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부 창동역 아파트들 사이에 알록달록 컨테이너 박스들로 지어진 새로운 문화예술공간 플랫폼창동61이 들어섰다. 홍대·대학로 등 기존 서울 도심의 문화예술 거리를 넘어 새로운 지역, 새로운 개념의 대안적 문화공간들이 등장하고 있다. 사진 플랫폼창동61 제공
장르를 품은 대안 예술공간
연극을 보려면 꼭 대학로로, 공연을 보려면 홍대 앞으로 가야할까? 영화는 멀티플렉스에서, 미술은 미술관에서 보는 것이 되면서 예술은 일상에서 먼 곳으로 분리됐다. 그런데 ‘옆집’으로 이사온 예술이 있다. 궁궐 옆에 영화관이 있고 쌀집 위에 미술관이 생기고 지하철 역 옆 콘테이너 박스에 공연장이 들어 섰다. 그곳에선 연극과 영화가 만나고 그림 앞에서 공연을 하고 패션과 음식이 교류한다. 어수선하지만 그래서 더 재밌는 ‘장르를 품은 대안 예술공간’들을 찾아갔다.
케이팝 붐업 기지 ‘플랫폼창동61’
■케이팝 붐업 기지 ‘창동사운드’ 서울시 북쪽 지하철 1호선·4호선 지상역인 창동역을 나와서 주위를 둘러보면 빨갛고 노란 컨테이너 박스들을 확인할 수 있다. 플랫폼창동61은 컨테이너 박스로 지은 문화예술공간이다. 이곳 안에 지어진 공연장 이름도 ‘레드박스’다. 플랫폼창동61은 창동 아레나의 ‘붐업 기지’ 역할을 한다. 창동 아레나는 2020년까지 이 지역에 세워질 예정인 2만석 규모의 케이팝 전용 공연장이다. 현재 실내 무대로는 최대 규모인 올림픽 체조경기장의 1만5천석을 훌쩍 넘는다. 주 공연장 이외에도 쪼개어 공연할 수 있는 3천석 규모의 공연장도 함께 지어진다.
여러 컨테이너로 만든 문화공간
350명 수용 ‘레드박스’ 공연장에
녹음실·합주실·스튜디오까지
신대철 등 장르별 5팀 우선 입주
“홍대와는 다른 창동사운드 목표”
이미 들어선 플랫폼창동61은 ‘장르음악’의 수요를 받아안는다. 레드박스에선 350명이 스탠딩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서라운드 스피커 30개가 달린 아이오소노 시스템은 이 공연장에서 소리의 공간감을 극대화한다. 공연장 외에도 녹음실, 합주실, 입주스튜디오 등을 갖추고 있어 뮤지션들의 둥지 역할을 하게 된다. 녹음실에선 공연장의 라이브 공연 실황을 녹음할 수 있다. 신대철(바른음원협동조합), 이한철, 아시안체어샷, 잠비나이, 숨 등 장르별로 배분된 5팀이 우선 이곳 스튜디오의 1년 입주자들이다. 이들을 포함해 30개의 협력 뮤지션 팀이 있고 20개 팀의 입주를 추가로 모집한다. 이 팀들은 이 공연장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이들 중심으로 올해 여름까지 공연장 스케줄이 꽉 짜여 있다. ‘창동섬머페스티벌’ ‘힙합일렉트로닉 페스티벌’ 등도 기획되어 있다.
총괄예술감독을 맡은 이동연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홍대를 대체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홍대와는 다른 창동사운드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라고 말한다. 2020년 창동 아레나가 지어져 붐업의 소명을 다하면 콘테이너들은 다른 데로 옮겨가고 ‘창동사운드’는 ‘시한부 사운드’가 되는 것 아닐까. “잘 만들어져서 철거하기 아깝다. 아레나 완공 이후에도 이 공간은 계속될 것이다. 아레나 쪽이 주류 아티스트들의 공연장이라면 여기는 장르 아티스트들의 터전이다. 마이너와 메이저가 공존하게 되는 셈이다.” 창동에 ‘음악생태계’의 코아세르베이트(생명체의 기원)가 꿈틀대고 있다.
