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디엠지 프로젝트’가 올해 4회째를 맞아 ‘동송세월’이라는 주제로 철원군 동송읍에서 열리고 있다. 동네 약국에선 군인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준다는 ‘군심환’(왼쪽)을 팔고, 길거리 공중전화 부스는 남북한 경비초소(가운데)로 변신했다. 또 동네 피시방에서 워게임에 몰두하는 군인들의 모습을 통해 요즘 젊은 군인들이 느끼는 남북 대결과 전쟁의 의미를 풍자(오른쪽)한다. 23일까지 읍내 곳곳에서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2015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이 군심환요, 물론 ‘야메’입니다. 제가 경동시장에서 산 약재를 꿀과 버무리고 금박을 입혀 만들었죠. 효능도 검증된 바 없어요. 약 상자에도 공을 들이다 보니, 원가가 좀…. 3천원에 팔기는 그렇고, 만원씩 받고 있어요.”
지난 13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금학로에 자리한 성심약국. 흰색 가운을 걸친 정원연은 군인용 우황청심환인 ‘군심환’을 팔고 있다. 생김새만 보면 최고급이다. 나전을 입힌 듯한 약 상자는 더 고급스럽다.
해방 직후 북한땅이었던 ‘철원 동송’
분단 상흔 여전한 마을 무대로
냉전 이데올로기·군사문화 짚어
군화에 묻은 흙 모아 피워낸 들꽃
동네텃밭은 DMZ 생태관광지 변신 “그런데요. 식약처에서 단속 나오면 걸릴지 모르니까 빨리~. 사실 전 약사가 아니거든요. 친구 약국에서 잠시. 옷도 빌려 입고.” 버젓이, 군인들을 겨냥해 1만원짜리 알약을 팔면서 ‘식약처 미등록’이라 명시하고, 야메라고 떠벌리는 정원연은 사실 예술가다. “군에서 죽었다고 하면, 자살인지 맞아죽었는지 우린 알 수가 없죠? 군인들을 조사해보니 엄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스트레스가 제일 크대요, 글쎄.” 예술치료 프로젝트를 주로 해온 그가 동송읍에서 마주친 군인들의 고민스런 모습을 보고 만든 게 군심환이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사회와 격리된 군대에서 한 청년이 군인이 되어가며 겪을 수 있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치료하려 만든 약’이란다. 인근 커피숍 더착한커피 입구엔 채송화, 천일홍 등이 핀 자그마한 화분 두개가 놓여있다. 김이박 작가의 ‘이사하는 정원-DMZ’이다. 작가가 군인들 출입이 잦은 여관, 햄버거집, 피시방 등 동송읍 20개 업소를 돌며 두 달 동안 비무장지대에 근무하는 군인들의 군화에 묻은 흙을 모아 피워낸 들꽃이다. “식물은 남북을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오간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철원군 동송읍은 언뜻 평범한 농촌 마을처럼 보인다. 하지만 분단의 상흔이 여전하다. 해방 직후엔 북한 영토였고, 철원 노동당사 등 북한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주민 상당수는 비무장지대(DMZ) 안 논밭을 경작하러 매일 민통선을 드나들고, 군인들이 지역 경제를 떠받친다. 동송읍에서 우리 안에 뿌리내린 냉전 이데올로기와 군사문화를 짚어보는 현대미술 난장이 한창이다. 2012년 시작해 4회째를 맞는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로, 올해 주제는 ‘동송세월’. 철원 동송읍과 함께해온 시간을 통해 분단 현실을 성찰하는 기획이다. 