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호 제일모직 전무는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나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고, 회사는 시스템과 사업으로 뒷받침을 해주면서 좋은 궁합으로 발전해왔다”고 말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 제일모직 전무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 제일모직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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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회사와 내 브랜드 손잡아
제일모직서 제일 어린 임원이었죠 -요즘은 어디서 주로 영감을 받나? “요새 여자들은 현대의 잔 다르크 같다. 사회나 가정에서 정말 워리어 같은 느낌이 든다. 최근 신입사원 인터뷰를 보더라도 여성 비율이 대단히 많다. 얼마나 힘들게 투쟁하며 여기까지 올라왔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전사라고 하면 ‘명예 남성’을 말하는 건가? “그보다 여성은 여성스러움이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남성과 경쟁하는 사회라면, 경쟁이 되는 대상인 남성을 우호적으로 만들어주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 거다.” -여성성과 남성성은 조작된 개념이란 얘기도 있다. “여성성을 팔라는 얘기가 아니다. 협상장에 또다른 남성스러운 여자가 앉아 있는 것보다는 여성스럽고 매력적인 여성이 앉아 협상을 하는 게 훨씬 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어떤 작품들일지 궁금하다. “워리어들에게 도움이 되는 옷들, 그들한테 힘을 더 느끼게 하는 옷들을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워리어적인 요소가 굉장히 여성스럽고 섹시해 보일 수 있도록. 8월 말 파리컬렉션과 10주년 때도 선보일 거다.” -구호와 제일모직의 결합이 10년됐다. “오는 10월에 10주년 패션쇼를 계획하고 있다. 한동안 (패션쇼를) 국내에서 안 했기 때문에 좀 크게 하려고 생각중이다.” -입사 때 40대 초반이었다. 어리다면 어린 나이 아닌가? “그때 내가 제일 나이 어린 임원이었다. 첫 원탁 회의 때 다들 양복에 넥타이 매고 있는데 들어가서 긴장하고 걱정도 했지만 어찌됐든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목적이었다. 나를 불러준 회사의 이미지, 또 수많은 디자이너들을 위해서라도 좋은 결과의 본보기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업과 디자이너의 가장 행복한 결합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했다. 꼭 좋은 사례가 생겨서 더 많은 기업, 더 많은 디자이너들이 서로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했다. 시스템이 갖춰진 기업과 함께하는 시너지가 분명히 있다. 캐릭터 있는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것들이다.”
구호’는 전위적 실험정신과 옷 형태의 긴장감에 견줘 몸과 옷 사이에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것으로 이름 높다. 올여름을 겨냥해 내놓은 ‘옵티컬 프린트 원피스’. 제일모직 제공
유행 안타고 오래입을 옷 염두에 둬
여성대통령 스타일도 내 머릿속에 -8년 만에 구호 매출이 8배가 됐다. “처음 100억원대의 연매출이 7~8년 만에 800억원대가 됐다. 초기에 회사는 구호의 캐릭터가 강해 매출 상한선을 500억대로 예상했다. 그런데 나는 ‘아니다, 더 해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얘기했다. 지금은 1000억원대를 기대하며 굉장히 노력하고 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제일모직에 들어와 ‘헥사 바이 구호’라는 글로벌 브랜드로 처음 뉴욕에 진출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빨리 좋은 결과를 내서 세계 유명 브랜드 계열에 낄 수 있게끔 만들어가는 것이 목표다.” -캐주얼 브랜드 후부, 여성복 데레쿠니는 최근 접었다. 