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리슨 투 더 시티 제공
민중대회 등 엄혹한 시대상 담은 ‘싸움’ 사진집 나와
거리는 ‘점령’되었다. 1989년 7월5일 종로는 노점상 단속에 항의하는 시위대로 가득했다. 1989년 11월26일 민중대회, 경찰의 진압에 쓸려나간 거리에서 할머니는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울었다. 1990년 9월22일 대학로 텅 빈 거리에 지랄탄이 꼬리를 늘어뜨리고 로켓처럼 날았다. 1991년 5월3일 의경과 시위대의 전속력 추격전이 벌어졌다. <싸움>은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차가 다니지 않는 거리에 대한 기록이다. 거리는 이 기간 가장 첨예한 역사의 현장이다.
<싸움>은 민족사진연구회(민사연) 회원인 권선기, 박승화, 송혁, 이소혜, 임석현이 전국민족민주연합 결성대회부터 6공 정치수배 해제 촉구대회까지를 기록한 사진을 모았다. 이들은 집회에서 비슷한 이유로 자주 마주쳤다. 유인물에 들어갈 시국 사진이 궁했기에 소속된 단체에서 한 명씩을 정해 카메라를 쥐여준 것이었다. 자주 마주치던 이들은 사진가 박용수로부터 사진을 배웠다. 박용수의 친아들인 박승화와 더불어 이들 모두는 ‘박용수의 아이들’로 불린다. ‘제자’인 박승화는 “잘 찍는 것보다는 잘 보는 게 먼저다. 그리고 열심히 찍어라”고 선생이 강조했다고 기억한다. <싸움>의 원작은 박용수의 사진집 <민중의 길>이기도 하다. <민중의 길>은 1985년부터 1988년까지의 ‘싸움’을 담았다.
유인물을 위해 쓰였던 사진이 끝내 속하고 싶었던 곳은 ‘승리의 그날 만들어질 보고서’였다. 박승화는 들어가는 말에서 “기대하던 그날은 오지 않았고 사진은 쓰임새를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같은 글의 말대로 사진들은 “기록과 기념, 선전이 뒤섞”였다. 남은 것은 “사실의 기록”이다. 한홍구는 해제에서 당대를 기억할 귀한 자료라며 “박용수와 박용수의 아이들 두 세대에 걸친 거리의 사진가들이 있어 이 험난한 순간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역사의 행운이다. 그리고 불행이다”라고 말한다.
2007년 민사연은 10만여점의 사진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에 기증했다. 수해를 맞아 몇몇 필름이 녹아내린 뒤였다. 민사연 사진에는 누구의 사진이라는 크레딧이 없다. 그때 거리의 사람들이 그랬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싸움>. 사진 리슨 투 더 시티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