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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자연식도 맛없는 건 용서 안돼”
행복하지 않아 도시에서 산속으로

등록 2013-06-03 19:26수정 2013-06-04 20:41

자연요리 전문가 문성희씨는 요리책 출간과 강연을 통해 자연요리가 대중 속으로 들어가는 접점을 찾는 데 힘을 쏟아왔다. 충북 괴산 미루마을 자택 텃밭을 배경으로 자세를 취한 문성희씨.
자연요리 전문가 문성희씨는 요리책 출간과 강연을 통해 자연요리가 대중 속으로 들어가는 접점을 찾는 데 힘을 쏟아왔다. 충북 괴산 미루마을 자택 텃밭을 배경으로 자세를 취한 문성희씨.
[한겨레가 만난 사람]
자연요리 ‘살림음식’ 전문가 문성희씨

문성희(63)씨는 부산 여자다. 하지만 부산 사투리 특유의 개성 강한 억양은 찾아볼 수 없다. 고요한 산자락 계곡물 소리처럼 낮고 생명력 강한 목소리다.

자연요리의 대가로 불리는 그는 물, 햇살, 바람과 흙에서 자란 건강한 재료를 그의 식탁에 올린다. 껍질, 뿌리, 씨앗까지도 버릴 게 없다고 말한다. “생명력이 충만한 먹을거리죠.” 조리 과정을 줄이고 신선한 맛을 최대로 살리는 게 그의 음식의 특징이다. 된장이나 산야초효소, 각종 곡물가루를 양념으로 쓴다. 인스턴트 음식과 각종 첨가물이 들어간 먹거리에 지쳐가는 현대인들에게 그의 음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연요리법을 따르나 맛도 인기있는 대중음식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중이 자연요리를 어려워하지 않고 쉽게 가정에서 할 수 있는 길을 책과 강연을 통해 터놨다. 2009년부터 <평화가 깃든 밥상> 등 자연요리 관련 책 3권을 펴냈다. 현재 <평화가 깃든 밥상>은 11쇄까지 발행했다. 오는 10월 열리는 국제슬로푸드대회 자문위원이다.

그는 부산에서 ‘잘나가는’ 요리학원 원장이었다. 1977년 어머니가 세운 요리학원에서 27살부터 요리를 강의했다. 서른을 넘기자 신문·잡지·방송 등 언론사에서 노상 찾는 유명인사가 됐다.

1999년 그는 갑자기 인생의 궤도를 수정했다. 학원 문을 닫고 초등학생인 딸과 산속으로 들어갔다. 고작 세 가구가 사는 깊은 골짜기였다. 탄탄한 수로를 내달리던 인생의 물줄기가 인적이 드문 숲에 멈췄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음식을 먹고 만들고 가르쳐왔던” 삶을 던져버리고 자급자족의 생활에 나섰다. 2010년 산에서 내려왔고, 2년 전부터 충북 괴산 미루마을에 살면서 자연요리를 가르치고 있다. 지난달 괴산을 찾았다.

인터뷰/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된장·산야초 효소 직접 담가 맛내
식재료가 가진 생명력 살려 먹어야

-자연요리 전문가라고 부른다.

“‘자연요리 전문가’ 내게는 어색하다. 2009년 첫 책을 출간하면서 출판사에서 붙인 거다. ‘자연식 밥상, 채식을 해야겠다, 세상에 전파해야겠다’고 의도한 적은 없다. 그저 내 삶을 살았을 뿐이다. 내 음식은 ‘살림음식’이다.”

-살림음식이 뭔가?

“몸과 마음을 살리는 음식이다. 생명을 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음식에 담긴 에너지는 평화다. 우리 몸은 첨가물, 오염물질, 인공조미료 범벅에 찌들어 있다. 모르고 산다. 세상살이가 급하다 보니 마음도 찌들어 있다. (문제)의식을 가지면 몸을 돌보게 되고, 몸을 돌보면 마음도 달라진다. 치유의 과정이다. 몸 돌보는 것은 먹을거리가 시작이다. 직접 절절하게 경험했다.”

