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서울 낙원상가 허리우드극장을 지키던 창백한 ‘씨네필’들은 어디로 갔을까? 홍대 앞 음반가게 거리와 대학로 다방을 헤매던 ‘뮤직 피플’들은 어디 있을까? 작고 오래된 ‘문화 성지’들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장르 도서관을 표방하는 음악·영화 라이브러리가 나왔다. 5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언더스테이지와 서울 중구 명동 씨지브이(CGV) 씨네라이브러리가 연이어 문을 열었다.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수집 절제…중요 음반만 선별
음악도서 열람·엘피판 감상도
지하는 공연장·연습실로 채워 명동 CGV ‘씨네라이브러리’
상영관에 1만여권 책 ‘빽빽’
콘티북·그래픽노블 등 다양
1인당 2시간…필기구도 제한 ■ 뮤직라이브러리+언더스테이지
19일 이태원거리 한복판에 공사중이었던 건물이 포장을 벗자 꽉 찬 건물 대신 뼈대만 있는 듯 보이는 2층 도서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용적률 200%의 값비싼 도심 땅에 80%로 지어진 건물, 음반 1만장, 음악도서 3000권으로 공간과 자료를 지극히 절제한 참으로 신기한 도서관이다.
현대카드의 3번째 도서관인 이곳은 738.10㎡(223.27평) 땅에서 1층 230㎡(70평) 공간을 광장처럼 비워버렸다. 연세대 건축과 최문규 교수는 ‘뮤직라이브러리+언더스테이지’를 지하 2층 공연장과 지하 1층 연습실은 꽉 찬 공간, 땅 위 도서관은 빈 공간으로 설계했다. “공유해야 의미가 생기는 게 음악인데, 공유의 비결은 단순하다. 내 것을 덜 지으면 된다”는 게 최 교수 생각이다. 도서관 자료 수집을 맡은 스콧 마우, 디제이 소울스케이프, 오이시 하지메 등 큐레이터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모든 음악을 디지털로 들을 수 있는 시대에 굳이 방대한 자료를 갖추려 하기보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음악만을 선별하려 했다는 그들은 지난 2년 동안 11개 나라를 돌며 엘피판을 수집해왔다. 2층 도서관 턴테이블 앞에서 만난 디제이 소울스케이프는 “말하자면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 베스트 100’ 같은 수집을 하지 않으려 했다. 음반 수집가나 비평가들 사이에서 이미 의미있는 음반으로 검증된 것만 질서있게 모아둔 이곳은 음악 교과서 책장 같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도서관 한쪽 벽에 가득 꽂힌 음반은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를 포괄하고 있지만 음악사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던 1960~70년대 비중이 가장 높다.
특별히 희귀한 음반을 전시해둔 다른 편 벽에는 1977년에 나온 섹스 피스톨스의 <갓 세이브 더 퀸>, 비틀스 멤버들이 직접 녹음한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등 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앨범들이 걸려 있다. 디제이 소울스케이프는 지난해 일본 오사카 한 중고 레코드숍에서 웰던 어바인의 <리버레이티드 브러더>(1972)를 발견했을 때 환호했다. 그는 “미국 시민권 운동에서 불렸던 노래들을 직접 작사·작곡한 웰던 어바인은 많은 히트곡을 만들었지만 정작 자신의 음반은 작은 레이블에서 소량 발매한 탓에 거의 남아 있지 않았는데, 기적적으로 찾았다. 여기 그런 사연들이 없는 판이 없다”고 했다.
2층 내부 계단을 오르면 다락처럼 꾸며진 서가가 있다. 책과 한국 음반을 정리해둔 곳이다. 음악매거진 <롤링스톤> 창간호부터 최신호까지 1161권을 모두 모아둔 칸도 여기 있다. 국내 음악가들의 엘피판은 300여장, 우리말 음악 서적은 100여권으로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데이비드 보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2층 아래쪽 서가에서 <히어로즈>, <로> 같은 ‘베를린 시리즈’ 음반들을 찾아 도서관에 있는 턴테이블에 올리고 마음껏 들어볼 수 있다. 그 책장 근처에 600달러로 만들었다는 너바나의 데뷔 앨범 <블리치>나 킹 크림슨의 데뷔 앨범도 있다.