‘엠에프에프’(MFF)를 표방하는 플랫폼창동61에선 음악(Music) 외에도 패션(Fashion)과 푸드(Food) 관련 행사도 수시로 열린다. 주변 서울 동북권역에 패션학과가 있는 대학들이 많다. 공연장에서 패션쇼도 벌일 수 있고 패션스튜디오도 마련되어 있다. 음식은 ‘푸드트럭’으로 특화된 ‘팝업레스토랑’을 운영한다. 지원을 받는 업주는 한달간 시음회를 열 수 있는 푸드체험 공간을 제공받는다. 뮤직디렉터는 시나위의 신대철, 포토디렉터는 사진가 조세현, 푸드디렉터는 셰프 최현석, 패션 디렉터는 모델 한혜진이 맡는다.
우선 오는 29일부터 떠들썩한 개장 파티가 열린다. 시나위·장기하와 얼굴들(29일), 이하이·로열파이럿츠·솔루션스(30일), 엠씨메타·도끼 앤 더 콰이엇(5월1일)이 이 무대에서 차례대로 공연한다. 정창욱·남성렬·황요한의 쿠킹클래스, 한혜진·박슬기·윤선의 패션클래스, 박민경·한제훈·오중석의 포토클래스가 열린다. 문의 www.platform61.kr, (02)993-0563.
복합문화공간 ‘에무’
■ 홍대·대학로를 벗어나 ‘예술 껴안다’ 서울 경희궁 뒷편에서 성곡미술관으로 올라가다 보면 밤마다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공간이 있다. 바로 복합문화공간 ‘에무’다. 예전 사계절출판사 건물이었던 이곳은 2010년부터 전시·공연 공간으로 운영되다가 점점 진화해 지난 3월엔 건물 2층에 영화관까지 들어왔다.
경희궁 언덕 출판사 건물을 개조
2010년부터 전시·공연 공간으로
올해는 작은 영화관까지 문열어
크라잉넛 등 인디밴드들 공연에
연극·낭독회까지 ‘문화 커뮤니티’ 사계절출판사 설립자이며 작가, 인문학자, 사진가인 김영종 에무 관장은 자신이 사랑하는 “바보 철학자” 에라스무스의 이름을 따서 에무라는 공간을 만들었다. 김 관장은 “이곳은 여러 요소, 장르들을 한데 모아 봉합하는 공간이다. 권위적이지 않은 예술, 누구나 접근 가능한 문화들을 서로 연결하는 커뮤니티와도 같은 곳”이라고 소개한다. 이곳에선 인디밴드들의 공연이 끊이질 않는다. 4월만 해도 크라잉넛, 24아워즈, 익시, 이아립/이호석 등이 다녀갔다. 지난해엔 갤럭시 익스프레스, 호란 등 14명 아티스트가 참여한 ‘탕탕탕 카니발’, 강아솔, 김목인, 단편선 등이 주도한 음악 마켓 ‘탕진시장’도 열렸다. 600㎡가 좀 넘을 듯한 땅에 지어진 에무 공간의 면면을 더듬는 일은 미로를 찾는 것과 비슷하다. 지하1층은 공연장, 그 아래층은 갤러리다. 김영종 관장, 한국화가 김선두, 조각가 유영호 등이 기획전시를 이끄는 이곳에선 틈틈이 김영종의 연극, 극단 홍차의 낭독회도 열렸다. 에무 프로그램을 맡은 김상민 기획팀장은 “밴드가 홍대를 벗어나면 망한다는 설을 깨고 싶었고, 대학로를 벗어난 연극을 보고 싶었다. 같은 작품도 새로운 지역에 오면 전혀 다른 열기를 불러일으키더라”고 했다. 이제는 영화관이다. 4월 예술영화전용관 승인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영화관으로 시동을 걸었다. 가로 8m, 세로 15m 남짓한 넓이에 50석 정도를 갖춘 에무시네마는 규모로는 초소형 영화관이지만 객석 의자, 휴게실과 화장실은 맘껏 사치를 부린 이상한 극장이다. 관객들이 영화 상영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기대앉는 극장 서가에선 경희궁 뒷뜰이 내려다보인다. 희귀한 고전예술영화, 점심시간 직장인들을 위한 30분 단편 영화 등을 상영할 예정이다. 종로문화재단과 함께 씨네큐브, 서울역사박물관 속 영화관, 에무 시네아트를 연결하는 ‘경희궁 영화관길’도 추진 중이다. http://www.emuartspace.com/
시한부 운영 ‘일년만 미슬관’
■일년만 하는 점 하나 뺀 ‘미슬관’ 지난해 12월 서울 강서구 등촌동 한 쌀가게 윗층에 미술관이 생겼다. 함께 전시할 공간을 찾던 시각예술가 7명으로 구성된 ‘예술의 잔당들’ 팀은 1년 뒤 철거가 예정돼 세 들어올 사람이 없던 이 공간을 발견했다. 재건축할 때까지는 임대료 없이 사용해도 좋다는 건축주의 허락을 받아 태권도 학원이었던 100㎡ 공간은 ‘일년만 미슬관’으로 재탄생했다.‘미슬관’인 이유는 이곳이 법적으로 미술관으로 인증받지 못한 공간임을 오히려 자랑하는 동시에 아름답고 곱다는 뜻의 한자어로 이름을 삼았기 때문이다.