-도시생활을 접고 산속에 들어간 게 살림음식(자연요리)의 시작이었나?

“그렇다. 처음부터 철마산(부산 기장면)에 들어간 건 아니다. 부산 금정구 두구동에서 1년, 입석마을에서 1년, 임기마을에서 1년 보냈다. 허름한 공장을 싸게 빌려 고치고, 무너져가는 방을 손봐서 살았다. 그릇과 옷, 책도 다 나눠주고 냄비와 밥그릇 몇 개만 가지고 (산속에) 들어갔다.”

-왜 도시를 떠나 산속에 들어갔나?

“행복하지 않았다. 지속적인 평온함이 없었다. 감성이 발달하다 보니 슬픔도 많았고, 사람관계도 힘들었다.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했다. 힘들었다. 친구들은 수배당하는데 나는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친정과 가난한 시댁도 내 책임이었다. 가족이 진 빚도 내 몫이었다. 언제부턴가 큰 부담이 됐다. 요리학원은 먹고살기 위해 한 거다. 생각은 매일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방송에 나가도, 신문에 글을 써도 재미가 없었다. 뭔가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웠다. 화려하게 보여주기만 하는, 생명력이 없는 음식에 회의가 들었다. 인도 라다크(인도 북동부지역에 있는 오지) 순례를 다녀와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자연과 온전히 하나되는 라다크인들의 생활이 가장 사람다운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요리학원 앞에 생식가루 파는 집이 있었다. 그걸 먹고 몸과 마음이 달라졌다. 사람이 정신이 변하면 찾는 음식도 달라진다.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자연식은 나 자신을 변화하게 하고
내가 변하니 가족간에 따스한 소통

문씨가 제자와 함께 만들어 식탁에 낸 자연요리.
문씨가 제자와 함께 만들어 식탁에 낸 자연요리.
-철마산 생활을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산나물과 쌀, 보리, 밀, 녹두 같은 곡식 20여가지와 부산 한살림에서 파는 고구마, 우엉, 연근, 호박 등을 말려 생식가루를 만들었다. 총 40여가지다. 하루 한 끼는 이것을 먹었다. 회원제로 70~80여명에게 공급하기도 했다. 그게 생계수단이었다. 딸을 학교 보내야 했다. 점심은 잡곡밥과 텃밭에서 직접 기른 쌈채소·오이를 된장과 먹었다. 된장, 청국장, 산야초효소를 직접 담갔다. 옷도 직접 바느질해 입었다. 겨울에는 오후 3시면 어두워진다. 딸을 통학시키고 라자요가로 명상을 했다. 동요음유시인 김성원씨와 함께 감자 찌고 주먹밥 해서 마당에 철퍼덕 앉아 명상음악회도 열었다.”

-딸과 남편은 산 생활을 힘들어하지 않았나?

“딸은 외롭고 힘들었을 거다. 고등학교 가서 그런 소리 하더라. ‘엄마가 채식을 하고 명상을 하면서부터 화를 별로 안 냈어.’ 결과적으로 안정감을 줬다. 우리 모녀 관계는 친구 같다. 남편은 낭인이다. 평생 강만 쫓아다녔다.”

그의 남편 김상화씨는 평생을 낙동강 살리기에 힘을 쏟은 생태지킴이다. 현재 낙동강공동체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산 생활로 먹거리에 대한 생각이 변했나? 살림음식(자연요리)의 골격이 이때 세워졌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왜 그렇게 먹어야 하는지가 명료해졌다. 식재료가 가진 성질과 향, 모양, 맛을 되도록 그 상태로 그대로 먹는 것이 가장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몸에서 바로 세포가 되는 걸 느꼈다. 그렇게 살면 필요한 것도 적다. 갖고 싶은 게 없어진다. 이전에 가졌던 갈망, 혼란, 회의가 사라졌다. 몸이 가볍고 행복하고 평화로웠다. 속도 편해졌다. 자연요리는 한살림 강연 등을 하면서 차분하게 정리가 되었다.”