카페, 옷가게, 건강원, 방앗간, 여관방, 약국, 복덕방, 미술학원, 사진관, 핸드폰 판매 대리점, 버스터미널, 성당과 교회는 물론 경찰 치안센터와 옛 군장병 여행안내소까지 마을 전체가 전시장이다. 시외버스터미널 인근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공중전화 부스는 남북한 경계초소로 변신했다. 이재호 작가의 ‘위장-공중전화’다. 평소 휴가 나온 군인들이 친구나 가족과 연락하는 공중전화를 케이블 타이를 촘촘하게 엮은 군용 위장막으로 덮어 남북한 초소가 마주한 비무장지대에서 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콘셉트다. 들깻잎 무성한 텃밭과 도로를 가르는 철망엔 ‘동송 DMZ 생태 관광지’라는 표식이 자리잡았다. 철망에 걸린 망원경을 통해 푸른 들깨밭 너머에 위치한 슬레이트 집 담벼락을 살피면 발목보호 검독수리, 신경쇠부엉이, 방한털 산양노루, 넋두리 할미꽃, 북향 금강초롱꽃, 탄피 물고기, 삼팔따라쥐, 산불레이더 땅굴박쥐, 지뢰탐지초 고비 등이 눈에 들어온다. 인근 비무장지대 안에 서식하는 희귀 동식물 앞에 분단현실을 풍자한 수식어를 붙였다. 동네 텃밭을 실제 비무장지대 생태관광지와 유사하게 변형해 우리 안에 깊이 뿌리내린 분단의 의미를 곱씹는 강현아 작가의 작품이다. 외국 작가들의 작품도 번뜩인다. 특히 동송농협 지하에 설치된 프랑스 작가 알랭 드클레르크의 영상작품 ‘헤드쿼터’는 이방인의 눈에 비친 우리 현실이다. 영상 속 카메라는 비무장지대의 참호를 숨가쁘게 따라 오른 뒤 어둑한 지하 벙커를 지나며 긴장감을 더한다. 곧 수많은 군인들이 바삐 움직이고 병사들이 컴퓨터 앞에서 ‘워게임’을 벌이는 장면을 클로즈업한다. 순간 관객은 지하 벙커 속 전쟁사령부를 떠올린다. 하지만 작가는 “휴가 나온 군인들이 동송읍 피시방에서 게임하는 장면”이라며 웃음짓는다. “그동안 삐라나 땅굴 같은 광기와 폭력의 증거를 수없이 봤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작가는 “이러다 보니 군대에서 보내는 시간은 쓸데없게 여겨지고 어린 병사들은 몹시 지루해 보인다. 오히려 그들은 휴가를 받아 사회로 나와 피시방으로 달려가서야 비로소 진짜 전쟁을 치른다”고 말한다. 모두 49팀이 참여한 전시는 동송읍 금학로 일대 27곳에서 오는 23일까지 열린다. 이후 전시작품은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로 옮겨져 11월27일까지 공개된다. 철원/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분단 상흔 여전한 마을 무대로
냉전 이데올로기·군사문화 짚어
군화에 묻은 흙 모아 피워낸 들꽃
동네텃밭은 DMZ 생태관광지 변신 “그런데요. 식약처에서 단속 나오면 걸릴지 모르니까 빨리~. 사실 전 약사가 아니거든요. 친구 약국에서 잠시. 옷도 빌려 입고.” 버젓이, 군인들을 겨냥해 1만원짜리 알약을 팔면서 ‘식약처 미등록’이라 명시하고, 야메라고 떠벌리는 정원연은 사실 예술가다. “군에서 죽었다고 하면, 자살인지 맞아죽었는지 우린 알 수가 없죠? 군인들을 조사해보니 엄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스트레스가 제일 크대요, 글쎄.” 예술치료 프로젝트를 주로 해온 그가 동송읍에서 마주친 군인들의 고민스런 모습을 보고 만든 게 군심환이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사회와 격리된 군대에서 한 청년이 군인이 되어가며 겪을 수 있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치료하려 만든 약’이란다. 인근 커피숍 더착한커피 입구엔 채송화, 천일홍 등이 핀 자그마한 화분 두개가 놓여있다. 김이박 작가의 ‘이사하는 정원-DMZ’이다. 