전시공간 애먹던 시각예술가 7명
강서구 쌀집 위층에 미술관 마련
내년초 철거 예정돼 무료로 임차
외부에 대관 등 전시스케줄 꽉차
동네 주민들 문화생활에도 한몫 “음악하는 사람들에겐 그래도 무대가 있고 작가들은 출판할 수 있지만 대형 갤러리 공모에 들어가지 못한 대다수 작가들에겐 전시공간이 절실했다”는 작가들이 모여 ‘미슬관’ 문을 열자 전시 요청이 쏟아졌다. 박종혁, 썬썬, 심윤아, 이은경, 이정우, 조은재, 조말 등 7명 작가들 개관전을 시작으로 내년 초 문을 닫을 때까지 전시 스케줄이 모두 다 차버렸다. 처음 공간을 연 7명 작가들은 1달에 1번씩 공동 전시를 하고 나머지는 모두 외부 작가들이 장소를 빌리는 대관전이다. ‘일년만 미슬관’은 대형 갤러리의 안목으로 걸러진 작품만이 좋은 작품인가, 라는 의문을 던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박종혁 작가는 “전시가 일상에서 멀어진 시대 예술적 기교가 부족한 사람들의 자기표현이 가져다주는 소박한 감동을 되찾자는 것이 이 공간의 취지”라고 설명한다. “갤러리의 취향에 부합하기 위해선 알게 모르게 자기 검열을 거쳐야 하는데 훈련받은 작가든 초심자든 자기 안의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려 노력하다 보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꽃집과 미용실에 전시 포스터를 붙이면 동네 주민들이 전시를 보러오곤 한다는 ‘일년만 미슬관’은 5월1일부턴 미술관 앞에 좌판을 내놓고 주민들에게 전시 아이디어를 제안받거나 아예 주민들 손으로 그린 작품들을 접수할 계획이다. 전시 공간을 찾지 못해 오랜 세월 무명으로 살았던 화가들은 물론 전시회 때 오프닝 공연을 한 아나킨 프로젝트와 위댄스 같은 홍대 앞 인디밴드까지 새로운 공간은 새로운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작업 방식도 새로워졌다. 지난해 예술의 잔당들 팀은 한 작가의 상상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조씨의 상상>전을 열었다. 다음달 1일부터 13일까지 열리는 <성실한 미슬씨>전은 매일매일 바통 터치하듯 성실하게 그리는 작품들로 채워진다. http://just365.modoo.at/ 남은주 구둘래 기자 mifoco@hani.co.kr·
350명 수용 ‘레드박스’ 공연장에
녹음실·합주실·스튜디오까지
신대철 등 장르별 5팀 우선 입주
“홍대와는 다른 창동사운드 목표”
‘플랫폼창동61’. 사진 플랫폼창동61 제공
복합문화공간 ‘에무’
복합문화공간 ‘에무’. 사진 에무 제공
2010년부터 전시·공연 공간으로
올해는 작은 영화관까지 문열어
크라잉넛 등 인디밴드들 공연에
연극·낭독회까지 ‘문화 커뮤니티’ 사계절출판사 설립자이며 작가, 인문학자, 사진가인 김영종 에무 관장은 자신이 사랑하는 “바보 철학자” 에라스무스의 이름을 따서 에무라는 공간을 만들었다. 김 관장은 “이곳은 여러 요소, 장르들을 한데 모아 봉합하는 공간이다. 권위적이지 않은 예술, 누구나 접근 가능한 문화들을 서로 연결하는 커뮤니티와도 같은 곳”이라고 소개한다. 이곳에선 인디밴드들의 공연이 끊이질 않는다. 4월만 해도 크라잉넛, 24아워즈, 익시, 이아립/이호석 등이 다녀갔다. 지난해엔 갤럭시 익스프레스, 호란 등 14명 아티스트가 참여한 ‘탕탕탕 카니발’, 강아솔, 김목인, 단편선 등이 주도한 음악 마켓 ‘탕진시장’도 열렸다. 600㎡가 좀 넘을 듯한 땅에 지어진 에무 공간의 면면을 더듬는 일은 미로를 찾는 것과 비슷하다. 지하1층은 공연장, 그 아래층은 갤러리다. 김영종 관장, 한국화가 김선두, 조각가 유영호 등이 기획전시를 이끄는 이곳에선 틈틈이 김영종의 연극, 극단 홍차의 낭독회도 열렸다. 