음식연구 마스터 34명과 평생 공부
청소년 급식지도 등 공적활동 할것

-산에서 내려오게 된 사연은?

“방송이나 신문에 내 얘기가 나갔다. 다큐 제안도 받았다. 생활에 작은 도움이 됐다. 하지만 내 내면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었다. 여인이 산에서 바느질하고 지게 지고 나물 뜯고 자급자족하며 사는 풍경이 나갔다. 사람들이 매료되어 찾아왔다. 강연하면 동경의 소리를 들었다. 이게 진짜인가 회의가 들었다. 도시인에게도 대안을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교에 입학해야 하는 딸아이 문제도 있었다. 어디에 살든 내가 단단하면 온전히 내 것인 삶을 살 수 있다 생각했다. 2011년 당시 미루마을추진위원회 사무처장이었던 전희수씨가 찾아와 마을에 들어와 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그의 생각이 산에 살면서 가졌던 내 비전과 같았다.”

-선생님의 음식은 자연식이지만 맛도 좋다는 평이다.

“음식을 몇십년 해서 그런지 음식을 함부로 내지 않는 습관이 있다. 맛에 대한 직관이 작동한다. 질그릇에 담아도 향과 색을 맞춘다. 아무리 자연식이라도 맛이 없는 건 용서가 안 된다.(웃음) 자연식은 자신을 변하게 한다. 자신이 변하니 가족관계도 변한다. 따스한 소통이 는다.”

-작년 이탈리아 슬로푸드대회도 다녀온 것으로 안다. 선생님 음식도 슬로푸드다. 이탈리아 대회에서 느낀 점은?

“삶과 일과 놀이가 하나가 되는 점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서구 문화가 가진 한계가 보이더라. 우리는 자연의 한 부분으로 인간을 본다. 서구는 인간이 중심이다. 10월 대회에서 그런 점을 좀더 부각시켰으면 한다.”

-딸에게 제철밥상을 지금 차려준다면?

“오곡밥, 콩가루 넣은 쑥국, 산나물, 장떡이나 산나물 잡채를 준비하고, 된장찌개 좋아하니깐 여러 가지 채소와 두부 넣어 보글보글 끓여낼 거다.”

-앞으로의 계획은?

“살림음식연구원(2010년 하산 뒤 설립)에서 나와 함께 음식을 연구한 마스터들이 34명 있다. 이들과 평생 같이 공부할 계획이다. 이분들 중심으로 작년 12월에 사단법인 ‘평화가 깃든 밥상’을 만들었다. 청소년 급식지도, 도농협력네트워크 구성, 지구환경을 음식으로 돌보기, 생태적인 삶을 위한 워크숍 등 좀더 사회적이고 공적인 활동을 할 예정이다.”

-원래 살고 싶었던 삶인가?

“내가 성장한 걸 생각하면 (나) 자신이 아름답다. 문제가 없는 삶은 없다. 문제를 보는 방식이 달라졌다. 오래전에는 문제에 압도되어 힘들었다. 앞으로 닥칠 내 삶은 여전히 흥미진진하다. 30대보다는 40대가 좋았고, 50대보다는 70대가 더 아름다울 거다. 5년 전보다는 3년 전이, 어제보다는 오늘이 낫다. 더 나은 인간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가 맛깔스러운 밥상을 내왔다. 묵은 김치를 질박한 그릇에 담아 내고, 뒷밭에서 키운 머위·참나물을 뜯어 왔다. “참나물 작년에 심은 건데 향이 너무 좋아서 아예 양념을 안 했어요. 파는 건 이런 향이 안 나죠.” 산 생활 추억담이 술술 나온다. “나 산에 살 때 이웃 할머니가 산나물 뜯어 줘서 밭에 심었지요. 참나물 뜯어 차 만들면 차향이 참 향기로워요.” 세상에 가장 맛있는 차는 참나물차라고 말한다. 담백한 자연식이었다.

<평화가 깃든 밥상> 시리즈의 마지막인 3권이 곧 출간된다. 인터뷰 전날 탈고했다며 웃는다. 미소가 달콤쌉싸래한 참나물처럼 그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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