작가가 군인들 출입이 잦은 여관, 햄버거집, 피시방 등 동송읍 20개 업소를 돌며 두 달 동안 비무장지대에 근무하는 군인들의 군화에 묻은 흙을 모아 피워낸 들꽃이다. “식물은 남북을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오간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철원군 동송읍은 언뜻 평범한 농촌 마을처럼 보인다. 하지만 분단의 상흔이 여전하다. 해방 직후엔 북한 영토였고, 철원 노동당사 등 북한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주민 상당수는 비무장지대(DMZ) 안 논밭을 경작하러 매일 민통선을 드나들고, 군인들이 지역 경제를 떠받친다. 동송읍에서 우리 안에 뿌리내린 냉전 이데올로기와 군사문화를 짚어보는 현대미술 난장이 한창이다. 2012년 시작해 4회째를 맞는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로, 올해 주제는 ‘동송세월’. 철원 동송읍과 함께해온 시간을 통해 분단 현실을 성찰하는 기획이다. 카페, 옷가게, 건강원, 방앗간, 여관방, 약국, 복덕방, 미술학원, 사진관, 핸드폰 판매 대리점, 버스터미널, 성당과 교회는 물론 경찰 치안센터와 옛 군장병 여행안내소까지 마을 전체가 전시장이다. 시외버스터미널 인근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공중전화 부스는 남북한 경계초소로 변신했다. 이재호 작가의 ‘위장-공중전화’다. 평소 휴가 나온 군인들이 친구나 가족과 연락하는 공중전화를 케이블 타이를 촘촘하게 엮은 군용 위장막으로 덮어 남북한 초소가 마주한 비무장지대에서 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콘셉트다. 들깻잎 무성한 텃밭과 도로를 가르는 철망엔 ‘동송 DMZ 생태 관광지’라는 표식이 자리잡았다. 철망에 걸린 망원경을 통해 푸른 들깨밭 너머에 위치한 슬레이트 집 담벼락을 살피면 발목보호 검독수리, 신경쇠부엉이, 방한털 산양노루, 넋두리 할미꽃, 북향 금강초롱꽃, 탄피 물고기, 삼팔따라쥐, 산불레이더 땅굴박쥐, 지뢰탐지초 고비 등이 눈에 들어온다. 인근 비무장지대 안에 서식하는 희귀 동식물 앞에 분단현실을 풍자한 수식어를 붙였다. 동네 텃밭을 실제 비무장지대 생태관광지와 유사하게 변형해 우리 안에 깊이 뿌리내린 분단의 의미를 곱씹는 강현아 작가의 작품이다. 외국 작가들의 작품도 번뜩인다. 특히 동송농협 지하에 설치된 프랑스 작가 알랭 드클레르크의 영상작품 ‘헤드쿼터’는 이방인의 눈에 비친 우리 현실이다. 영상 속 카메라는 비무장지대의 참호를 숨가쁘게 따라 오른 뒤 어둑한 지하 벙커를 지나며 긴장감을 더한다. 곧 수많은 군인들이 바삐 움직이고 병사들이 컴퓨터 앞에서 ‘워게임’을 벌이는 장면을 클로즈업한다. 순간 관객은 지하 벙커 속 전쟁사령부를 떠올린다. 하지만 작가는 “휴가 나온 군인들이 동송읍 피시방에서 게임하는 장면”이라며 웃음짓는다. “그동안 삐라나 땅굴 같은 광기와 폭력의 증거를 수없이 봤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작가는 “이러다 보니 군대에서 보내는 시간은 쓸데없게 여겨지고 어린 병사들은 몹시 지루해 보인다. 오히려 그들은 휴가를 받아 사회로 나와 피시방으로 달려가서야 비로소 진짜 전쟁을 치른다”고 말한다. 모두 49팀이 참여한 전시는 동송읍 금학로 일대 27곳에서 오는 23일까지 열린다. 이후 전시작품은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로 옮겨져 11월27일까지 공개된다. 철원/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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