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을 그린 윤태호 작가, 영화 <변호인>을 만든 양우석 감독, <열혈강호>의 전극진 작가, <트레이스> 고영훈 작가 등 15명 한국 웹툰 작가들이 조합을 만들어 미국 만화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이들이 그린 만화들은 내년 상반기부터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로 꼽히는 온라인 미디어 <허핑턴 포스트>를 통해 허핑턴 포스트 게재를 추진중이다. 지난 25일 이들 작가들은 자본금을 직접 출자해 작가조합 성격의 ㈜투니온 주주총회를 가졌다. 투니온은 또 외국에 한국 웹툰을 배급하는 글로벌 웹툰 서비스 회사 ㈜롤링스토리를 만들어 직접 해외 저작권을 관리하고 독자적인 앱을 통해서도 웹툰을 해외 제공할 예정이다.
“한국인들에게 ‘창문밖의 세상을 응시하라’는 마블 원작자 스탠리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시비(C.B.) 세블스키 마블엔터테인먼트 부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디지털 만화 형식에서는 웹툰이라는 콘텐츠 형식을 가진 한국이 미국의 ‘창문밖 세상’인 셈이다. 시장 규모 1조원으로 추산되는 미국 만화시장은 마블과 디시 코믹스라는 두 거대 출판 만화 회사가 양분해 왔다. ‘일본 망가(만화)’를 세계에 알리곤 도산했던 도쿄팝을 제외하고는 외국 만화가 북미 시장에 제대로 진출한 사례도 없다. 양우석 감독은 11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변호인> 감독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웹툰 <스틸 레인>과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을 쓴 웹툰 스토리 작가기도 하다. 웹툰계 내부 실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양감독은 이번 웹툰 작가 조합의 산파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우석 감독은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 웹툰이라는 포맷이 가진 경쟁력이 분명히 있다. 게다가 북미권 독자들에게 익숙한 허핑턴 포스트 매체를 통해 제공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판단했다”며 “처음엔 허핑턴 포스트를 통해 무료 서비스되다가 좀더 편리하게 한국 웹툰을 접하고 싶은 사람은 자체 개발 앱을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부분 유료화 모델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고 설명했다. 윤태호 작가는 “지금 웹툰 역사의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론 모든 가능성을 모색해야 하는 시기로 판단했다. 작가들이 외국 시장을 직접 두드린다는 사실이 내겐 중요했다. 번역과 마케팅 부담을 덜고 작가들이 책임의식을 갖고 미국 진출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15명 작가들 중에는 마블과 손잡고 <어벤져스>를 한국형 웹툰 형식으로 만든 <어벤져스: 일렉트릭 레인>을 그렸던 고영훈 작가, 일본에서 <베리타스>를 연재했던 김동훈 작가 등 외국시장 진출 경험이 있는 작가들이 두루 포진해 있다. <피크> <슈퍼우먼>을 그린 임강혁 작가도 마블에서 작업 제안을 받은 일이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박희정, 기선, 김보통, 정연식, 김태관, 임강혁, 이유정, 김태건, 이영곤 작가 등 액션부터 에세이, 순정물까지 장르와 연령도 다양하다. 레진 코믹스에서 <파트너스>를 연재하며 투니온에 주주로 참여한 현재권 작가는 “지금까지는 주로 한국 웹툰을 그 나라 말에 맞게 번역하는 것을 해외 진출이라고 불렀는데 해외에 먹힐 작품을 정확하게 큐레이션하고 영상화 가능성까지도 내다보며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미국 미디어와 관련 회사를 이용해 속도를 낼 것”이라며 “북미 시장에서 한국 드라마 시청자를 1000만명, 만화 애호가를 500만명으로 보는데 이중 일정 독자만 한국 웹툰으로 끌어온다고 해도 그 영향력은 대단히 클 것”이라고 내다본다.
투니온 쪽은 “국내 콘텐츠의 해외진출에 도움이 된다면, 디지털 전송권 등을 독점적으로 운용하지 않고 국내외의 사업자들과 협력적으로 일해나갈 것”이라며 “국내 주요 웹툰 포털쪽과 해외 진출 협력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고도 전했다.
글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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