지하 2층 공연장에선 다양한 공연을 즐길 수 있다. 22~24일 김창완·전인권·신중현이 오픈 공연을 벌였다. 오는 29~30일엔 윤종신이 기획한 에디킴의 공연이 열린다. 앞으로 공연장에선 유희열, 윤종신, 디제이 소울스케이프, 김수로가 컬처 큐레이터를 맡아 마치 음반을 프로듀싱하듯, 파티 때 디제잉하듯, 뮤지컬을 연출하듯 공연을 기획할 예정이라고 했다. 디제이 소울스케이프는 “미디어 퍼포먼스나 이야기 콘서트처럼 음악을 주제로 한 다양한 형태의 행사를 기획중”이라며 “가장 큰 꿈은 세계적인 뮤지션을, 코앞에서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이 공연장에 데려오는 것”이라고 했다.
이남호 교수(고려대 국어교육과)는 자신의 책 <보르헤스 만나러 가는 길>에서 도서관을 “물리적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나 정신적 공간은 거의 무한한 곳”이라고 예찬한 일이 있다. 한번에 20명만 들어갈 수 있는 이 음악 도서관도 소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넘어서서 밖으로 뻗어나갈 수 있을까? 도서관을 설계한 최문규 교수는 “해가 질 때 1층 광장에 앉아서 버스킹 연주를 들으며 맥주를 마셔볼 것”을 권한다. 사람이 지나가는 길보다 낮게 만든 1층 현관, 그곳이 이 도서관에서 음악이 모이는 곳이다. 공연장은 입장 제한이 없지만 도서관은 현대카드 회원만 가능하다.
■ 씨네라이브러리
중국 관광객 등으로 골목마다 사람이 넘쳐나는 서울 명동거리엔 영화전문도서관 ‘씨네라이브러리’가 터를 잡았다. 씨지브이 명동역점 10층은 지난 1일 영화 관련 책으로 3면을 가득 채운 도서관으로 변신했다. 한쪽 면은 애초 상영관 모습 그대로 스크린과 무대가 있고, 객석으로 쓰였던 나머지 3개 벽면은 1만여권의 책이 천장까지 빼곡한 열람석이 된 것이다. 일반 출판이 안 되는 영화 시나리오와 콘티북 등 실제 영화제작에 쓰였던 자료는 물론 문학과 그래픽노블, 인문학, 건축과 미술 등 예술 관련 서적도 많다. 매일 오전 11시에 문을 열고, 평일은 오후 7시, 주말에는 오후 9시까지 열람이 허용된다. 100석 안팎의 좌석을 갖췄지만, 쾌적한 이용 환경을 위해 50명 정도만 들인다. 이용자가 많으면 번호표를 받고 기다려야 한다. 1인당 이용시간은 2시간으로 한정돼 있다. 영화 상영시간과 비슷하게 맞춘 것이다. 노트북과 필기구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다만, 요청할 경우 이곳에서 메모지와 필기구를 제공해준다. 씨지브이 관계자는 “영화를 보기 전후에 도서관을 찾아 관련 책을 찾아보는 이용자가 많다”고 말했다. 다음달 말까지 진행되는 ‘영화인 100인의 내 인생의 책’ 기획전에서 영화인들이 추천한 책을 만날 수 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배우 오달수), <스탠리 큐브릭 아카이브>(외서·봉준호) 등이 눈에 들어온다.
남은주 안창현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현대카드·씨지브이 제공
수집 절제…중요 음반만 선별
음악도서 열람·엘피판 감상도
지하는 공연장·연습실로 채워 명동 CGV ‘씨네라이브러리’
상영관에 1만여권 책 ‘빽빽’
콘티북·그래픽노블 등 다양
1인당 2시간…필기구도 제한 ■ 뮤직라이브러리+언더스테이지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에서 전시된 음반들을 둘러보는 사람들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2층 도서관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지하 1층 스튜디오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지하 2층 공연장
CGV ‘씨네라이브러리’의 도서관 전경
CGV ‘씨네라이브러리’의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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