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지는 만화책 몸값
지난 7월1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열람대에 처음으로 만화책이 놓였다.
그 전까지 도서관에는 아동만화만 나와 있고 성인만화는 장서 보관소인 수장고에 갇혀 있었다. 만화대본소 영업을 방해하고 도서관 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유로 어른들은 도서관에서 만화를 볼 수 없었다.
만화책의 처지가 달라지고 있다. 1965년부터 발간된 도서를 모두 보관해온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한 만화책 18만8424권과 39종 만화잡지 중 일부 보관용을 제외한 만화책들이 일반 열람 대상이 됐다. 13일 문을 여는 서울 ‘은평구립 구산동도서관마을’도 도서관 면적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3개층을 만화열람실로 만들었다.
2014년 4월부터 만화도서 코너를 운영해온 경기 부천시 상동도서관은 성인만화를 포함해 8000권이 넘는 만화를 도서관에서 가장 환하고 밝은 자리에 놓았다. 매달 도서관 추천 만화를 정하고 대출서비스도 한다.
‘불량도서’→‘시대의 책’ 인식변화
국립중앙도서관서 일반열람 가능
‘면적 20% 만화열람실’ 도서관도
중고·경매시장서 몸값도 ‘훌쩍’ 상동도서관 한혜정 팀장은 “만화 도서 서비스를 시작한 뒤 독서율이 5% 이상 증가했다”며 “만화는 책을 친숙하게 여기고 도서관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매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했다. 도서관 만화 코너는 부천시 8개 도서관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컴퓨터나 모바일로 만화를 보는 시대에 만화 도서관에는 어떤 책이 있을까? 3000권 만화책으로 문을 여는 구산동도서관마을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토끼와 원숭이> <엄마 찾아 삼만리> <코주부 삼국지> 복사본들을 들여왔다.
도서관 쪽은 “우리나라 최초의 단행본들인 이들 만화부터 지금 웹툰에서 연재하고 있는 <송곳>까지 시대를 망라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불량 도서’에서 ‘시대의 책’으로 만화에 대한 인식이 변하면서 만화책의 몸값도 높아졌다. 지난 3월엔 부천에 위치한 한국만화박물관이 새롭게 개편했다. 한국만화 100년사 중 현대사 전시를 보강한 박물관에서는 몸값 높은 만화책들도 눈에 띈다.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 단행본인 김용환 작가의 <토끼와 원숭이>(1946)는 박물관이 미술품 경매사이트에서 1800만원에 사들인 것이다.
2013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 영감> 원화가 가장 비싼 사례로 꼽힌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원화 7700여점은 8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만화를 하위문화가 아니라 탐구 대상으로 여기면 그 역사적 맥락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최상권 작가의 <헨델박사>는 박물관이 360만원에 구입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에스에프(SF) 만화라는 장르적 가치가 부각되면서 1000만원으로 감정평가된다. 또 2010년 100만원에 들여온 김종래 작가의 <눈물의 수평선>은 <엄마 찾아 삼만리> 등 50~60년대 한국 만화의 대중화를 이끈 고 김종래 화백의 이름을 크게 알린 출세작이라는 가치가 부각되면서 500만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절판되거나 없어진 만화들을 다시 발행하는 복간사업을 해왔는데, 진흥원 쪽은 “원본도 아닌 복간된 작품들이 발매될 때마다 매진되어 중고시장에서 30만원 이상의 가격에서 거래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1970년대 만화를 저급한 매체로 간주하고 ‘화형식’을 벌이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갖게 한다.
부산대 디자인학과 윤기헌 교수는 “1909년부터 1945년까지 근대 만화는 거의 남아 있는 게 없는데 만화책을 귀중한 자료로 여기고 제대로 수집, 보관한다면 만화사도 다시 쓰일 것”이라고 했다. 도서관에선 만화의 책으로서 기능이, 박물관에선 만화의 사료적 가치가 점점 부각되고 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국립중앙도서관서 일반열람 가능
‘면적 20% 만화열람실’ 도서관도
중고·경매시장서 몸값도 ‘훌쩍’ 상동도서관 한혜정 팀장은 “만화 도서 서비스를 시작한 뒤 독서율이 5% 이상 증가했다”며 “만화는 책을 친숙하게 여기고 도서관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매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했다. 도서관 만화 코너는 부천시 8개 도서관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김종래 화백의 출세작 <엄마 찾아 삼만리>. 한국만화박물관 제공
최초의 에스에프(SF)만화 최상권 <헨델박사>. 한국만화박물관 제공
김종래 화백의 출세작 <눈물의 수평선>. 한국만화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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