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쇼박스(내부자들)
미완의 복수, 어떻게 끝날까
영화 <내부자들>과 드라마 <송곳>. 권력과 자본의 속성을 해부한 만화들이 영상의 옷을 입고 극장과 안방에서 더 넓은 관객을 만난다. 영상과 만화의 어법은 다르다. 게다가 실제 사건들과 이어지는 만화 속 날카로운 현실감을 막대한 자본이 투여되는 상업 영상물에서도 살릴 수 있을까. 만화 원작과 각색된 작품의 다르고도 같은 점을 짚어봤다.
“정의? 대한민국에서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있기는 할라나”
■ 새롭게 등장한 권력의 ‘내부자’ <미생>의 윤태호 작가는 2010년 11월9일부터 2012년 8월20일까지 <한겨레> 온라인사이트에서 만화 <내부자들>을 연재했지만 완결을 맺지 못하고 중단했다. 미완결 만화를 원작으로 삼았기 때문에 영화의 서사는 상당부분 새롭게 쓰여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영화 후반 30분은 영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결말이다.
윤태호 작가가 그린 만화에서 마지막 편, 마지막 대사는 의미심장하다. “(방법은) 딱 하나… 기업이나 정치인의 내부자들을 꺼내오는 수밖에.” 영화는 원작에 없던 ‘내부자’로 검사 우장훈(조승우)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내부자들>은 유력한 대통령 후보(이경영)와 재벌회장(김홍파), 어떤 보수적인 신문의 논설주간(백윤식)의 뒷거래를 통해 기업과 정치, 언론의 유착을 그린다. 깡패(이병헌)가 그 판에 끼어들었다가 호되게 당하고 복수를 계획한다는 내용이다.
‘미생’ 윤태호 작가 미완의 작품
영화 후반 30분은 새로운 결말
권력 내부로부터의 균열 주목
원작에선 우연히 목격자가 된 한 다큐 사진작가라는 외부자가 있었다면 영화에선 출세를 원하는 검사와 더 많은 떡고물을 바라는 깡패가 권력 내부로부터 균열을 낸다. 게다가 영화 속 깡패는 그리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지만 가장 배운 것이 적고 가장 잃을 것이 없는 탓에 입만 열면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보다 훨씬 강단있고 유능하다.
만화 <내부자들>의 제일가는 미덕은 권력 내부의 속성에 대한 냉정하고 정확한 묘사였다. “우리의 목적은 다른 편의 정치적 혐오를 유발하는데 있다.” 마치 현실의 권력 ‘이너 서클’에서 나온 듯한 언어들은 영상에서도 살아날 수 있을까? 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우민호 감독은 “관념적인 어휘와 시사적 표현은 덜어내고 원작이 갖는 에너지만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정치란 큰 의미론 생존, 나의 생존이다” 같은 만화의 관념어들은 “정의? 대한민국에서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있기는 할라나”처럼 속되고도 쉬운 말로 다시 쓰여졌다. 그러나 정치판에서 저질러지는 범죄들에 대해 보수언론이라는 ‘큰 입’에게 적극적으로 가담한 책임을 묻는다는 점은 원작과 영화 모두 똑같다. 두 작품 모두 이렇게 말한다. “말은 권력이고, 힘이야.”
더욱 벼린 송곳, 양심을 찌른다
■ 우리는 모두 제3자, ‘외부자들’ 최규석의 <송곳>은 본격 노동만화다. 오랫동안 노동운동 판에서 잔뼈가 굵은 부진노동상담소 구고신 소장(안내상)과 푸르미마트의 불합리 노동을 고발하고 나서는 ‘송곳’ 이수인 과장(지현우)이 주인공이다.
‘본격 노동만화’가 종편 드라마로
강도조절 없이 만화와 100% 일치
여성노동자들 활력 도는 캐릭터로
둘의 노동운동은 ‘불가피’한 사정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당신 일이 아니라며 노조 조직에 나서지 말라는 구 소장에게 이 과장은 “소장님도 자기 싸움 아니잖습니까?”라고 말한다. 둘은 이전의 노동악법 조항 ‘제3자 개입 금지’에 따르면 ‘제3자’이고 ‘외부자들’인 셈이다. 네이버에서 연재되고 있는 만화(현재 시즌4 연재 중)가 ‘본격 노동드라마’화한 곳은 ‘종편’(종합편성채널) <제이티비시>다.(김석윤 연출, 토·일 밤 9시40분)
‘강도’가 약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는 내려놓아도 된다. 만화와 드라마는 100% 싱크로율을 노린다. 만화가 살아나 그대로 움직이는 느낌이다. 내레이션도 토씨 하나 바뀌지 않았고, 구 소장의 등장, 우화 같은 삽입장면도 똑같다. 이수인에게 충고하는 동료 과장이 턱에 손을 고인 것도 그대로 재연된다.
작고 사소한 변화는 있다.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만화에서는 2부 초반 등장하는 구절이 드라마에선 앞부분에 배치되었다. 주인공 두 명이 드디어 노조를 본격적으로 조직하는 장면은 만화에서는 한 장면이었는데 드라마에서는 세 장면으로 나뉜다.
재연의 틈새에 드라마는 몇몇의 캐릭터를 새롭게 부려놓았다. 주로 ‘여자들’이다. 두 명이나 되는 손자를 키우는 동엽이 엄마, 화장 때문에 과장한테 항상 지적받는 정민씨, 노동연구소에 월급 안 받고 일하는 노란 머리의 소진씨 등, 얼굴만 있던 여자들이 사연을 갖게 됐다. ‘여자들’은 이 과장의 연애 뒷담화를 하고 외모 품평회를 한다. 만화의 검정색이 텔레비전의 천연색이 된 것처럼 드라마에 활력이 돈다.
드라마의 속도는 빠르다. 드라마 4회에서 만화 2부를 거의 따라잡았다. 만화는 네이버에서 현재 4부가 연재 중이다. 제작사 관계자는 “최규석 작가와 의논해 결론을 맞췄다”고 이야기한다. 후반부로 가면 드라마로 만화를 먼저 보게 되는 역전이 벌어지게 된다.
남은주 구둘래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쇼박스(내부자들)
영화 후반 30분은 새로운 결말
권력 내부로부터의 균열 주목
사진 쇼박스(내부자들)
웹툰 ‘송곳‘·유한회사 문전사 송곳
강도조절 없이 만화와 100% 일치
여성노동자들 활력 도는 캐릭터로
(주)씨그널엔터테인먼트(송곳)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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