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4일 열린 미국프로풋볼(NFL) 챔피언결정전 하프타임에 프린스가 공연을 하고 있다. 당시 프린스가 펼친 공연은 역대 최고의 라이브 공연으로 손꼽힌다. <퍼플 레인> 등의 명곡을 남긴 프린스는 21일 오전(현지시각) 57살의 나이로 숨졌다. AP 연합뉴스
‘팝의 전설’ ‘천재 팝스타’ 프린스가 57살의 나이로 돌연 사망했다.
프린스는 21일 오전(현지시각)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외곽에 있는 녹음 스튜디오 엘리베이터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심폐소생술 등을 받았으나 숨졌다고 <뉴욕 타임스>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경찰은 22일 부검을 해 사망 경위를 확인하기로 했으나, 살인이나 자살 정황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프린스는 펑크와 록, 아르앤비(R&B) 등 장르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팝의 룰’을 깬 독창적인 음악으로 그래미상을 7차례나 수상했다. 39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발표해 전세계에서 1억장 넘는 앨범이 팔리며 대중음악사에 중요한 자취를 남겼다. 2004년 미국 음악전문지 <롤링 스톤>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 100인’ 중 27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프린스 로저스 넬슨’이 본명인 프린스는 1958년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났다. 재즈 뮤지션이던 부모의 영향으로 7살 때 작곡을 시작했고, 독학으로 기타·키보드·드럼 등 10여가지 악기를 자유자재로 연주한 조숙한 꼬마 천재였다. 1978년 앨범 <포 유>(For You)를 발표하며 데뷔한 그의 음악은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들다. 김영혁 김밥레코드 대표는 “미니애폴리스 사운드라고 불리기도 하고, 80년대 펑크의 일종이라고도 하지만 장르를 규정하기 힘들다. 그가 80년대 이후 대중음악 흐름에 끼친 영향력은 마일스 데이비스가 모던 재즈에 미친 영향에 견줄 수 있다”고 말한다.
성문영 음악평론가는 ‘르네상스 맨’이라고 그를 평가한다. “작사, 작곡, 프로듀스, 연주 등 뮤지션으로서의 기본뿐만 아니라 춤, 영화(연기) 그리고 섹스 어필과 콘셉트를 현실화하는 능력 등 엔터테이너로서도 남다른 창의력으로 자기 영역을 구축한 작은 거인이다.” 프린스가 1984년 주연을 맡은 영화와 함께 발표한 <퍼플 레인>(Purple Rain)은 미국에서만 1300만장 이상 팔렸고, 이 곡으로 1985년 아카데미영화제 주제가 작곡상도 받았다. 그는 지난 1년 반 동안 4장의 음반을 발표할 정도로 넘치는 창작열을 보였고, 일중독으로 불릴 정도로 작곡과 연주에 몰두했다.
무대 위에서 그는 다양한 성적 표현을 보여준 관능적인 음악가였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진짜 마법은 무대 위에서 일어났다. 그는 몸을 잔뜩 치장한 요부였고, 관객을 광란에 이르도록 달아오르게 만들었고, 그런 다음 크리스털 같은 맑고 고요한 순간을 선사해 관객을 매혹시켰다”고 평했다. 이 때문에 그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 한국에선 정권의 검열로 그의 앨범이 거의 발매되지 않았고, 다른 전설적 팝스타들에 비해 한국에서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서성덕 음악평론가는 프린스를 “타협 없는 소신을 이어간 음악인”으로 기억한다. 프린스는 음악가의 권리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가 음반사 워너와 벌인 앨범 발매 주기 제한 소송은 유명한 사례다. 워너는 상업성을 고려해 그가 2년마다 앨범을 발표할 것을 주장했고 프린스는 창작을 제한한다며 반발했다. 그는 ‘프린스’라는 이름을 가리고, 기호로 된 이름을 만들어 1994년 앨범을 발표했다. 그는 인터넷 음반 발매의 선구자였지만, 최근의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해서는 창작자의 권리를 강하게 수호했다.
전세계에서 추모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발표해 “프린스가 ‘강한 영혼은 규칙을 초월한다’는 얘기를 했는데, 프린스보다 더 강하고 대담하며 창조적인 영혼은 없다”고 추모했다. 팝스타 마돈나는 인스타그램에 “프린스가 세상을 변화시켰다. 진정한 선지자다”라는 글을 올리며 애도했다. 그의 앨범 4개가 동시에 아이튠스 앨범 차트 1·2·3·8위에 올랐다.
전정윤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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