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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컴퓨터 앞 몽당연필 한움큼…그것은 36년 나의 감각

등록 2015-09-30 19:01수정 2015-10-21 20:32

만화가의 작업실 ① 이현세
산고의 공간, 머릿속 상상이 밖으로 태어나는 곳. 거기에 보태어 만화가의 작업실은 오랜 세월 가난이 동거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만화의 주력이 웹툰이 되면서 가난하고 폐쇄적이었던 만화가의 작업실 풍경도 바뀌고 있다. 작업실은 주인이 어떤 일을 하는지 증언한다. 대본소 시절을 대표하는 작가로 출발해 이제는 웹툰에 도전하는 만화가 이현세의 작업실을 찾아 지금 시대 만화의 풍경을 살펴봤다.

1979년 월남전을 다룬 <저 강은 알고있다>로 데뷔했으니 만화 인생 36년을 넘겼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작업실로 옮긴지도 올해로 20년이다. 그런데 뜻밖에 만화가 이현세의 작업실은 차린지 얼마 안된 회사처럼 보였다. 그를 스타 작가로 만든 <공포의 외인구단> 시리즈부터 <지옥의 링> <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 등 그의 대표작들이 진열된 입구로 들어서면 함께 일하는 배경 그림 작가 2~3명의 자리가 있고 그 옆 방이 이현세 작가의 작업실이다. 일간지 2곳에 동시 연재하면서 단행본까지 만들던 시절엔 지하에 열댓명 작가들이 밥먹고 잠자는 공간이 있고 꼭대기 옥상엔 이현세의 작업실이 따로 있었다. 지하부터 옥상까지 ‘만화 공장’이었던 이곳은 만화산업이 줄어들면서 작업실만 남기고 단출해졌다.

웹툰에 도전하는 작가 이현세는 여전히 연필과 종이라는 단순한 연장으로 우직하게 작업하는 스타일을 고수한다. 제대로 뜻을 펴지 못했던 <천국의 신화>를 환갑을 남긴 나이에 다시 그리며 못다 한 고대 신화를 완성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사진 오성훈 제공
웹툰에 도전하는 작가 이현세는 여전히 연필과 종이라는 단순한 연장으로 우직하게 작업하는 스타일을 고수한다. 제대로 뜻을 펴지 못했던 <천국의 신화>를 환갑을 남긴 나이에 다시 그리며 못다 한 고대 신화를 완성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사진 오성훈 제공
종이를 감은 몽당연필들은 손 느낌을 중시하는 그가 애용하는 도구다. 사진 오성훈 제공
종이를 감은 몽당연필들은 손 느낌을 중시하는 그가 애용하는 도구다. 사진 오성훈 제공

개포동 작업실에서만 20년
한땐 건물 전체가 ‘만화공장’
산업 줄면서 공간도 줄어

‘천국의 신화’ 웹툰 연재 도전
커다란 모니터는 최종확인용
연필 스케치 뒤 플러스펜 콘티
‘진수무향’ 족자 작품의 길일까

이현세 작가의 책상엔 커다란 모니터가 있지만 컴퓨터로 그리지는 않는다. 최종 그림을 확인할 때만 쓴다. 그의 진짜 연장은 책상에 놓인 한 웅큼의 몽당연필이다. 짧은 연필들을 모두 종이로 감아 끝까지 쓰는 것은 오래된 습관이다. “가난한 습작시절 외국 연필 한 자루 구하면 정말 귀하게 썼다. 몽당연필까지 버리지를 못했던 습관이 남아 있다. 요즘 웹툰 작가들은 장비 다루는 것도 실력이라고 하던데 나는 그저 오랫동안 익힌 감각에 의지한다.” 종이를 감은 연필로 스케치를 하고 콘티는 플러스펜으로 그리는데 어느쪽이나 정교하기 짝이 없다. 스토리, 작화, 배경의 분업을 뜻하는 ‘대본소 시스템’이 ‘작가 정신 부재’를 말하는 것인양 쓰이기도 하지만 그는 남의 손에 작품 마무리를 맡겨야 하니 스케치는 바로 출판해도 될 만큼 정교하게 그리고 콘티는 일일이 활자를 찍어 붙이는 습관을 키웠다고 한다. “인쇄를 해도 될 만큼 깨끗한 스케치, 오타 하나 없는 대사에 편집증같은 집착이 있다”는 그는 실제로 펜선없이 스케치위에 채색한 <창천수호위> 같은 만화책을 내기도 했다. 작업실 한켠에는 사실적이고 정교한 그림을 추구하는 일본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의 책들이 꽂혀 있었다.

이현세 작가가 그린 콘티 원화. 사진 오성훈 제공
이현세 작가가 그린 콘티 원화. 사진 오성훈 제공
한때 열댓명의 만화가가 협업하는 만화공장 같던 작업실은 지금은 2~3명의 배경그림작가들이 지키는 소박한 공간이 됐다. 사진 오성훈 제공
한때 열댓명의 만화가가 협업하는 만화공장 같던 작업실은 지금은 2~3명의 배경그림작가들이 지키는 소박한 공간이 됐다. 사진 오성훈 제공
다니구치 지로를 좋아하는 작가는 이제 몽당연필을 들고 웹툰으로 간다. 지난 7월15일부터 네이버웹툰으로 <천국의 신화>가 연재되고 있으며 내년 1월부터는 미발표분이 새롭게 웹툰으로 그려진다. 1997년 첫 출간된 <천국의 신화>는 ‘창조신화’ 부분이 음란물 판정을 받아 연재가 중단되고 오랜 법정 공방에 시달리다가 작가가 2009년 5부 47권으로 서둘러 완결했던 작품이다. 작가는 12월까지 네이버 웹툰을 통해 이미 발표한 47권 분량의 만화를 주4회 공개하고 그 이후엔 6부를 새롭게 시작할 계획이다. “<천국의 신화>를 생각하면 아릿한 앙금같은 게 있다. 43살에 100권 분량의 고대사 이야기를 펴낼 계획을 세웠고, 50살에 시작해 55살에 5부로 끝냈다. 61살에 이제 다시 내가 하고 싶었던 일로 돌아가려고 한다.” 첫번째 웹툰 창작으로 <천국의 신화>를 꺼내든 이유다. 이미 나온 작품은 ‘19금’이지만 6부부터는 모든 연령이 볼 수 있다.  

“새로운 도전이다. 내가 부드러운 남자를 그릴 수는 없겠지만 그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로망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저 멀리 오천년 전으로 도망가서 웹툰을 그리려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까치를 그리던 시절 그때는 남자들이 이렇게 거세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작가의 작업실 한 켠에는 ‘진수무향’(참된 물은 향기가 없다)이라는 글씨를 담은 족자가 걸려 있는데 과연 이 작가가 추구하는 작품 스타일과 닮은 듯도 하다. 작가는 요즘 한 콘텐츠회사에서 만든 이야기를 초고 삼아 고조선 멸망을 다룬 6부의 만화 스토리를 각색하는 중이다. 그의 작업실은 새로운 작업으로 요즘 다시 북적이고 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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