쳄발로 전문 조율사이다. 특히 그는 피아노의 전신인 쳄발로 조율뿐만 아니라 그것을 조정하고 수리하며 제작할 수 있는 유일한 조율명인이다. 지난해 1월 이 무지치의 7개 지방도시 순회공연을 비롯해 그해 12월 원전연주의 거장 존 엘리어트 가디너의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 통영연주회에는 그가 85년에 제작한 쳄발로가 사용됐다. “화음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조율을 할 수 없어요. 이를테면 바흐 이전의 바로크 음악은 고전음계에 따른 순정율로 조율해야만 하는데 평균율로 조율하니까 화음이 맞지 않지요. 순정율로 해야 4도 5도가 정확하게 맞고 변조가 되지 않죠.”
황해도 황주가 고향인 그는 1947년 서울 유학을 왔다가 한국전쟁 때문에 이산 가족으로 눌러살면서 아르바이트로 하모니카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고장난 하모니카를 조율하다 풍금과 피아노 조율로 발전해 평생의 직업이 되어버렸다. “한번은 햇병아리였을 때인 54년에 안양 천주교에서 풍금을 고치는데, 제대로 조율을 했는데도 맞지 않아요. 꾀를 내어 한 옥타브 12개 음을 쪼개놓았더니 파이프오르간 명연주자로 유명한 이문근 신부가 쳐보고 맞다 하시더군요. 속으로는 죄책감이 들어 언제가 꼭 휼륭한 조율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러나 몇달 후에 화이트 박사의 <피아노 조율과 관련 기술> 일어판을 구해 읽어 보았더니 맞는 방법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본격적인 조율사의 길을 결심하고 독학으로 조율이론을 파고 들었다. 현재 한국피아노조율사협회 고문으로 있는 그는 82년 한국피아노조율사협회 2대 회장을 지냈고 85년부터 6년간 국제피아노조율사협회 부회장 겸 국제이사로, 91년에는 회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요즈음은 주로 조율기인 튜너기를 사용하지만 사람의 귀보다 민감하고 정확한 것은 없다”고 믿고 있다. 지난해 독일 실내악단이 내한 연주회 때 조율사를 데리고 왔는데 7시간이나 조율시간을 요구해서 그가 지켜보았더니 튜너기를 사용했다. 그래서 그가 “왜 귀로 듣고 조율하지 않느냐. 나는 귀로 조율한다”고 말했더니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는 “정치인들이 조율을 들먹이지만 조율이론을 모르고 정치를 조율하기 때문에 불협화음을 낸다”면서 “조율이론은 주고 받는 것, 서로 양보하는 것이 제대로 된 조율”이라고 강조한다. 지난 15년 동안 시각장애인 40여명을 비롯해 수백명의 제자를 길러낸 그는 틈나는대로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자신의 노하우를 가르치는 것을 노년의 즐거움으로 삼고있다.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튜너기보다 사람의 귀가 더 정확해” 지난해 1월 세계적인 실내악단 ‘이 무지치’의 내한공연 때의 일이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피날레 연주회 동안 대기실에는 백발의 한국인 노신사가 숨을 죽이며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연주회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쳄발로 연주자 마리아 테레사 가라티가 대기실로 걸어들어와 그에게 악수를 건네자 이보정(78)씨의 입가에는 비로소 안도와 만족의 웃음이 번져나왔다. “연주회에서는 항상 긴장이 됩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조율이 제대로 안됐을까, 연주 중에 줄이 끊어지지나 않을까 마음 조리면서 지켜보죠. 그렇지만 연주가 끝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어요.” 지난 88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개관부터 17년째 쳄발로 조율을 맡고 있는 이보경씨는 이 나라에서 가장 오랜 53년 경력의 피아노와 쳄발로 전문 조율사이다. 특히 그는 피아노의 전신인 쳄발로 조율뿐만 아니라 그것을 조정하고 수리하며 제작할 수 있는 유일한 조율명인이다. 지난해 1월 이 무지치의 7개 지방도시 순회공연을 비롯해 그해 12월 원전연주의 거장 존 엘리어트 가디너의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 통영연주회에는 그가 85년에 제작한 쳄발로가 사용됐다. “화음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조율을 할 수 없어요. 이를테면 바흐 이전의 바로크 음악은 고전음계에 따른 순정율로 조율해야만 하는데 평균율로 조율하니까 화음이 맞지 않지요. 순정율로 해야 4도 5도가 정확하게 맞고 변조가 되지 않죠.”
황해도 황주가 고향인 그는 1947년 서울 유학을 왔다가 한국전쟁 때문에 이산 가족으로 눌러살면서 아르바이트로 하모니카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고장난 하모니카를 조율하다 풍금과 피아노 조율로 발전해 평생의 직업이 되어버렸다. “한번은 햇병아리였을 때인 54년에 안양 천주교에서 풍금을 고치는데, 제대로 조율을 했는데도 맞지 않아요. 꾀를 내어 한 옥타브 12개 음을 쪼개놓았더니 파이프오르간 명연주자로 유명한 이문근 신부가 쳐보고 맞다 하시더군요. 속으로는 죄책감이 들어 언제가 꼭 휼륭한 조율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러나 몇달 후에 화이트 박사의 <피아노 조율과 관련 기술> 일어판을 구해 읽어 보았더니 맞는 방법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본격적인 조율사의 길을 결심하고 독학으로 조율이론을 파고 들었다. 현재 한국피아노조율사협회 고문으로 있는 그는 82년 한국피아노조율사협회 2대 회장을 지냈고 85년부터 6년간 국제피아노조율사협회 부회장 겸 국제이사로, 91년에는 회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요즈음은 주로 조율기인 튜너기를 사용하지만 사람의 귀보다 민감하고 정확한 것은 없다”고 믿고 있다. 지난해 독일 실내악단이 내한 연주회 때 조율사를 데리고 왔는데 7시간이나 조율시간을 요구해서 그가 지켜보았더니 튜너기를 사용했다. 그래서 그가 “왜 귀로 듣고 조율하지 않느냐. 나는 귀로 조율한다”고 말했더니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는 “정치인들이 조율을 들먹이지만 조율이론을 모르고 정치를 조율하기 때문에 불협화음을 낸다”면서 “조율이론은 주고 받는 것, 서로 양보하는 것이 제대로 된 조율”이라고 강조한다. 지난 15년 동안 시각장애인 40여명을 비롯해 수백명의 제자를 길러낸 그는 틈나는대로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자신의 노하우를 가르치는 것을 노년의 즐거움으로 삼고있다.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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