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요리 전문가 문성희씨는 요리책 출간과 강연을 통해 자연요리가 대중 속으로 들어가는 접점을 찾는 데 힘을 쏟아왔다. 충북 괴산 미루마을 자택 텃밭을 배경으로 자세를 취한 문성희씨.
[한겨레가 만난 사람]
자연요리 ‘살림음식’ 전문가 문성희씨
자연요리 ‘살림음식’ 전문가 문성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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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료가 가진 생명력 살려 먹어야 -자연요리 전문가라고 부른다. “‘자연요리 전문가’ 내게는 어색하다. 2009년 첫 책을 출간하면서 출판사에서 붙인 거다. ‘자연식 밥상, 채식을 해야겠다, 세상에 전파해야겠다’고 의도한 적은 없다. 그저 내 삶을 살았을 뿐이다. 내 음식은 ‘살림음식’이다.” -살림음식이 뭔가? “몸과 마음을 살리는 음식이다. 생명을 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음식에 담긴 에너지는 평화다. 우리 몸은 첨가물, 오염물질, 인공조미료 범벅에 찌들어 있다. 모르고 산다. 세상살이가 급하다 보니 마음도 찌들어 있다. (문제)의식을 가지면 몸을 돌보게 되고, 몸을 돌보면 마음도 달라진다. 치유의 과정이다. 몸 돌보는 것은 먹을거리가 시작이다. 직접 절절하게 경험했다.” -도시생활을 접고 산속에 들어간 게 살림음식(자연요리)의 시작이었나? “그렇다. 처음부터 철마산(부산 기장면)에 들어간 건 아니다. 부산 금정구 두구동에서 1년, 입석마을에서 1년, 임기마을에서 1년 보냈다. 허름한 공장을 싸게 빌려 고치고, 무너져가는 방을 손봐서 살았다. 그릇과 옷, 책도 다 나눠주고 냄비와 밥그릇 몇 개만 가지고 (산속에) 들어갔다.” -왜 도시를 떠나 산속에 들어갔나? “행복하지 않았다. 지속적인 평온함이 없었다. 감성이 발달하다 보니 슬픔도 많았고, 사람관계도 힘들었다.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했다. 힘들었다. 친구들은 수배당하는데 나는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친정과 가난한 시댁도 내 책임이었다. 가족이 진 빚도 내 몫이었다. 언제부턴가 큰 부담이 됐다. 요리학원은 먹고살기 위해 한 거다. 생각은 매일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방송에 나가도, 신문에 글을 써도 재미가 없었다. 뭔가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웠다. 화려하게 보여주기만 하는, 생명력이 없는 음식에 회의가 들었다. 인도 라다크(인도 북동부지역에 있는 오지) 순례를 다녀와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자연과 온전히 하나되는 라다크인들의 생활이 가장 사람다운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요리학원 앞에 생식가루 파는 집이 있었다. 그걸 먹고 몸과 마음이 달라졌다. 사람이 정신이 변하면 찾는 음식도 달라진다.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자연식은 나 자신을 변화하게 하고
내가 변하니 가족간에 따스한 소통
문씨가 제자와 함께 만들어 식탁에 낸 자연요리.
청소년 급식지도 등 공적활동 할것 -산에서 내려오게 된 사연은? “방송이나 신문에 내 얘기가 나갔다. 다큐 제안도 받았다. 생활에 작은 도움이 됐다. 하지만 내 내면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었다. 여인이 산에서 바느질하고 지게 지고 나물 뜯고 자급자족하며 사는 풍경이 나갔다. 사람들이 매료되어 찾아왔다. 강연하면 동경의 소리를 들었다. 이게 진짜인가 회의가 들었다. 도시인에게도 대안을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교에 입학해야 하는 딸아이 문제도 있었다. 어디에 살든 내가 단단하면 온전히 내 것인 삶을 살 수 있다 생각했다. 2011년 당시 미루마을추진위원회 사무처장이었던 전희수씨가 찾아와 마을에 들어와 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그의 생각이 산에 살면서 가졌던 내 비전과 같았다.” -선생님의 음식은 자연식이지만 맛도 좋다는 평이다. “음식을 몇십년 해서 그런지 음식을 함부로 내지 않는 습관이 있다. 맛에 대한 직관이 작동한다. 질그릇에 담아도 향과 색을 맞춘다. 아무리 자연식이라도 맛이 없는 건 용서가 안 된다.(웃음) 자연식은 자신을 변하게 한다. 자신이 변하니 가족관계도 변한다. 따스한 소통이 는다.” -작년 이탈리아 슬로푸드대회도 다녀온 것으로 안다. 선생님 음식도 슬로푸드다. 이탈리아 대회에서 느낀 점은? “삶과 일과 놀이가 하나가 되는 점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서구 문화가 가진 한계가 보이더라. 우리는 자연의 한 부분으로 인간을 본다. 서구는 인간이 중심이다. 10월 대회에서 그런 점을 좀더 부각시켰으면 한다.” -딸에게 제철밥상을 지금 차려준다면? “오곡밥, 콩가루 넣은 쑥국, 산나물, 장떡이나 산나물 잡채를 준비하고, 된장찌개 좋아하니깐 여러 가지 채소와 두부 넣어 보글보글 끓여낼 거다.” -앞으로의 계획은? “살림음식연구원(2010년 하산 뒤 설립)에서 나와 함께 음식을 연구한 마스터들이 34명 있다. 이들과 평생 같이 공부할 계획이다. 이분들 중심으로 작년 12월에 사단법인 ‘평화가 깃든 밥상’을 만들었다. 청소년 급식지도, 도농협력네트워크 구성, 지구환경을 음식으로 돌보기, 생태적인 삶을 위한 워크숍 등 좀더 사회적이고 공적인 활동을 할 예정이다.” -원래 살고 싶었던 삶인가? “내가 성장한 걸 생각하면 (나) 자신이 아름답다. 문제가 없는 삶은 없다. 문제를 보는 방식이 달라졌다. 오래전에는 문제에 압도되어 힘들었다. 앞으로 닥칠 내 삶은 여전히 흥미진진하다. 30대보다는 40대가 좋았고, 50대보다는 70대가 더 아름다울 거다. 5년 전보다는 3년 전이, 어제보다는 오늘이 낫다. 더 나은 인간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가 맛깔스러운 밥상을 내왔다. 묵은 김치를 질박한 그릇에 담아 내고, 뒷밭에서 키운 머위·참나물을 뜯어 왔다. “참나물 작년에 심은 건데 향이 너무 좋아서 아예 양념을 안 했어요. 파는 건 이런 향이 안 나죠.” 산 생활 추억담이 술술 나온다. “나 산에 살 때 이웃 할머니가 산나물 뜯어 줘서 밭에 심었지요. 참나물 뜯어 차 만들면 차향이 참 향기로워요.” 세상에 가장 맛있는 차는 참나물차라고 말한다. 담백한 자연식이었다. <평화가 깃든 밥상> 시리즈의 마지막인 3권이 곧 출간된다. 인터뷰 전날 탈고했다며 웃는다. 미소가 달콤쌉싸래한 참나물처럼 그윽하다.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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