에무 프로그램을 맡은 김상민 기획팀장은 “밴드가 홍대를 벗어나면 망한다는 설을 깨고 싶었고, 대학로를 벗어난 연극을 보고 싶었다. 같은 작품도 새로운 지역에 오면 전혀 다른 열기를 불러일으키더라”고 했다. 이제는 영화관이다. 4월 예술영화전용관 승인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영화관으로 시동을 걸었다. 가로 8m, 세로 15m 남짓한 넓이에 50석 정도를 갖춘 에무시네마는 규모로는 초소형 영화관이지만 객석 의자, 휴게실과 화장실은 맘껏 사치를 부린 이상한 극장이다. 관객들이 영화 상영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기대앉는 극장 서가에선 경희궁 뒷뜰이 내려다보인다. 희귀한 고전예술영화, 점심시간 직장인들을 위한 30분 단편 영화 등을 상영할 예정이다. 종로문화재단과 함께 씨네큐브, 서울역사박물관 속 영화관, 에무 시네아트를 연결하는 ‘경희궁 영화관길’도 추진 중이다. http://www.emuartspace.com/
시한부 운영 ‘일년만 미슬관’
‘일년만 미슬관’. 사진 예술의 잔당들 제공
강서구 쌀집 위층에 미술관 마련
내년초 철거 예정돼 무료로 임차
외부에 대관 등 전시스케줄 꽉차
동네 주민들 문화생활에도 한몫 “음악하는 사람들에겐 그래도 무대가 있고 작가들은 출판할 수 있지만 대형 갤러리 공모에 들어가지 못한 대다수 작가들에겐 전시공간이 절실했다”는 작가들이 모여 ‘미슬관’ 문을 열자 전시 요청이 쏟아졌다. 박종혁, 썬썬, 심윤아, 이은경, 이정우, 조은재, 조말 등 7명 작가들 개관전을 시작으로 내년 초 문을 닫을 때까지 전시 스케줄이 모두 다 차버렸다. 처음 공간을 연 7명 작가들은 1달에 1번씩 공동 전시를 하고 나머지는 모두 외부 작가들이 장소를 빌리는 대관전이다. ‘일년만 미슬관’은 대형 갤러리의 안목으로 걸러진 작품만이 좋은 작품인가, 라는 의문을 던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박종혁 작가는 “전시가 일상에서 멀어진 시대 예술적 기교가 부족한 사람들의 자기표현이 가져다주는 소박한 감동을 되찾자는 것이 이 공간의 취지”라고 설명한다. “갤러리의 취향에 부합하기 위해선 알게 모르게 자기 검열을 거쳐야 하는데 훈련받은 작가든 초심자든 자기 안의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려 노력하다 보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꽃집과 미용실에 전시 포스터를 붙이면 동네 주민들이 전시를 보러오곤 한다는 ‘일년만 미슬관’은 5월1일부턴 미술관 앞에 좌판을 내놓고 주민들에게 전시 아이디어를 제안받거나 아예 주민들 손으로 그린 작품들을 접수할 계획이다. 전시 공간을 찾지 못해 오랜 세월 무명으로 살았던 화가들은 물론 전시회 때 오프닝 공연을 한 아나킨 프로젝트와 위댄스 같은 홍대 앞 인디밴드까지 새로운 공간은 새로운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작업 방식도 새로워졌다. 지난해 예술의 잔당들 팀은 한 작가의 상상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조씨의 상상>전을 열었다. 다음달 1일부터 13일까지 열리는 <성실한 미슬씨>전은 매일매일 바통 터치하듯 성실하게 그리는 작품들로 채워진다. http://just365.modoo.at/ 남은주 구둘래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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