애정을 쏟아 아쉬움이 있을 텐데. “브랜드는 개인의 필요성이나 인정이 아니라 사업에 도움이 돼야 하고, 포기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좋은 도전, 재밌는 도전이었다면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면 된다. 회사는 이익창출을 해야 하는 조직이고, 효율성을 따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도전정신이 남다른 것 같다. 요리, 영화, 무용, 아트 디렉팅까지. “도전이 없으면 사는 게 너무 재미없지 않을까. 요리는 그냥 취미고, 무대와 영화 작업은 협업처럼 서로 도움이 되고 구호를 다른 방법으로 소개하는 일들이다. 그냥 감사히 열심히 하는 거다.” -아버지가 아들의 미술 공부를 반대했다고 들었다. “정말 고지식한 공무원이셨던지라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법’을 거부한 것인가? “동생이 늘 하는 얘기가 있다. 자기는 항상 아버지를 거역해 야단 맞으면서 결국은 아버지 하라는 대로 하고 있는데, 형인 나는 항상 거부하지 않고 순종적으로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다고….(웃음)” -비결이 뭔가? “나는 강하게 거부하지 않고 조용히 싸운다. 조용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나중에 그들이 스스로 인정하게끔….(웃음)” -일가를 이룬 사람들은 카리스마가 있던데. “사실 그 단어를 별로 안 좋아한다. 강압에 의해 따라하는 일과 이해하고 공감해서 자발적으로 하는 일의 결과는 분명히 다르다. 나는 100%의 결과물을 받아내야 하는 사람이다. 중요한 건 결과물이다.” 도전없는 삶은 재미없다
공무원 아버지 반대에도 미술공부
‘헥사 바이 구호’ 뉴욕 진출때 짜릿 -그래서 신진 디자이너 발굴 프로그램인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심사에서도 신랄한 비평을 하지 않은 건가? “그들은 예전의 내 모습이고 내 미래이기도 하다. 심사에서 떨어지는 것 자체가 비평이고 상처인데 거기에 하나 더 얹어서 신랄한 비판을 하는 것보다 가능성을 얘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국 디자이너에 대해 외국 시장이 관심을 가지나? “한국의 컬렉션에 관심이 대단히 많다. 신진 디자이너에 대한 정보를 달라고 해서 알려주기도 했다. 최범석 디자이너, 정욱준 상무(제일모직) 등 너무들 잘하고 있다.” -한국 패션의 단점을 말하자면? “디자이너들의 발전에 견줘 서울패션위크나 협회가 자리를 못 잡는 것이 아쉽다. 사실 지난주 파리 출장중 파리의상조합 그룸바흐 회장과 만났다. 그분이 ‘한국과 대화하고 싶지만 콘택트 포인트가 자꾸 바뀌어 쉽지 않다’고 조심스럽게 얘기하더라. 중국만 해도 프랑스와 긴밀한 협업을 한다.” -뭐가 문제일까? “더 전문적이면 좋겠다. 일관성 있는 제도, 더 많은 전문가의 참여, 더 전문적인 진행이 필요하다. 서울패션위크의 경우 ‘자국의 잔치’로 끝난다는 생각이다. 사실 유명 패션위크는 패션산업 전문가들을 위한 것이지 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 부분도 재정립돼야 한다. 서울시와 협회와의 관계 속에서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한번도 대놓고 이런 얘길 안 했지만, 아쉬움이 계속 있다.” -한국 패션의 장점은 뭘까? “우리 패션 흐름은 다른 나라에 견줘 대단히 신속한데, 최근 불과 3~5년 사이 캐릭터가 매우 다양해져 장점으로 보인다. 에스피에이(SPA, 제조·유통 일괄 의류회사) 브랜드 때문에 패션 양극화가 됐다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브랜드는 가격 경쟁이 아니면 독창성으로 싸우는 거다. 자기만의 개성을 살리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여성 대통령의 스타일을 제안할 기회가 생긴다면? “만약 그런 제안이 온다면 대단히 영광일 것 같다. 사실 머릿속으로 생각해놓은 것은 있다. 나라면 어떤 걸 제안하는 게 정말 옳은 걸까 그런 생각은 항상 해오고 있다. 모든 디자이너들이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어려운 작업일 것 같다.”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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