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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필리버스터, 현실은 또 희망을 배반했지만…

등록 2016-03-01 18:58

드라마 '어셈블리'.
드라마 '어셈블리'.
댐 건설법안 통과 막는 ‘스미스씨’
자폐증 예산 삭감 비판 ‘웨스트윙’
비리 총리 임명안 저지 ‘어셈블리’
한미 영화·드라마선 성공적 결말
현실은 달랐다. 더 씁쓸하다. 국가정보원에 시민에 대한 감시 권한을 쥐여주는 ‘테러방지법’을 저지하기 위한 한국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3·1절 날 필리버스터 중단을 선언했다. 지난 23일 저녁 7시 김광진 의원을 시작으로 47년 만에 우리 의정사에 새로이 등장했던 필리버스터는 7일만에 막을 내렸다.

현실 이전에 픽션이 있었다. 필리버스터를 다룬 영화·드라마들이다. 대중들의 꿈과 희망을 실은 때문일까. 대중문화 속 결말은 현실과 달랐다. 좀 더 달콤했다.

먼저 77년 전 할리우드 영화가 있었다. 프랭크 캐프라 감독의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1939)이다. 이른바 ‘인민주의 코미디’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모략이 판치는 복잡한 세속사 가운데로 내던져진 순수하고 평범한 사람의 고투를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시골 보이스카우트 단장 스미스는 어수룩한 그를 거수기로 이용하려는 정계 실력자와 재벌의 야합으로 미국 상원의원이 된다. 그러나 그는 거수기 노릇은커녕 정·재계 거물들의 농간에 맞서 끝까지 싸운다. 그는 협잡으로 얼룩진 댐 건설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24시간 쉬지 않고 법전을 읽으며 연설을 한다. 필리버스터다.

결말은 역시 해피엔드다. 그가 지쳐 쓰러지며 모든 희망이 사라지려는 순간, 그의 정직과 용기에 감화받은 타락한 정계 거물은 갑자기 회개하며 모든 사실을 폭로한다. 정의는 승리한다.

2000년대 초반엔 <웨스트윙>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즐겨봤다는 미국 드라마다. 시즌2 17화에서 필리버스터를 다뤘다. 여당과 야당이 합의한 어린이 보건 관련 법안에 반대하는 78살 상원의원 하워드 스택하우스가 8시간 넘게 필리버스터를 한다. 이 법안에는 자폐증 지원 예산을 줄이는 항목이 들어있는데, 같은 병을 앓는 손자가 있는 이 노의원이 부당함을 호소한 것이다. 이를 알게 된 백악관 쪽의 반응도 놀랍다. 백악관 대변인은 퇴근 못하는 직원들과 담당 기자들에게 말한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지금 민주주의가 뭔지 지켜보는 겁니다. 아름답지 않나요?”

그리고 한국 드라마 <어셈블리>(한국방송2·2015)가 있었다. 진상필(정재영) 의원이 ‘비리 백화점’ 주철순 의원의 총리 임명동의안 철회를 주장하며 필리버스터에 나선다. 임시국회 폐회가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애초 협조를 약속했던 야당 의원들은 여당과의 정치적 협상으로 빠져버리고 혼자서 25시간 2분을 버틴 뒤 탈진한다. 이 드라마 정현민 작가는 1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드라마 방영 즈음 인사청문회 파동을 몇번 거치면서 국민들의 실망이 컸는데, 필리버스터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에 설정했다”며 “당시에는 실제로 필리버스터가 이뤄질 거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현실에서 이뤄지니 나도 신기한 마음으로 지켜봤다”고 말했다. 역시 총리 후보자가 자진사퇴하며 필리버스터는 성공으로 끝났다.

정 작가는 “현실에서는 많은 시청자가 절망하거나 실망하는데, 드라마 안에서만이라도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현실은 희망을 또 배반했지만, 그렇기에 희망은 여전히 희망으로 남았다.

손원제 남지은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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