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이후 25년 넘게 연평균 7%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보인 나라는 지구촌에서 13곳밖에 없다. 그 가운데 아홉이 동아시아에 있다. 한국·중국·일본·대만·홍콩 등 동북아 다섯 나라와 타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싱가포르 등 동남아 네 나라가 그렇다. 나머지 넷은 남미의 브라질, 아프리카의 보츠와나, 중동의 오만, 지중해의 몰타다. 이들 동아시아 9개 나라의 국내총생산 규모(2010년 구매력 기준, 미국 중앙정보국 <월드 팩트북>)는 19조3298억달러에 이른다. 한·중·일 세 나라만 합쳐도 15조8590억달러로 유럽연합(14조8200억달러)과 미국(14조6600억달러)을 앞지른다.
동아시아의 부상은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사에서 가장 극적인 모습 가운데 하나다. 최근 서구의 경제위기와 맞물려 동아시아로 더 많은 눈이 쏠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동아시아에 어떤 특별한 게 있길래 이렇게 됐을까?
이른바 ‘동아시아의 기적’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한 논의는 크게 네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강한 국가’, 곧 시장을 통제하고 지도할 수 있는 ‘발전국가’에서 원인을 찾는 경우가 있다. 일종의 개발독재론이다. 또 수출 주도 공업화 등 시장친화적 정책의 산물로 보는 ‘시장의 주술’ 논의가 있다. 이어 ‘아시아적 가치’로 표현되기도 하는 공동체적 유교문화론은 문화적 하부구조를 강조한다. 마지막은 외부환경론이다. 미국의 경제·군사 지원과 시장 제공 등 ‘자비로운 태도’가 동아시아 성장의 결정적 요인이라는 주장이다.(<동아시아의 전환-발전국가를 넘어>)
각 논의는 진실의 한 부분씩만을 반영한다. 한 가지 요인만을 앞세우는 것은 독단에 가깝다. 게다가 이들 요인이 작동되게 해주는 ‘주체의 능력’을 폭넓게 고려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특히 동북아 나라들에 공통되는 특징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조직화 역량’이다. 고도성장의 핵심 내용인 자본주의적 산업화는 전통사회와는 비교될 수 없는 복잡한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이다. 자원·자본·인력·지식·정책 등을 높은 수준으로 조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역량은 당시 조건에 영향받을 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역사·전통과 깊게 얽혀 있다. 긴 세월 동안 국가를 꾸려온 경험, 오랜 문치 전통, 조화와 통합을 중시하는 의식구조 등이 조직화 역량의 기본 자원이 됐을 법하다.
또 하나는 동기의 면이다. 우선 정당성·정통성에 대한 압력이 강했다. 대부분 정통성이 취약했던 동아시아 나라들의 집권세력은 경제적 성취에서 탈출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서세동점으로 크게 상처를 입은 ‘민족적 자부심’도 강한 동기가 됐다. 또한 민주화 투쟁은 그 자체의 의미 외에도 집권세력의 부패와 일탈을 감시하는 데 큰 구실을 했다. 전환기일수록 주체의 능력은 더 중요해진다. 다행히도 동아시아 나라들은 세계 어느 지역보다 뛰어난 인적 요소와 문명 자원을 갖고 있다. 세계사에서 지난 수백년 동안 서구가 해온 역할을 누군가가 대신해야 한다면 동아시아 외엔 잠재력이 있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지금의 동아시아는 역량과 위상, 과제에서 모두 특별한 상황에 있다. 콘텐츠평가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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